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 북구 대현동 신칠분 할머니

영감님을 보살피고 있는 신칠분(왼쪽) 할머니와 복지사 송경희 씨.

"평생을 동고동락하자고 철석같이 맹세해놓고 '병 낫다고', '다쳤다고' 나 몰라라 돌아서면 하늘이 주는 벌 받지요. 부부란 두 사람의 '자식'을 낳고 한 몸을 이루며 평생을 함께 살아가야 할 천생의 반려자인데…."

조금은 긴장이 됐다. 25년 동안 한 자리에 누워있는 중환자 댁을 방문한다는 선입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인 신칠분 할머니는 예상과는 달랐다. 평온한 모습에 너무나 자연스러웠고 필자에게도 전혀 부담감을 주지 않았다.

"저의 영감님은 한창 일할 나이 마흔 일곱에 중풍으로 쓰러져 위독했어요.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남편을 휠체어에 싣고 전국에서 용하다는 의원은 다 찾아 다녔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3년여 겨우 한 숨을 돌리던 차에 설상가상으로 또 엄청난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았겠습니까. 영감님은 척추에 중상을 입었고, 어느 의원을 찾아가도 내일을 장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죽을 힘을 다했습니다. 아들은 휴학하고 저는 새벽에는 노점상, 밤에는 파지를 주어 팔면서 정성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워낙 중상을 입어 끝내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25년 전 그날부터 영감님이 살아주신 것만으로도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영감님의 누워 계신 자세가 너무 힘들어 보이는데요.

"22년을 저렇게 하고 있습니다. 척추를 다쳐 몸이 달팽이처럼 돌아가서 굳어 버렸습니다. 환자 스스로는 머리를 좌우로 조금씩 움직이는 것 말고는 꼼짝을 못 합니다. 먹는 것도 배설하는 것도 저 상태에서…."

온정이 넘치던 노인의 두 눈에는 이슬이 맺히고 얼굴에는 슬픔과 수심이 드리워졌다.

-대문에 들어설 때 노래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제가 노래를 불렀습니다. 영감님이 신혼 때 같이 부르던 노래를 들려주면 아주 좋아합니다. 옛날이 그리운가 봐요. 젊었을 때 같이 하던 일도 다시 얘기해주면 즐거워합니다. 얼마나 답답하고 얼마나 벌떡 일어나보고 싶겠습니까. 저는 시간이 나는 대로 남편이 좋아하는 노래도 불러주고 다시 듣고 싶은 얘기도 몇 번이고 해 줍니다."

-소문에는 영감님이 쓰는 기저귀도 일회용을 안 쓴다고 하시던데.

"보시다시피 저렇게 누워만 계시고 꼼짝을 못하니 배설물을 일회용으로 처리하면 통풍이 잘 안 돼 밑이 헐어버립니다. 그래서 면으로 기저귀를 만들어 하루에도 몇 번이고 갈아주고 삶아서 써야 합니다. 혼자서는 돌아눕지도 못하기 때문에 조금만 게을리 해도 몸이 짓무르고 욕창이 생깁니다. 그리고 영감님이 일회용을 싫어합니다. 남들은 환자가 누워서 배설하기 때문에 물도 적게 주고 음식도 조금만 주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사람이 어찌 남편한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저는 가난하게 살지만 제 능력껏 남편이 원하는 음식도 해 드리고 음치지만 노래도 매일 불러줍니다."

-25년 긴 세월, 너무 고생되지 않습니까.

"남편의 고통에 비하면 저는 고생이라 할 수가 없지요. 부부간에는 한 쪽이 아프면 성한 쪽에서 돌봐야지. 누가 보살펴 주겠습니까. 저는 힘이 들면 누워있는 남편만을 생각합니다. 편하게 살아가는 노인들은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내 남편의 고통은 이 아내의 운명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자기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어도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우리 부부의 일입니다. 희생이라 할 수도 없고 인사를 들을 일도 아닙니다."

-할머님을 만나보니 요즘 번지고 있는 황혼이혼에 대해서 한 말씀 듣고 싶습니다.

"황혼이면 헤어졌던 분들도 다시 만나야지. 재미있을 때는 같이 살고 불편하면 헤어져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후손들에게 큰 걱정거리가 될 것입니다. 우리 아들딸들이 황혼이혼을 배워서 배우자와 퇴직할 때까지만 동거하고 헤어진다고 생각하면 큰일이지요. 부부가 평생을 같이 산다는 믿음이 없으면 시작부터 결혼생활이 불안하게 될 것이고 황혼이혼은 정년이혼으로 가고 다시 중년이혼으로 자꾸 악화될 것입니다. 곡식도 익으면 고개를 숙이고 세상에 가르침을 주는데 특별한 경우도 있겠지만, 황혼에는 자식들의 장래도 좀 생각했으면…."

할머님한테는 황혼이혼이나 부부의 도리 같은 것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속을 훤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동안 노인께서 우리 이웃에 보여주신 수많은 선행사례는 숭고함 그 자체였고 교훈이었으며 도덕적인 깨달음이었다. 그 어떤 스승의 말씀보다도 권위가 있었고 감동적이었다.

중풍에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고 달팽이처럼 굳어버린 중환자가 25년째 생존하고 있다고 하면 모두가 기적이라고 하겠지만 할머님을 만나본 사람이면 할아버지의 생존이 기적이 아님을 쉽게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오직 아내의 순결한 헌신과 사랑과 기도의 덕분이었음을…. 두 분에게 하느님의 가호가 있으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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