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영양 현리마을과 현일동 삼층석탑

현일동 삼층석탑.

영양읍 현리(縣里)는 31번 국도를 따라 영양읍 관문으로 들어 오면 오른쪽 넓은 들에 자리한 동쪽 마을이다.

마을 앞을 가로지르는 반변천은 물이 맑고 주위의 경치가 아름답고, 본래 읍내면의 지역으로서 영양현의 소재지였다 해서 현동이라고 부르게 된 것으로 지난 1914년 행정 구역을 고칠때 양평동을 합하여 현동이라고 이르게 된다.

마을에서 널리 알려져 있는 것으로는 서악사 절터에 있는 무량사와 북악사 터에 있는 3층 석탑, 수장산의 물무지, 남악사의 전탑, 그 밖에 송영당소와 영성사를 들 수 있다.

삼층석탑의 탑신 부조.

북악사 터의 3층 석탑은 탑의 테 면 탑신에 사천왕과 여덟 보살을 양각하였는데 신라 때 세웠으며, 남악사의 전탑은 벽돌 모양의 것으로 쌓아 올렸는데 신라 시대의 것이라 한다.

마을의 동쪽에 산이 있는데 이 산에서 자주 불이 남으로 하여 불의 재난을 막기 위하여 산꼭대기에 물단지 세 개를 묻었는데 해마다 정월 보름이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들어서 이 물단지에 물을 길어다가 부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영양현동당간지주.

△ 보물 610호 현일동 삼층석탑(縣一洞三層石塔)과 영양현동당간지주(英陽縣洞幢竿支柱)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면 현일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높이 4.27m. 보물 제610호. 2층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전형양식이고, 기단과 탑신부에 많은 장엄조각이 있다.

하층기단 중석에는 1면에 3구씩의 십이지상(十二支像)을 조각하였고, 상층기단 중석에는 팔부중상(八部衆像)을 1구씩 조각하였으며, 초층 옥신석(屋身石) 사면에는 사천왕상 1구씩을 조각하였다.

현이동 모전오층석탑.

2층 기단(基壇) 위에 층을 올린 중형의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으로, 3층 석탑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며, 상륜부(相輪部)는 노반(露盤:탑의 맨 꼭대기 지붕 바로 위에 놓여 상륜부를 받치는 부재)만이 남아 있다.

상층 기단 면석에 우주(隅柱:귀기둥)와 탱주(撑柱)가 있고 팔부신중(八部神衆)이 조각되어 있으며, 상층 기단의 갑석은 2매의 판석으로 이루어졌고, 하면에는 부연이 있다.

탑신부는 옥신과 옥개석(屋蓋石:지붕돌)이 별개로 되어 있는데 우주가 조각되어 있고 하층 기단에는 한 면을 3구(區)로 나누어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을 조각했으며, 1층 탑신에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이 배치되어 있고, 사각 사리공(舍利孔)이 있다.

옥개석은 낙수면의 홈이 음각되었고 4단의 받침으로 이루어졌다. 반전된 전각(轉角)에 풍경(風磬)을 달았던 작은 구멍이 있으며 옥신괴임은 2단이다. 조성시기는 탑의 조각양식이나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하대인 9세기경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이들 조각은 건립 당시에는 상당히 우수하였을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닳아 없어져 원래 모습이 분명하지 않은 부분이 많으며, 하층기단과 상층기단 상면에는 각각 호형(弧形)과 각형(角形)의 굄이 있으나 각선(刻線)이 분명하지 않다.

기단이나 탑신부의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나 탱주(撑柱 : 받침기둥)는 굵은 편으로, 기단의 중석과 옥신석은 높은 편이고 옥개석(屋蓋石) 처마 밑은 수평이나 받침 수는 4단으로 줄었고 그밖에 낙수홈이 패어졌고 옥정(屋頂)에는 각형 2단의 옥신받침이 있으나, 상륜부는 모두 없어졌다.

탑 전체가 고준(高峻)하고 옥개석 받침 수가 감소하는 등 각 부 비례에 난조가 보이나, 영양지방에 건립된 많은 석탑 중에서도 화천동삼층석탑(化川洞三層石塔, 보물 제609호)과 함께 특색을 보이고 있으며, 건립시기는 9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1972년 보수를 하여 원형을 유지하고 있고 이 석탑은 밭 가운데에 있으며 주변에 신라·고려의 와편(瓦片)이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그곳이 절터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1977년 8월 22일 보물 제610호로 지정되었다.

