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영양읍 삼지리

연꽃과 소나무과 어우러진 삼지 연못 중에 하나인 연지못.

영양 읍내에서 일월면 방향으로 31번 국도를 타고 영양 시가지를 벗어나면 영양읍 삼지리 이정표가 보이는데 이를 보고 3㎞쯤 가면 삼지리가 나온다.

삼지(三池)는 '못이 세 곳 있다'는 의미로 영양읍 삼지리 뒷산인 옥산을 중심으로 주위에 간지(澗池), 연지(蓮池), 항지(項池)가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이 곳은 옛날에 반변천이 돌아 흐르던 곳으로 옛날 큰 홍수로 하원리 옥선대 앞 산맥이 끊어져 물길이 바뀌고, 그 곳에 전형적인 우각호가 형성되면서 훗날 주민들이 이를 이용하여 저수지를 만든 것으로서, 지금도 삼지 부근 논에 관정을 만들기위하여 깊이 파보면 강물이 흘렀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영양삼지동모전석탑

산맥 끊기고 물길 바껴 우각호 형성

넓고 비옥한 땅에 '풍요로운 수확'

▲ 삼지리와 삼지 연못

삼지리 세 개의 연지를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진 마을이다. 북은 높은 산으로 벽을 삼으며 섬 같은 산을 한 가운데 두고 마을 한 가운데로 찻길이 나 있어 한바퀴 돌아 나가며, 삼지라 함은 하원리에 있는 원댕이못과 삼지 2리에 있는 탑밑못. 삼지리에 있는 바대못을 통틀어 이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본래 영양군 동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 구역을 고칠 때 사평동, 원하동, 연지동의 각 일부를 떼다가 삼지동에 넣는다.

영양하담고택

수만 년 전 대천(大川), 현 '반변천'이 산맥을 자르며 물길이 바뀌자 넓고 기름진 땅이 생겼는데 그 땅이 바로 '삼지리'인데, 다른 마을보다 풍요로운 수확을 거둘 수 있었기에 '사슴이 은혜를 갚기 위해 산맥을 잘라 놓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형세가 마치 코끼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코끼리산이라 불리는 '옥산'은 이 곳에 신선이 구슬을 가지고 놀았기 때문에 옥산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사실은 산의 형세가 마치 '구슬을 꿰어 놓은 것처럼 올록 볼록하다'고 해서 '구슬산'이라는 의미로서 '옥산'아라고 하며,과거 대천이 흘렀던 하천변으로 모래가 평지처럼 쌓인 사질토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모래평지마을'이라는 의미로 '사평리(沙坪里)'라고 부르기도 한다.

삼지 연못 중 하나인 '간지(澗池)'는 현재 하원리 원당 앞에 있는 못으로 3개의 못중에서 지대가 가장 높은 곳에 있으며,못이 작고 계곡사이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20세기 말까지도 '계곡사이의 못'이라는 의미로 '간지'라고 한다.

'연지(蓮池)'는 '간지'와 '항지' 사이에 있는 못으로 못에 연꽃이 많이 자생하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영혈사'라는 절 밑에 있다 하여 '영혈지'라고 부르고, 그 절에서 세운 3층모존석탑 아래 있다고하여 '탑밑못'이라 부르기도 하며,여름철에는 노송(老松) 그늘에서 연꽃을 바라보며 낚시를 드리우는 재미는 자연을 벗삼아 유유자적하는 이의 흥취를 더한다.

'항지(項池)'는 3개의 못 중에서 맨 아래쪽에 형성된 못으로 가장 크고 수심도 깊어 마치 '새의 목처럼 길게 형성되어 있다'고 해서 '항지'라고 하며, 1750년에 제작된 해동지도에 의하면 못의 명칭이 '항곡지(項谷池)'로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곡'이 생략되어 '항지'라고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파대지' 또는 '바대지'라고 부르는데 이는 못의 형태가 마치 베틀의 바디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화강석을 벽돌모양으로 잘라 축조

1998년 석재 사리함·사리 1과 출토

△ 영혈사와 영양삼지동모전석탑

이 마을 뒷산에는 신라시대 고찰인 영혈사(靈穴寺)가 있었는데 400여년 전 허물어진 후 그 자리에는 조선조 선조 때에 학자인 사월(沙月) 조임(趙任) 선생이 절터에 암자를 세우고 연대암(蓮臺菴)이라 하였는데 지금도 불신도들이 많이 오고 간다

꼬불 꼬불하고 비좁은 산길을 따라 가면 암자 우측 절벽 끝에 3층 전탑이 서 있는데 원래 3층으로 만들어졌지만 현재는 2층까지만 남아 있으며, 1962년 탑을 수리할 때 불상을 안치하는 감실바닥을 정리하는데 6좌의 금동불이 발견됐으며, 삼국통일 이전에 만들어진 호신불이라 하니, 탑은 천년도 더 된 셈이다.

