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넘어 히말라야로 (4)

조캉사원 앞 광장에서 바라본 조캉사원

달라이 라마가 없는 포탈라 궁은 그저 문화유산의 껍데기로 보였다. 제14대 달라이 라마는 지난해 2010년 나이 78세, 모택동이 쳐들어 왔을 때 10대 소년이었다. 자국에서 달라이 라마로 통치한 건 겨우 10년뿐이다, 1959년 중국 공산당이 라사를 침공했을 때 인도로 망명해 지금껏 무저항 비폭력으로 티베트 해방운동을 지속해 오고 있다. 달라이 라마란 이름을 세계에 알리게 한 장본인으로 하인리히 원작 '티벳에서의 7년'이란 영화에 소개됐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티베트 역사상 500여 년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영적 세속적 통치자의 명칭을 달라이 라마로 부르는 것이다. 여기서 '달라이'란 몽골어이며 '라마'는 '스승'이란 뜻으로 혹은 선지자, 지도자의 의미를 포함한다. 라마는 일반 승려와는 명확히 구별되는데 모든 불경에 통달하고 학문과 지식을 고루 수학한 이후 탄트라를 수행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 영적인 능력을 인정받은 초고차원의 승려에게만 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티베트에선 석가모니를 수반하는 천수관음보살이 인간으로 환생한 것을 믿는다. 이 천수관음보살의 현존이 또한 바로 달라이 라마라 한다. 지금까지 500여 년에 걸쳐 14대 달라이 라마가 계승되어 오고 있는데 이 달라이 라마는 모두 영적인 환생을 통해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한다. 티베트 불교의 특징이라면 '환생' 바로 그것이다.

조캉사원 앞 광장에서 티베트인들이 사원 앞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다

티베트에는 뛰어난 환생자들이 많은데 그 중 가장 뛰어난 환생자가 바로 달라이 라마라 믿고 있다. 새로운 환생을 통해 달라이 라마를 찾아내고 교육하는 방법은 달라이 라마와 그의 스승이 세대간의 차이를 두고 연이어 환생하기 때문에 그들의 세계에선 이것이 어려울 것이 없다. 실제적인 예로 현재 인도 다람살라에 망명중인 14대 달라이의 스승이 환생했는데 78세의 14대 달라이 라마 스승은 공교롭게도 10대 소년이다. 티베트에선 이러한 환생자를 린포체라 칭하며 이들을 통틀어 '투르크'라고 한다. 영적으로 끝없이 환생이 계승되어 오는 달라이를 보며 일부는 이 달라이 라마를 전지전능하신 슈퍼맨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것을 염두에 둔 현재 14대 달라이 라마는 이렇게 말한다.

"달라이 라마도 한 인간일 뿐입니다. 단 우리 인간은 육체적인 존재가 아니라 명확히 영혼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므로 단지 육체라는 껍질을 쓰고 있을 뿐 우리는 모두 같은 영혼들입니다. 단, 이 영혼 중 우주를 성찰하며 깊은 명상으로 선을 행하고 사는 삶의 지혜를 갖춘 영혼이야말로 창조주가 기뻐하시는 참 영혼이기에 우리는 끝없는 구도의 길을 걸어 영혼을 살찌워야만 합니다. 모두가 부처가 될 수 있고 더욱 깊은 명상에 들어가면 절대 진리와 교감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영혼들이니 모든 자들마다 절대 진리의 잠재력을 키워 나간다면 우린 모두 하나요, 달라이 라마와 별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조캉사원에 있는 조형물.

포탈라 궁의 부처는 그곳에 없었다. 정치적 전략으로 자본과 쾌락이 지배하는 곳에서 탈출한 것이다. 웅장한 전각들과 화려한 황금 부처는 이미 관광상품으로 전락한지 오래 되었다. 군홧발에 짓밟히고 황금에의 욕망이 휩쓸고 간 법당에 어찌 부처께서 남아 있겠는가. 부처는 저 광활하고 텅 빈 고원의 자연 속으로 또는 자연을 빼닮은 순진무구한 티베트의 민중 속에 법당을 세운 것일지 모른다. 멀리 떠난 것은 아닐 것이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먼 곳에서부터 몇 년에 걸쳐 오체투지로 포탈라 궁이나 조캉 사원에 경배 드리러 오는 민중 속에 살아 있을 것이다. 수백 수천 번 오체투지를 하고 순례길을 쫓아 간절한 염원이 담긴 마니챠를 돌리면서 꿋꿋이 걷고 있을 것이다. 마음으로부터 뜨겁게 묻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은 살아 있었다. 입으로 차마 내놓지 못하는 달라이 라마의 귀환을 간절히 빌고 있을 것이다.