삼층석탑 동쪽으로는 절 이름(寺名)과 연혁이 전하지 않은 채 통일신라시대 당간지주(幢竿支柱)의 한쪽만이 남아 있어 한 사역안으로 판단된다.

당간은 당(幢)을 달아 두는 장대이고, 지주(支柱)는 장대를 지탱하도록 하기 위해 당간의 좌우에 세워 둔 기둥이으로 사찰에서의 당은 사찰입구에 꽂은 기당(旗幢)의 일종으로서 기도(祈禱)나 법회(法會)등의 의식이 있을 때 당간에 달게 된다.

이 곳 당간지주의 양식은 위에서 아래로 굵어지는 네모꼴의 화강석 돌기둥으로, 기둥 바깥면의 중앙에 굵은 종선문(縱線文)을 새겨 장식했고 정상부(頂上部)는 일단의 굴절을 갖는 호면(狐面)으로 다듬은 모양이며 안쪽 면의 정상에는 간구(竿溝)를 깊게 파 두었다.

또 당간지주의 뿌리 안쪽 면에 붙여서 별도의 돌로 다듬은 간대(竿臺)가 남아있고. 간대는 상면에 원형의 주좌(柱座)를 조각해 두었으며, 조각의 장식이 별로 없으나 굵고 묵직한 형태는 소박하면서 안정감을 주는 작품으로 높이는 2.45m로 1985년 8월5일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85호로 지정되었다.

△ 현이동 모전오층석탑(縣二洞模塼五層石塔 )과 영성사(永成寺), 영산서원(英山書院)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읍 현2리 영성사 경내에 위치하고 있는 모전오층석탑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석탑. 높이 6.98m, 기단폭은 2.5m이다.

1단으로 된 방형의 높은 석축기단 위에 전(塼)모양으로 다듬은 흑회색 점판암(粘板岩)을 쌓아서 건립한 탑으로 기단 위에는 나직한 받침을 조성하고 그 위에 제1탑신을 쌓아올렸으며, 제1탑신 동면에 방형의 감실(龕室)을 마련하고 있는데, 입구에 화강석으로 된 문주석(門柱石)을 삽입시켜 감실을 견고히하였다.

문주석 앞면에는, 도식화(圖式化)된 문양이기는 하나, 유려한 솜씨로 당초문(唐草文)을 양각하여 가식하였고, 감실의 문주석에 금강역사(金剛力士)를 조각하여 장엄함을 나타내는 경우는 가끔 볼 수 있으나 온화한 당초문으로 가식한 경우는 드문 예로서 이색적인 석탑이다.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탑은 흑회색의 점판암 재질과 둔탁한 겉모습이 어우러져 육중한 느낌을 자아내며, 1972년 12월 29일 경상북도 문화재 제 12호로 지정됐다.

영성사( 永成寺)는 영양읍 현리(縣里)의 석대 위에 있는 절로 무량사(無量寺)와 마주보고 있다.

1940년 지역의 대표적인 자선가인 권영성(權永成)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모하여 세웠으며, 1959년 법당이 소실되자 해운대사(海雲大師) 이채연(李寀淵)과 신도회장(信徒會長) 황상도(黃相燾)가 다시 건립하고 대웅전이라 현판하였다.

영산서원(英山書院)은 영양읍 현리(縣里)에 있었던 서원으로 본래는 중종(中宗)이 소수서원(紹修書院)을 창건하였던 자리에 이황(李滉, 1501~1570) 이 주창하여 역동서원(易東書院)을 건립하였으며 지금은 현동 마을 뒤에 서원터만 남아 있다.

이황이 사망 후 도산서당(陶山書堂) 자리에 도산서원(陶山書院)을 창설하고 향선생(鄕先生)을 사향하였으며, 1655년(효종 6)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이황(李滉)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 위패를 모셨다.

1694년 (숙종 20)에 '영산(英山)'이라고 사액되었으며, 그 뒤 김성일(金誠一)을 추가 배향하였다.

당시의 경내 건물로는 묘우(廟宇), 강당, 신문(神門), 동재(東齋), 서재(西齋), 전사청(典祀廳) 등이 있었으며,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1868년(고종 5)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로 훼철된 뒤 복원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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