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오일도와 감천마을

박원양 영양군 문화관광해설사가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248호인 항일 시인 오일도 생가에서 그의 삶과 생가의 구성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114호 감천측백수림과 항일 시인 오일도 선생의 생가가 있는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읍 감천리는 낙안 오씨들이 400년을 살아온 문향 마을이다.

처음에는 지곡(地谷)이라 불리다가 중국 주자(朱子)의 무이운곡(武夷雲谷)과 지형이 닮았다고 해 운곡(雲谷)이라 불려 조선 정조 5년 '운곡영당(雲谷影堂)'을 건립하기도 했으며, 그 후 통정대부를 지낸 오시준(吳時俊) 선생이 마을에 정착하면서 동곡(東谷)이라 개명했고, 후일 마을 뒷산인 무이산(武夷山)에서 발원한 계곡에 맑은 물이 솟고 마을 앞으로는 일월산(日月山)동쪽에서 발원해 흐르는 반변천이 있어서 감천(感天)이라 불리게 됐다는 유래와 땅을 다스리는 물신이 있는 마을이라서 감천이라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항일시인 오일도 선생의 시비. 저녁놀이란 시가 새겨져 있어 명시를 감상하며 잠시 쉬어갈 수 있다.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248호인 항일 시인 오일도 생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48호인 영양군 영양읍 감천리 780번지 오일도 생가는 애국시인인 일도(一島) 오희병(吳熙秉·1901~1946)이 태어나고 자란 집으로, 그의 조부인 오시동(吳時東)이 조선 고종(高宗) 1년(1864)에 건축했다.

이 집은 크게는 정침(正寢)과 대문채로 돼 있으며, 정침은 정면 4칸 측면 7칸의 '□자형 뜰집'이고 대문채는 '一'자형으로 조선후기 경북 북부지방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양반가의 살림집 형태를 갖추고 있다.

깎아지른 절벽에 위치한 천연기념물 측백수림 군락. 반변천과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 하다.

현재 생가에는 후손인 오증호씨가 살고 있으며, 생가 앞 하천절벽에는 영양의 관동팔경 중 하나로 천연기념물 제 114호인 측백수림이 군락을 이루며 자생하고 있다. 이 곳에는 오일도 선생의 시비가 소공원과 함께 세워져 있는데 '저녁놀'이라는 시가 시비에 새겨져 있어 관광객들이 명시를 감상하며 쉬어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오일도 선생은

본명은 희병(熙秉)이요 일도(一島)는 아호(雅號)이다.

오시준 칠원현감(吳時俊 漆原 縣監)의 10세손이며 오익휴(吳益休) 선생의 둘째 아들로서 1901년(光武 5년) 영양면 감천동(甘川洞)에서 태어나 8세에 사숙(私淑)에서 6년간 한문을 수학할 때에 비범한 재질이라 성적이 우수했으며, 1915년 3월 16세의 나이로 뒤늦게 영양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해 한 학년을 건너뛰어 1918년에 4학년을 졸업하고 전국의 수재들이 모여드는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응시, 입학했다.

1925년 문예월간지 조선문단(朝鮮文壇) 4월호에 처녀작 '한가람 백사장(白沙場)에서'로 문단에 등단했으며 1935년 월 사재(私財)를 기울여 최초의 시 전문지인 시원(詩苑)을 창간해 5호까지 발간, 시 문학을 풍요롭게 하는데 일익을 담당했고 이를 통해 조지훈 등 영양지역 후배 문인들을 이끌어 내며 한국 현대 시 문학 발전에 기여했다.

오일도 시인의 고매한 정신과 올곧은 절개는 끝내 변함이 없었다.

왜정 말기에 조선문인들 대다수가 회유 또는 억압당함으로써 왜정에 부동하는 친일문인으로 변조됐으니, 그들중엔 마치 갈보와 같이 교태를 부리며 무문곡필을 농간해 일본제국주의에 아부하는 요사스러운 문인도 있었건만, 해방후 1966년 임종국의 친일문학론을 샅샅이 뒤져보아도 오일도 시인의 이름은 그림자조차 없으니 이역만리 쫓기는 신세이면서도 왜추(矮醜)앞에 굴종(屈從)하지 않은 절개있는 선비이기도 하다.

8·15 직후 민족반역인 좌익분자들이 광복 조국을 어지럽힐 때에 구국의 뜻을 품은 선생은 민족 민주 진영인 한국민주당에 입당했으나 이듬해인 1946년에 간경화증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한 2월 28일 맏아들의 가택에서 별세하니 향년 46세의 애석한 나이였다.

△천연기념물 제 114호 감천측백수림

영양의 측백나무 자생지는 영양읍 감천 1리 마을 앞을 끼고 도는 반변천 건너편 절벽에 위치하고 있다.

깎아지른 절벽 사이에 도도히 흐르는 반변천 물줄기를 바라보며 붙어 있는 측백수림은 흡사 병풍과 같아 맑은 날 물 위에 비추는 그림자는 신선이 노니는 곳이 따로 없는 것 같으며, 무엇보다도 석벽에 착생해 병풍처럼 늘어선 측백나무들은 식물학상 희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측백나무 수림은 약 30m 높이의 기암 절벽 위에 형성돼 있는데, 반변천 건너편에서 보아도 잎이 신선해 보일 정도로 생육이 좋고 일반적 나지에서 자라는 나무들보다 크지는 않으나 생장 역시 좋은 편이다.

△박원양 문화해설사에게 듣는 재미있는 감천마을

옛날 어려웠던 시절 영양 감천의 절벽에서만 자란다는 신비로운 측백수의 잎을 삶아 먹으면 부인병, 대하증 등에 효능이 뛰어나며, 오장육부를 이롭게 하는 신비의 장수식품으로 알려지면서 이를 구하기 위해 멀리서 사람들이 모여 들었으며, 감천마을의 한 착한 젊은이가 환자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수 십m의 낭떠러지 위 측백나무 가지를 자르기 위해 목숨을 걸고 맨손으로 올라가 나무를 꺽어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에게 나눠줬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절벽 위 측백수림은 영양의 관동팔경 중 하나로 불리우며, 오일도 선생의 생가가 있는 감천마을은 생가를 중심으로 낙동강 상류 하천인 반변천의 물줄기가 굽이 돌아 흐르기 때문에 물줄기를 상공에서 바라보면 한반도, 즉 우리나라 지도를 닮은 형상을 하고 있다.

감천마을의 자연을 걸으면 도시에서 받은 상처와 스트레스를 모두 잊어버릴 수 있고 오일도 선생의 항일 정신을 느낄 수 있어 새삼 나라에 대한 소중함과 자기를 찾아가는 자아성찰의 여행지로 안성맞춤이라고 박원양 영양군 문화관광해설사는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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