"옴 마니 반메훔!"

티베트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암송하는 진언이다. 한 번 암송하면 경전을 한 권 읽은 것과 같은 효과가 있으며 순수한 본성의 상태로 마음자리를 옮겨 놓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제 라사는 빠른 속도로 발전할 것이다. 라사의 오랜 주인이었던 티베트 사람들의 살길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한족들이 상권을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티베트 사람들은 더 이상 턱없이 높아진 물가로 인해 집이나 물건을 소유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멀어질 것이다. 추운 들판에서 밤을 세워야 하는 유목민의 삶보다는 레스토랑의 웨이터, 호텔의 객실 청소부, 식당의 접시 닦기, 기념품 판매원 심지어는 어린 소녀들은 마사지까지 하며 들과 산을 떠나 문명의 꿀맛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온갖 허드렛일은 힘없는 티베트인들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다.

티베트의 풍경 속에서는 어디서든 주황색 가사를 입은 승려들을 쉽게 만날 수 있고 조금 높은 곳이면 타르쵸를 걸어 두고 있다. 티베트의 자유 정책 이후 허용한 종교적 관용 속에서 야크 버터를 가지고 사원을 방문할 수 있고, 마니챠를 가지고 코라를 돌 수도 있다. 심지어는 오체투지하는 것에 제한도 없는 듯하다. 중국의 위대한 관용은 종교적 열정을 드러내는 것을 묵인하여 티베트 불교를 외화벌이용 관광자원으로 이용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것은 나만의 지나친 비약일지 모르겠다. 현대화의 물결을 막을 수는 없다 해도 중국화가 아닌 티베트 문화가 훼손되지 않기만을 바라고 싶다.

조캉사원(大昭寺, Jokhang)은 티베트 불교 사원이다. 중국 명칭은 따쟈오시(大昭寺)라 부른다. 일반적으로 본당에 해당하는 부분의 명칭을 '조캉사원'으로 부르거나 본당이라는 의미의 트크라칸을 붙여 투루 낭·트크라칸으로 불리기도 한다. 티베트를 통일한 토번 티베트 왕조 제33대의 송첸캄포 왕이 641년 당나라 태종의 조카딸인 문성공주가 시집을 오자 공주를 맞이하기 위해 7세기에 건립하였다고 한다. 본당에는 송첸캄포에게 시집온 문성공주가 당나라에서 가져왔다는 석가모니상이 있다. 본당 안에서는 사진촬영을 금지하고 있다. 이 사원은 2000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라사 포탈라궁의 역사 유적군에 추가로 등록되었다.

조캉사원 바깥을 티베트인들이 마니챠를 돌리거나 또는 오체투지로 코라 도는 것을 언제든 볼 수 있다. 티베트 사람들처럼 오체투지 체험을 직접 해보았다. 조캉사원과 팔각거리 그 주변에 시장이 형성돼 있어 티베트의 전통적인 풍물을 볼 수 있다. 팔각거리(바코르, Barkhor)는 조캉 사원을 팔각형 모양으로 도로가 에워싸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매년 티베트 각지의 선남선녀가 불원천리 산을 넘고 강을 건너 한 걸음 가고 한 번 절하는 오체투지를 반복해서 조캉사원에 도착하여 공양하고 부처님께 복을 빈다. 오체투지는 고행의 상징이다. 극단의 무거운 고통을 통해 투명하고 맑고 가벼운 영혼을 얻어내기 위한 전통적 방법이다. 고통을 통해 잔인한 유한성의 사슬을 끊고자 하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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