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家를 찾아서 - 22. 김천시 구성면 상원마을 연안이씨 정양공종택

정양공 종택 불천위 사당 건물.

김천시 구성면 상원리에서 남쪽으로 국도를 따라 1㎞ 떨어진 지점에 상원마을이 있다.

마을 앞 방초정이 마을의 풍취를 더하는 연안 이씨 정양공종택은 상원마을 감천과 하원천이 합수되는 안쪽에 자리하고 있다.

멀리서 보면 연꽃이 물위에 떠있는 형세를 일컫는 '인화부수형'의 길지로 대대로 연안이씨(延安李氏)부사공파 정양공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마을 안쪽에는 불천위 사당이 남동향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이승원, 이숙기, 이숙함, 이후백, 이호민을 배향한 '도동서원'이, '숭례각'에는 '가례증해(家禮增解)' 목판이 보존돼 있다. 입향조 제실인 '영모제'는 마을 뒤편에 입지하고 있다.

안채 전경. 현대식 건물로 재건했다.

1980년 음력 3월 이말정의 후손들이 상원리 도로변에 선조의 덕을 기리는 신도비를 세워 지금도 오가는 이들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연안이씨는 당(唐)나라의 장군 무(茂)를 시조로 한다. 그는 660년 소방정이 동맹군으로 백제를 침공했을 때 중랑장으로 따라왔다가 신라에 귀화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마을에 연안이씨들이 세거하게 된 것은 조선 연성부원군(延城府院君) 이말정(1395~1461)이 낙향하면서 부터다. 이말정의 시호는 평정공. 조선전기 문인학자로 장령과 보주지사를 역임한 증(贈)병조판서 이백겸의 아들이며 연천군 보정(補丁)의 아우로 서울서 태어났다.

숭례각.

이말정은 지품에 내려온지 얼마안돼 감천이 범람하면서 가옥과 전답이 침수되자 거창군 모곡면(못질)으로 이사했다. 거기서 정원에 매화를 심고 반석에 앉아 다섯 아들과 학문과 토론을 일삼았던 바위는 오자암(五子岩)이라 불렸다.

이 후 이말정은 다시 지품으로 돌아와 별세했으며 그의 묘는 후곡에 섰으나 통상의 관례를 깨고 가장 아래에 위치한 역장의 형태를 하고 있다. 또한 부인 곡산 한씨의 묘소를 뒤로 돌며 고상비하로 한 것도 특징이다.

이말정과 곡산 한씨의 묘터에 전해지는 흥미로운 일화가 문중에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문중 인사들에 의하면 1446년(세종 28)곡산 한씨가 별세한 뒤 마을을 지나가던 한 스님이 터를 정해 주었다고 한다. 그 스님은 땅 속에서 석함이 니올테니 절대 열어보지 말라고 신신당부 했다. 그러나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석함을 열었더니 두 마리의 벌이 나왔다. 이에 스님은 "발복이 3년 미뤄지겠지만 후손 중에 큰 인물이 나올 것"이라 했다. 그로부터 3년 뒤 다섯 아들이 차례로 과게에 급제했고 후손들이 번창했다고 한다.

스님의 말대로 그의 다섯 아들 중 숙황, 숙형, 숙규, 숙기는 문과에, 숙함은 무과에 각각 급제해 요직에 등용되면서 국가와 사회의 동량이 됐다.

불천위 이숙기(1429~1489)는 이말정의 넷째아들로 본관은 연안이고 시호는 정양이다. 1453년(단종1) 진사시에 2등으로 합격했고 같은해 무과에 장원급제했으며 이조참판과 호조참판을 지냈다.

이시애의 난을 진압할 당시 전북장군 강순 휘하의 맹폐장으로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절충장군에 특진되고 적개공신 1등에 책록됐다.

이른바 '삼리 삼불리(三利三不利)계책으로 난을 평정한 것이다. 이 때 내려진 단종의 교지에는 "천리에 쳐들어 오는 적을 마을 수 있는 무(武)를 가졌고 여러분야의 전무가를 잘 다스릴 수 있는 학문을 가졌다"고 했다.

정양공 종가에는 363책과 고문서 319점이 전한다. 연안이씨가에서는 가례증해(家禮增解)를 간행한 적이 있는 만큼 가례서에 관련된 것이 많다.

그 중 '삼례의'는 박세채가 관(冠), 혼(婚), 제(祭) 삼례를 고금의 여러 서적을 참고해 시속의 제도에 맞게 엮은 책이다. 주자의 사대예서(四代禮書)중 가례(家禮)를 예를 들어 해석하고 몇 가지 생각을 덧붙여 1772년 총 10권으로 완성했다. 1792년 (정조 16)에는 공인(工人)김풍해 등이 직지사에 있는 느티나무로 판각에 착수해 3년만에 완성, 총 475매(954면) 분량으로 관혼상제에 대한 증해판으로는 국내에서 유일하다.

이숙기는 공신책록을 통해 나라에서 부조의 명을 내린 국천불위다. 매년 음력 11월 4일이 불천위 기일이며 그 비위의 기은 음력 4월 10일이다.

종택에서는 고조고비위 3위를 포함해 총 11회의 4대조 기제사를 모시고 있으며 정월 설날과 팔월추석에는 차사(茶祀)를 지낸다. 예전에는 단오와 한식에도 제사를 지냈으나 현재는 지내지 않는다고 한다.

현재 연안이씨 종가에는 18대 종손 이철응(45년생)과 종부 한영숙씨(46년생)가 살고 있다.

종손 이철응씨는 현재 김천지역 담수지부장을 맡고 있다. 경주에서 시집 온 종부는 어른을 공경해 효부상을 받을만큼 종부의 삶을 자신의 운명이라 생각하고 살아왔다.

이들의 소망은 "오직 좋은 며느리가 들어와 종가문화를 잘 이어주는 것"이라고 한다.

종손은 어린시절부터 묘사나 제례에 빠지지 않고 참석할만큼 종택의 행사에 열성적이었다.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 서당에서 '천자문', '명심보감' '동몽선습' 등을 익힐만큼 여늬 아이들과는 차별성있게 자랐다.

그 영향인지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그는 군 제대 후 농협에 근무하며 종손으로써의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그도 아들에게도 종가 사람으로 예의에 맞는 몸가짐을 특별히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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