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영양 일월 주실마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注谷里) 주실마을. 마을 입구에는 이 마을이 낳은 한국의 대표시인 조지훈 선생의 시비가 있다.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注谷里) 주실마을, 마을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뻗어내려온 흥림산(興霖山)을 안산으로 해 마을의 입구를 막고 있으며 흥림산 아래 자연부락 감복동(甘伏洞)이 있고 남편에 영양읍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마을의 입구에 이 마을 이 낳은 한국의 대표적인 문학가 지훈(芝薰) 조동탁 선생의 시비가 있으며 마을의 중앙을 흐르는 장군천(將軍川)을 좌우로 해 골짜기를 서로 마주하며 이뤄진 마을로 영양의 주산이고,영산인 일월산의 정기를 가장 많이 받는 마을이다.

조지훈 선생의 시비(詩碑).

△주실마을

주실마을은 본래 영양현에 딸린 주곡부곡(注谷部曲)이 있음으로 해 주실 또는 주곡(注谷)이라고 했으며, 지난 1914년 행정 구역을 고칠 때에 감복동(甘伏洞)과 법곡동(法谷洞)을 합해 주곡리라 하고 일월면에 들게 된다.

1630년 이전에는 주씨(朱氏)가 살았으나 1630년 조선 중기 조광조의 친족의 후손인 한양인(漢陽人) 조전(趙佺) 선생이 사화를 피해 이 마을에 처음으로 들어와 정착한 뒤 매한(梅寒)이라 했고, 1700년 무렵 매계(梅溪) 혹은 매곡(梅谷)으로 부르다가 1914년 행정 구역을 고칠 때 주곡(注谷)으로 부르게 됐다.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172호 월록서당.

주실마을은 시인 조지훈(趙芝薰) 선생의 고향으로 이 곳의 조씨(趙氏)를 흔히 주실 조씨라 부르며, 선비의 고장으로 유명한데 마을 전체 분위기와 짜임이 다른 마을과는 달라 학자와 문인이 많이 배출됐으며, 개화기 서양 문물을 빨리 받아들였으며, 1928년부터 지금까지도 양력설을 쇠고 있다.

마을에서 널리 알려져 있는 것으로는 월록서당(月麓書堂)과 시인 조지훈(趙芝薰) 선생의 생가(生家)인 호은종택을 들 수 있으며 또한 옥천종택(玉川宗宅)과 주실마을 숲 속에는 1982년에 '지훈시비'가 건립됐으며, 마을의 당산목인 250년생 아름드리 느티나무와 느릅나무, 소나무 등 수 십 그루의 나무들이 장관을 이뤄 2008년에는 올해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조지훈 선생의 생가인 호은종택(경북도 기념물 제78호).

△월록서당(月麓書堂)과 만곡정사(晩谷精舍)

월록서당은 1983년 9월 29일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172호 지정됐다. 조선시대 문신 옥천 조덕린(趙德隣)의 손자 월하 조운도(趙運道, 1718~1796)가 만곡 조술도(趙述道)와 함께 후진양성을 위해 1773년(영조 49년)에 지은 서당이다. 일월면 주곡리의 한양조씨(漢陽趙氏), 도곡리의 함양오씨(咸陽吳氏), 가곡리의 야성정씨(野性鄭氏)가 함께 참여해 건축했다.

영산서당이 서원으로 승격된 이후 영양군에서는 처음 지어진 서당이며, 많은 학자가 배출되으며, 일월산 아래 서남향으로 위치해 주변의 경치가 수려하고 학문을 연마하기에 좋았던 곳으로 알려졌다.

경북도 민속자료 제42호 옥천종택.

서당 건물구조는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인데 주위에는 방형의 토석담장을 둘렸으며 전면에는 4주문을 세워 서당으로 출입케 했고 평면른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 1칸씩을 연접시켰는데, 대청의 전면에는 각 칸마다 4분합문을 설치해 마루방을 이루게 했다.

서당의 전면에는 계자난간을 세우고 양측면에는 평난간을 둘렀으며, 가구는 오량가의 굴도리집이며 처마는 홑처마로 현판의 글씨는 정조 때 영의정을 지낸 채제공(蔡濟恭)이 직접 썼다. 조선 후기의 건축양식을 대표하는 건물로, 후손인 조기석이 소유·관리하고 있다.

