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수 전 경북도 정무부지사·포항해맞이회 회장

이석수 전 경북 행정부지사가 공직생활 중 받은 상패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회장님은 우리나라가 도약하는 시기에 그 중심축에 있으면서 국가발전에 밑거름이 된 분이시지요. 우리는 이렇게 둘이서 살아도 그 자부심 하나는 언제나 가지고 있습니다"

이석수 전 경북도정무부지사의 부인 김영희 여사의 눈에는 남편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가득하다.

이 회장도 40년 공직 생활 뒷바라지를 하면서 자신을 희생하고 살아온 부인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부인을 존중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다툴 일이 없다고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왜 그랬느냐"고 따지는 것 보다 "그럴 수 있다"고 하는 이해와 긍정의 힘이 이 회장 가정이 사랑과 평화로 지켜지는 원동력일 것이다. 집 2층 한 방에는 이 회장이 40년 공직 생활중 얼마나 많은 업적을 남겼고 국가와 고향에 공헌했는지 말해주는 훈장과 상패, 표창장으로 가득 채워져 있고, 십년 주기로 찍은 가족사진들이 늘 함께 하고 있어 노년의 외로움이나 쓸쓸함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이석수 회장은 공무원 사회에서 신화적 존재다. 경북도 공무원 시험에서 1등으로 합격, 9급 지방공무원으로 시작해 1급 국가공무원까지 지낸, 군대의 계급으로 치면 이등병에서 장군까지 된 것과 같다. 공무원은 법률을 입안하는 것이 제일 보람있고 중요한데 이 회장은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은 행정입법을 기안했다. 그중에서 중요한 것이 '중기저당법'과 '해외건설촉진법'이다. 또한 자연공원법을 국립공원관리공단법으로 개정해서 공무원이 소극적으로 하던 것을 민간이 적극적으로 관리하게 했다. 포항제철의 기공식을 주관했으며, 6대조부터 포항 연일에 거주한 포항의 산 역사이다.

-중기저당법은 어떤 법입니까.

"중장비를 저당할 수 있는 법인데, 업체들은 중기가 저당이 안 되니 대출받아 장비를 못 사는 겁니다. 부동산은 저당이 되는데, 중기는 동산이라 저당이 안 된다는 것을 건설부에 있을 때 저당법을 만들어서 중기도 담보물이 되게 했지요"

-고향 포항을 위해서도 많은 일을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내가 건설부에 오래 있었으니 아무래도 고향 쪽 일에는 관심이 가지요. 국도 20호선 도로가 산청에서 건천까지인 것을 포항공업단지까지 연장도로를 만들었고, 강동에서 흥해까지 우회도로는 황대봉 대아가족 명예회장이 국회의원으로 있을 때 함께 힘써 만든 도로지요. 그래서 나는 그 도로를 '황대봉 도로'라고 합니다. 기안을 해서 올린 건 나지만, 안 된다는 국회의원들을 황 의원이 설득해서 그 도로 만드는데 애 많이 썼어요."

우리가 편하게 이용하는 그 우회도로가 포항을 대표할 만한 두 어른의 합작품이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이 회장은 73년도 오일쇼크가 왔을 때 해외건설 주무담당관으로서 해외건설과 기술향상, 국제화계약의 기틀을 잡은 주인공이다. 포항 관문에 숲이 조성돼 있는데, 산림청의 숲 조성 기금을 활용하는 '생명의 숲'을 통해 이 회장이 주도한 것이다.

이 회장은 나랏일만 열심히 한 게 아니라 만능 스포츠맨이다. 경북 릴레이 선수였으며 씨름 보급에도 앞장을 섰고 실제로 젊은 날, 처가인 강원도 원주의 씨름대회에서 우승해 상으로 받은 소를 처가에 준 일도 있다. 현재 그는 럭비실업팀의 고문직을 맡고 있으며 씨름보급에도 일조를 하고 있다.

-공부도 부지런히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포항수대(현 포항대학)를 나온 것 가지고는 아직도 너무 배울 것이 많은 것 같고, 무엇이든 공부하기 좋아해서 서울에 있을 때 경영대학원, 행정대학원 등 네 곳의 대학원을 다녔고 포항에 와서도 두 곳을 다녔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회장은 술을 한 잔도 못하면서도 여러 분야의 풍부한 화제와 친화력으로 어떤 술자리에서도 잘 어울린다. 지금은 인생 휴식기라고 말하는 이 회장이지만 지금도 그의 경륜과 능력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의 사무실에는 언제나 봐 주어야 할 서류나 문서들이 줄지어 있고, 시의정회에 참여하고 가끔 강의 요청에 응하고, 포항 원로 어르신들의 모임인 해맞이회의 회장직도 맡고 있다 늙을수록 건강품격과 지식품격을 갖춰야 한다는 이 회장은 지금도 규칙적인 운동과 독서에 열심이다. 순탄하고 어떤 승진 시험에서도 한 번도 누락한 적이 없고, 어느 부처에서나 원하는 사람으로 공직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을 그는 운이라 말했지만,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끊임없는 노력 없이는 안 되는 일일 것이다.

그는 지금 하고 싶은 일이 어린이들을 위한 실내축구장, 농구장, 줄넘기 할 공간을 만들어 자라는 새싹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일이라 한다. 40년 공직생활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고향에서 고향의 큰 어른으로 젊은이들의 사표가 되는 삶을 사는 이석수 회장. 그는 일생을 불꽃같이 살아온 만년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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