글/김홍곤 그림/이철진

권서방-아주뭉이! 그자식 갔소?

부인갑-이 사람이 왼, 동넬 한바퀴 돌았구나.

권서방-말마이소. 한 바꾸 마라송 했구마. 그놈이 날래도 박서방 축지법엔 못 따라 오거등. (내려와 물지게를 지고 비틀거리며) 젠장 맞을것! 오늘 잔치에 잘 묵을라고 사알 굶었딩이 힘을 못시겠뎅이! 그렇잖으만 글마 쭘은 한다수 오너라.

부인갑-호호 걸음아 날 살라라고 동망하던 사람이 호랑이 없으니 큰 소리하네…….

부인을-권서방 오늘 잔치음식이나 잘 먹고 힘을 내요. 호….

권서방-두고 보소! 그자리서 영감과 그놈의 달구지를 막 뿌라 줄텡이!

(비탈길을 오른다.)

부인갑과을 -호호호 (뒤 따라 퇴장)

암 전(暗 轉)

제2장 제1장의 직후

중간막이 오르면 제2막과 같은 무대 뒷곁으로 도는 마당 한 구석에 밧줄 파이프동강등 우물을 파는 도구들이 지저분하게 놓여 있다. 김씨는 마당에 놓인 도구를 정돈하고 있고 혜경은 기둥에 기대어 청끝에 맥 없이 앉아 있다.

김씨-물건을 썼으면 챙겨 놓지는 않구…. 마구 내던져 두니 치우는 사람만 골탕 먹네 쯧! 쯧! (청쪽으로 가면서) 얘 혜경아! (혜경은 반응이 없다.) 혜경아! (혜경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나중에는 갈 틈이 없을테니 지금이라도 내려가 머리 고데나 하고 오지. (혜경 대답 없이 외면한다.) 머리를 그렇게 해가지구선 손님들을 대할 수가 있니. 아무리 싫더라도 이렇게 된 바에야 그 사람에 말대꾸는 해주지.

동욱-(사랑방에서 나온다. 왼손에 붕대를 감았다.) 그런 갯놈에게 왜 말 대꾸를 해요! 그놈이 가고나니 속이 시원하다.

(뒷곁에서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가 난다.)

김씨-그렇게도 보기가 싫어서야……. (부억으로 들어가면서) 돼지는 잡았냐? 여태 소리가 없을가?

동욱-(청으로 건너가서 혜경 옆에 앉는다.) 붕대가 자꾸 풀어지는구나.

혜경-(붕대를 풀고 상처를 드려다 보고) 이제 새살이 돋아 나네요.

동욱-이제 거이 나아진 것 같다. (혜경 다시 감기 시작한다.) 나도 어리석었지 우물 파는 일이라도 성의껒 거들면 아버지의 고집이 어느 정도라도 풀려 우리의 애원을 고려할 마음이라도 날가했더니……. 피 흘린 연그의 댓가가 도리어 마이너스였구나. (한숨을 쉬고) 자식된 우리의…… 혈육의 진심도 피도 아버지의 청석(靑石)을 뚫는 강철 같은 심장에는 뚫고 들어가지 못하는가보다.

혜경-지성이면 감천이란 말도 우리에겐 헛된 소린가봐요. 가혹해요.

동욱-내일 또 내일…… 내일이 오면 하더니……. 그 내일이 이렇게 오늘이 되어 닥쳐왔구나.

혜경-여태 쓰러지려는 저를 북돋워 주시던 오빠 까지도 그런 소릴 하니 난…… 난 더욱 외로와요. 난 어떻게 해요. (기둥에 얼굴을 대고 흐느껴 운다.)

동욱-혜경아 울지 마라. 나도 모르게 그런 원망스러운 생각이 들어 버렸구나. 힘을 가다듬자! 오늘은 이미 와 버렸으니 참고 오늘의 고비만 넘겨 또 내일을 기다리자. 오빠는 결코 흔들리지 않을테다! 끝까지 싸울테다!

(부엌 뒷곁에서 도살되는 돼지의 단말마의 비명이 돌연 들린다.)

혜경-(악귀에게 쫓긴듯이 귀를 양손으로 막고 오빠에게 달라 붙는다. 공포에 떨며) 오빠! (돼지의 비명 더 요란스럽다.) 오빠! 저 저 소리!

동욱-(혜경을 안고 어떻게 위로를 해야 좋을지 모른다. 비통한 얼굴을 하고) 혜경아!

(돼지의 비명 사라진다.)

동욱-(혼자말 같이) 혜경이가 저 돼지와 같은 희생이 되란 말이냐. (뒷곁에서 한바탕 사람들의 떠들석한 소리가 나더니 살아 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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