만곡정사는 향토유적문화재 제341호로 조선 정조(正祖) 때의 유학자(儒學者) 조술도(趙述道, 1729~1803)가 후학들에게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1790년 영양 원당리(元塘里) 선유굴(仙遊窟) 위에 건립한 강정(江亭)을 문하생들이 주곡동으로 옮겨 미운정(媚雲亭)이라 했고, 그 뒤 현 위치로 옮겨 만곡정사(晩谷精舍)라 했다.

이 서당은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 평면이나 좌측 온돌방 뒤쪽의 물건을 넣어 두는 수장공간(收藏空間)과 폐쇄형 마루 등의 독특한 구조와 나무를 다듬는 방식은 조선 후기의 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다.

△호은종택(壺隱宗宅)과 옥천종택(玉川宗宅)

호은종택은 경북도 기념물 제78호로 조지훈 생가(趙芝薰 生家)이기도 하다.

영양에 처음 들어온 입향조(入鄕祖) 조전(趙佺)의 둘째 아들 조정형(趙廷珩)이 조선 인조(仁祖) 때 지은 것으로 경북 북부지방의 전형적인 양반가(兩班家)의 모습을 하고 있는 'ㅁ'자형집이다.

이 건물은 정침(正寢)과 대문채로 나눠 정침은 정면 7칸, 측면 7칸이며 정면의 사랑채는 정자 형식으로 되어 있고 서쪽에는 선생의 태실(胎室)이 있고 대문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으로 돼있고 솟을대문이 있고 6·25전쟁 당시 일부가 소실됐으나 1963년 복구됐다.

호은종택에 사는 조씨를 가르켜 칼날 같은 남인(南人) 집안이라 하여 검남(劍南)이라 불렀는데 검남의 집안으로서 체통을 지키기 위해 재물을 빌리지 않고(財不借), 남의 문장이나 학문을 빌리지 않고(文不借), 사람을 빌리지 않는(人不借)다는 삼불차(三不借)의 가훈(家訓)을 철저히 지켜 내려왔다.

이 곳은 청록파(靑鹿派) 시인의 한 사람이며, 대표적인 한국 현대시인이고 국문학자였던 조지훈(1920~1968)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조지훈의 본관은 한양(漢陽)이고 본명은 동탁(東卓)이며 지훈은 호다. 선생은 1939년 문장지(文章誌)에 '고풍의상(古風衣裳)으로 추천되면서 문단에 나와 '청록집' '풀잎단장' '조지훈시선' 등을 남겼으며, 시인이자 국문학자로서 유명한 것은 물론 지조(志操)있고 풍류(風流)있는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2007년에는 조지훈 선생의 안경 등 유품과 육성 녹음 테이프 등을 관람 할 수 있는 지훈문학관이 주실마을에 개관 됐으며,마을 뒤편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며 지훈 선생의 시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옥천종택은 경북도 민속자료 제42호로서 17세기말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양(漢陽) 조씨(趙氏) 옥천(玉川) 조덕린(趙德隣, 1658~1737)의 고택(古宅). 조덕린은 조선 숙종(肅宗) 17년(1671)에 문과(文科)에 급제, 교리(校理)와 동부승지(同副承旨) 등을 역임했다.

이 집의 구조는 살림채인 정침(正寢)과 글을 읽는 별당(別堂)인 초당(草堂)과 가묘(家廟)인 사당(祠堂)으로 구성돼있고, 살림채는 안동지역을 중심으로 분포돼있는 'ㅁ자'형 뜰집의 전형적인 구성을 보이는데 다만 안방이 동쪽에 오고 사랑방이 서쪽으로 배치된 점만이 다르다.

집의 평면구성에 좌우가 바뀐 이 같은 형식은 18세기부터 안방과 부엌이 서쪽으로 배치되는 평면구성으로 통일되는 특징을 가지는데, 이 살림집은 지붕을 박공(朴工)으로 처리하는 등 상당히 오래된 건축기법을 간직하고 있다.

초당은 전형적인 서당의 평면구성을 보이고 있으며, 사당은 18세기말 건물로서 일반적인 형식에 속하며, 경북 북부지방의 폐쇄적인 'ㅁ자형 뜰집'의 민가(民家) 형식을 잘 갖추고 있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