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홍곤 그림/이철진

강백-혜경씨가 행복된 길만 찾었다면야 내가 뭘 미련을 가지겠나만…. 어쩐지 불안스러운 마음이 드네.

동욱- 내만 믿어 주게. 오늘 저녁의 약혼식이 결코 마지막 판은 아니네. 어떻게 하더라도 끝끝네 뻗혀 나갈테다.

(혜경 술상을 들고 부엌에서 나와 청에 놓고 술잔들에 각각 술을 따룬다.)

동욱-(술잔을 들고) 오늘은 실컷 마시고 취하고싶네. 자넨 위선 한 잔만이라도 들게. (강백 술잔을 든다.) 자네의 장도의 여행과 앞날의 성공을 비네.

(양인 건배한다.)

동욱-아버지가 그 돈을 받지 않아서 도리어 잘 됐네. 아버지가 그 돈을 수락했더라도 혼인 문제는 양보하지 않었을게고 자네만 공연히 유학도 못 갈번 했어.

강백-내 유학이야 또 기회는 있겠지. 그렇지만 자네 춘부장의 고집이랄가 그 의지력에는 탄복하지 않을 수가 없네. 의지력의 작용 방법은 딴 문제지만.

동욱-가장 악질적인 매궈벨리즘(Machiavellism)의 전형적인 타이프야. 권모술수 정책을 창도한 그 당자도 가정까지 희생하라고 하지는 않았을게야. 제 가족을 팔고…. 제 혈육을 희생으로….

혜경-오빠! 그런소리는 이제 그만 해요. 가슴만 아파요.

강백-잠시 나마 잊어 버리고 술이나 들게.

(동욱 술을 한 숨에 드리킨다. 앞으로도 이따금 잔을 기울인다.)

강백-우정을 돈으로 평가할테냐고 노발대발할 때는 난 거이 절망적이었어.

혜경-그날 저녁에 오빠는 유선생님의 우정에 보답할 길이 없다고 얼마나 우는지….

동욱-혜경아! 쓸대 없는 소린 마라!

강백-그렇게 싸와 가며 내어 놓은 여비가 할일 없이 되돌아 왔을 땐 정말 낙담했어.

동욱-미안하네. 아버지가 거절하므로 돌려주고나니 도리어 악과 싸울 용기가 더 나던구나.

강백-네 고민을 뒤에 두고 나 혼자 떠나니 발걸음이 무겁네.

동욱-네 심정은 십분 알겠다. 그러나 나만 믿고 마음 놓고 떠나게.

혜경-유선생님이 주신 저 그림을 볼때 마다 저에겐 새로운 힘이 날 거예요.

강백-저도 혜경씨가 주신 자수를 몸에 지니고 멀리서 격려하겠읍니다. 오빠에게 의지해서 제가 돌아올때 까지만 견디어 싸워 주십시요.

동욱-(눈을 감고 생각에 잠계 있다가 문득) 강백이! 자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본 일이 있나?

강백-다따가 왜 죽음은…?

동욱-한 달 전부터 엘리옽의 시에 흥미를 느끼게 됐는데 그중에서도 '황무지'를 탐독하고 있네. 이 시는 두 종류 즉 삶과 죽음의 대조로 구성 돼 있는것 같애. 무의미한 생은 죽음이고 선을 위한 희생적인 죽음은 생을 얻는 길이라는거야. 황무지란 것은 선악의 지식을 상실한 인간들이 존재하는 다시 말하면 살면서 죽은 인간의 토지 결국은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토지라는 말인 것 같애.

강백-난 잘 이해가 안되는걸.

동욱-인간이 도덕적 선악을 의식하고 강렬한 정신적 투쟁의 순간에 인간은 참되게 산다고 할 수 있는거야. 따라서 황무지에 인간이 부활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지.

강백-글세 난 잘 모르겠다만 우리가 바로 황무지의 주민 즉 살며 죽은 사람과도 같다는 말이지?

동욱-(취기가 들아 흥분이 심해져가며 말에 조리가 없어진다.) 응! 그렇지! 그러니 우리는 선을 위해 싸우므로서 부활의 길을 찾아야 하겠다. 선을 위한 희생은 삶의 길이니까……. 황무지의 주민은 쥐생몽사의 생활이고… 청석골의 악은 황무지의 악이다. 우리가… 내가 바로 황무지의 허수아빌가? 할일 없이 물만 바라고… 청석골을 뚫고 우물을 판다고 부활이 온다 말이냐? 강백이! 우리는 하늘이 내리는 물… 부활을 바래야 되나?

강백-동욱이! 진정하게 자네 취했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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