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안동 제비원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15호로 지정된 안동시 북쪽 이천동 태화산 산록 제비원에 위치한 '제비원 미륵' 불상.

안동에서 영주로 가는 고갯길을 하나 넘으면 '안동이천동석불상'이 있다. "성주의 본향이 어디메뇨, 경상도 안동땅 제비원이 본일러라~" 제주도에서 함경도까지 보편적으로 불려지는 '성주풀이'의 한 대목에 나오는 제비원이 바로 이곳이다. 지역에 따라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제비원이 본향임을 밝힌다는 점은 동일하다. 따라서 안동은 성주신앙의 본향으로 불린다. 성주신앙의 근원지 제비원은 유교와 불교문화, 민속신앙이 함께 어우러진 안동 특유의 공존문화의 한 상징이다.

석양에 물든 제비원삼층석탑.

▲ 다양하게 불리는 안동의 얼굴

공식 명칭이 안동이천동석불상(보물 제115호)인 이 불상은 제비원 석불, 제비원 미륵불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영주 방향에서 치자면 안동의 입구에 위치하고 국도가 지나는 길목이어서 안동의 얼굴로 불리기도 한다.

국도에서 워낙 잘 보이는 이천동석불상은 고려시대의 석불로, 자연 암석에 조각해 머리를 따로 만들어 얹은 마애불이다. 인자해 보이는 눈매와 두터운 입술, 잔잔한 미소를 띠는 표정으로 대중에게 친근함을 준다. 이처럼 토속적이고 푸근한 느낌은 고려시대 불상 양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랑기 문화해설사가 이천동석불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불상은 거대하다. 높이 9.95m, 너비 7.2m의 암벽을 동체로 하고 그 위에 다시 2.43m 높이의 머리 부분을 조각해 올려놓아서 전체 높이는 12.38m이다. 옛날부터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영험함이 입으로 전해지면서, 소원을 빌기 위해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더욱 안동의 얼굴이자 상징이 되고 있다.

▲ 안동이 성주신앙의 본향인 까닭은

민속신앙을 비롯한 민속학 연구의 권위자인 임재해 안동대학교 교수는 안동이 우나 나라에서 굿문화의 전통이 가장 뿌리 깊은 지역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전국적으로 농촌별신굿은 쉽게 확인하기 어려운데 안동 지역에는 하회별신굿을 비롯해 병산별신굿, 수동별신굿, 마령별신굿 등이 고려시대부터 지금까지 생생하게 전승되고 있다. 국보 또는 보물 문화재로 지정된 이 별신굿들은 집안굿인 성주굿과 짝을 이루기에 성주신앙이 특히 발달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또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인 봉정사 극락전 등 안동 지역이 목조건축이 발달했는데, 집의 역사와 함께하는 성주신을 섬기는 전통제의가 발달했을 것으로 추측했다. 이와 함께 좋은 소나무가 많은 곳도 안동이었다는 점이다. 실제 안동은 솔뫼나 송천 등 소나무가 들어간 지명이 많다. 그래서 성주목으로 인정받을 만한 소나무가 많았고, 따라서 성주신앙이 두드러지게 발달했다.

정리하자면 품질 좋은 소나무가 많아 집의 재목감으로 주목받았고, 목조 집을 잘 짓는 고급 목수가 많아 건축의례 문화가 발달했으며, 토착종교인 굿문화 역시 발전해 성주굿이 활발해 제비원 소나무를 중심으로 하는 성주신앙이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이처럼 민속전통 신앙인 성주신앙의 본향으로 지목되는 안동은 찬란한 유교문화가 가장 잘 보존된 곳이자 봉정사를 중심으로 한 불교문화 역시 동시에 발달해 세 가지 문화유형이 조화롭게 발달한 문화의 고장으로 현대사회에서 주목받게 됐다.

▲ 제비원은 전설을 품고

이천동 석불상 옆에는 최근 법당을 새로 짓고 단청작업이 한창인 연미사가 자리 잡고 있다. 옛날 석불을 덮은 지붕이 제비와 비슷해 연자루(燕子樓)라 했고, 석불 옆 승려가 거처하는 요사채가 제비꼬리의 위치라 해서 연미사라 이름붙였다고 한다. 그러나 연미사는 조선 중기 불교가 억제하는 정책으로 폐사되기 이르렀고 석불만 남아 있다가 근처 마을 주민들과 신도들에 의해 재건되기도 했다. 이후 한 동안 연미사는 주민들에 의해 운영됐는데, 이 때문에 한 때 사찰을 두고 마을 주민들과 승려 사이에 소유권 분쟁이 일어나는 등 아픔을 겪기도 했다.

신라시대 일종의 여관이었던 제비원은 역사만큼이나 수많은 전설을 품고 있다. 옛날 일찍 부모를 여읜 연(燕)이라는 예쁜 처녀가 제비원에 살고 있었다. 연이는 인물도 예뻤지만 마음이 고와 길손들에게 항상 후한 인심을 베풀었고 불심도 대단해 새벽마다 예불을 거르지 않았다. 그런 연이가 처녀의 몸으로 죽자 커다란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 석불이 솟았다는 전설이다.

임진왜란을 지원 나온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난이 평정된 이후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찾아 다니며 훌륭한 인물이 날 자리를 골라 혈(穴)을 끊고 다녔는데, 제비원 앞을 지나다 말이 멈춰서 나가지 앉자 칼을 빼 미륵불의 목을 쳤다는 전설도 있다. 미륵불의 목을 떨어뜨리자 말은 다시 나갔지만 미륵불은 가슴으로 흘러내린 핏자국이 남았고, 떨어진 목을 어느 스님이 붙이면서 횟가루를 발랐는데 염주 모양이 됐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유서 깊은 제비원은 수많은 전설을 품고 있어서 솔씨공원 입구 문화해설사 대기소를 찾으면 재미있는 해설을 청해 들을 수 있다. 이랑기(51) 문화해설사는 "제비원은 안동의 다른 유적지에 비해 규모가 작은 대신 많은 사연과 이야기를 품고 있다"며 "듣는 안동이라는 점에서 제비원 역시 눈으로 봄과 함께 귀로 듣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안내했다.

석불 뒤 산자락에는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이천동삼층석탑이 있다 지방유형문화재 제99호인 탑은 양식상 고려 초기 혹은 신라 말기의 것으로 추정되며 흩어져 있던 부재를 모아 조성한 탓에 약간 어색한 비례를 보여주고 있다. 탑 주변엔 울창한 소나무가 즐비해 성주의 본향 소나무를 실감하게 한다.

한편, 안동시는 지난해 5월 석불 앞 광장에 제비원 솔씨공원을 준공했다. 이 공원에는 성주풀이에 소개된 소나무의 본향인 제비원을 부각시키기 위해 대형 소나무들이 심어져 있어 답사객에게 한 차례 볼거리를 제공한다.

약 30억원이 투입돼 참배광장, 주차장 등 편의시설이 잘 마련돼 있어 시민들의 휴식공간은 물론 관광객과 참배객에게도 예전보다는 월등히 나아진 환경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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