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훈 <포항강변교회 목사>

며칠 전, 부산에 있는 국립 모 대학 앞에 볼 일이 있어 잠시 발걸음 한 일이 있었다.

늦은 오후였고 지하철에서 내려서 찾고자 하는 서점을 향해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남자 대학생 세 명이 연세가 지긋하게 드신 노인과 언쟁을 하고 있었다. 가만히 듣고 그들의 언쟁을 재구성 해보니 이랬다.

좁은 골목길 반대편에서 대학생 세 명이 담배를 입에 물고 걸어왔고, 또 다른 반대편에서는 노인이 오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지금 다투고 있는 지점에서 서로 충돌하고 말았던 것이다.

좁은 골목길에 장정 세 사람이 횡을 이루어 걸어오고 있으니 노인이 지나갈 틈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노인은 피해가려고 이리 저리 허둥대다 한 명의 대학생과 부딪히게 되었고, 그 대학생은 노인에게 짜증스럽게 한 마디를 했던 것이다.

“ 앞도 제대로 보지 못하면서 밖에는 왜 나왔냐?” 의 어투로... 이 말을 들은 노인은 어른이 지나가는데 길도 비켜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담배까지 입에 물고 있는 것을 보고 “너희는 애비도 없냐?” 고 소리를 쳤고, 급기야 ‘ 할아버지가 뭔데 우리 아버지를 들먹이느냐?’’ 로 비화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지나가면서 언성이 자꾸 높아지기에 노인의 어깨를 밀치면서 그냥 가시라고 했다. 엄연히 나는 삼자 입장에서 관여할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이 갈 길을 가고 그 노인은 한 숨을 쉬듯이 이런 말을 했다. “ 하기야 내 손자도 내 앞에서 안하무인인데 저 젊은이들을 탓할 수만은 없지....”

근간에 길을 가다보면 이런 유형의 분위기를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꼭 언쟁이 아니더라도 오늘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분위기로 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자기 갈 길만 가면 되지 다른 사람들의 불편함이나 어려움은 개의치 않는다.

특히 젊은이들의 사고 개념은 그런 면을 심각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그런 모습들이 때로는 개성이고, 매력적으로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젊은이들만의 특유의 삶의 개성이라고 할지라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사회적인 공통분모에는 공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기성세대들은 요즘 아이들이 ‘예의가 없다’고 핀잔을 주거나 책망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핀잔과 책망의 대상이 아니다. 이것은 사람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예의의 문제이다.

특히 전자의 대학생들은 그래도 공부를 좀 하는 학생들이 갈 수 있는 대학이라고 알려져 있는 학교의 학생들이었다.

나름대로 학적인 지식의 우월성을 소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잘하는 것과 예의는 또 다른 차원임을 증명해 보여 준 하나의 실례이다.

어느 시대든지 예의를 갖춘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늘 공존해 왔다. 하지만 예의를 갖춘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비율이 뒤바뀔 때 심각한 사회 문제가 대두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예의와 사회의 건강상태는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의를 상실해 버린 사람들이 과연 이 사회를 건강하게 이끌어갈 수 있을까? 이것은 어떤 세대 간의 차이나 사고방식의 차이만의 문제만은 아니다.

타인의 삶에 도움과 격려와 위로를 주는 사람들과의 관계로 존재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말한다. 반면에 타인의 삶에 피해를 주고, 타인의 이용하여 자신의 삶에 도구로 사용하는 이기적인 현상이 팽배하면 할수록 그 사회는 병든 사회가 되는 것이다.

새무얼 스마일즈는 그의 책 ‘ 인격론’에서 “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은 예의 바른 태도를 북돋운다. 교양 있는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은 즐거움의 원천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재능이나 학식 못지않게 중요할 뿐 아니라 사람의 기호와 인격을 다스리는 데 보다 많은 영향을 미친다. 남을 사랑하는 마음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여는 열쇠이다. 그것은 정중함과 공손함을 가르칠 뿐 아니라 통찰력과 지혜도 증진시킨다. 그것은 인간의 최고의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고 했다.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교양 있는 사람들 재능이나 학식의 사람보다는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예의 갖춘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그런 사람들로 인하여 건강한 사회가 유지되어 가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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