암자 뒤편에는 자연 석굴이있는데, 이 곳에서는 지금도 샘이 솟아 나오는데 이 물의 맑고 흐름으로 한 해의 풍흉을 점쳤다고 해서 '영혈(靈穴)'이라 부르며, 이 샘물을 한번 마시면 속이 시원해 이른바 보리수가 된다고 하였으니 신령한 굴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영양삼지동모전석탑은 삼지리 뒷산인 '옥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절벽을 이룬 산중턱에 튀어나온 높이 2.9미터의 자연 암반능 기단으로 하여 그 위에 평평한 판석을 깔고 화강석을 벽돌 모양으로 잘라서 축조한 모전 석탑으로 현재 2층까지만 남아 있으나 원래는 3층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 연대암 부근의 영혈사가 있었는데 영혈사는 통일신라 이전에 창건된 사찰로 이 탑 또한 영혈사 창건시에 세웠을 것으로 보이며, 초층 탑신 폭이 1,41미터로 전면 즉하천을 향한 면에는 탑신 규모에 비해 비교적 큰 감실이 조성되어 있으며, 1962년 탑을 수리할 때 불상을 안치하는 감실바닥을 정리하다가 매몰되어 있던 소불상 6구를 발견하였다. 그 중 2구는 감실바닥에 넣어서 석회로 봉해 버렸다고 해나머지 4구의 불상은 현재 전하지 않고 있으며, 1998년 석탑의 해체 보수시에는 석재 사리함과 사리 1과가 출토 되었다

1층 탑신부 앞면에 큰 불상을 안치하는 방인 감실이 있고,감실의 하단부에는 정면으로 7센티미터가량 튀어 나온 석재거 마련되어 있으며, 1층 옥개의 폭은 2.25미터로 옥개 받침은 6단,옥개석에는 풍탁을 달았던 구멍이 뚫여 있으며, 1층 옥개의 상부 낙수면은 7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위에 2층 탑신을 세웠고 2층 옥개 받침은 5단이고 상부 낙수면은 6단으로, 남아 있는 2개의 옥개석은 모전이라는 조건 때문에 낙수면과 옥개받침이 층계형태로 표현되어 있다.

현재 상륜부에는 두 단의 돌을 쌓고 노반 복발이 남아 있으며, 노반과 복발은 단일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재 탑의 높이는 3.14미터로 1985년 8월 5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83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사월공 조임' 손자 조시벽이 40세경 건립

ㅁ자형 건물로 사랑채·안채 오량각 구조

△영양하담고택

하담고택(荷潭 古宅)은 임란과 병자호란에서 공을 세워 자헌대부(資憲大夫) 지중추부사를 제수 받은 한양조씨 사월공 조임(趙任 1573~1644)의 손자인 조시벽(趙是璧 1670~1753)이 40세경 건립했다.

고택은 정면 7칸,측면 5칸 반 규모의 ㅁ자형 건물로 사랑채 전면마당에 연지를 조성했고 우측 전면에 있는 삼나무와 은행나무 아래 커다란 암석이 놓여 있으며, 원래는 ㄱ자형의 초가 1동이 있었고 안변소와 사랑변소도 있었으나 1985년에에 모두 철거하고 현재 정침만 남아 있다.

평면은 중문칸의 우측에 온돌방 1칸과 광 1칸을 두고 좌측에는 팔작지붕을 얹은 3칸 규모의 사랑채를 배치하였는데 좌측칸의 사랑마루와 우측칸의 광은 좌우로 돌출되어 양날개집의 형상을 이루게 했으며,사랑채는 사랑마루방 1칸과 사랑방 2칸으로 구성한 후,전면에는 빈칸 규모의 퇴칸을 두었는데 퇴칸의 전면으로는퇴를 확장시켜 평난간을 세웠다.

안채는 좌로부터 방,대청,방,안방,부엌이 연접되어 있는데 안채의 전면으로는 좌우측 모두 통래칸 1칸을 둔 후 헛간과 고방을 연접시켜 각각 좌·우익사를 이루게 했고 가구는 사랑채와 안채 모두 오량각의 구조이며 양익사는 삼량가이다. 2003년 4월 17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41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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