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을 빛낸 여성들-4 세오녀(細烏女)
경북을 빛낸 여성들-4 세오녀(細烏女)
  • 진용숙기자
  • 승인 2011년 12월 19일 22시 56분
  • 지면게재일 2011년 12월 20일 화요일
  • 1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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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제철기술 전파 신라의 여인, 그들의 신이 되다
일월지

신라 제 8대 아달라왕 4년 (157년 아달라이사금)에 동해 바닷가에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연오랑이 바다에 가서 해초를 따고 있던 중 갑자기 바위 하나(물고기 한마리라고도 한다)가 나타나 연오랑을 등에 싣고 일본으로 가버렸다. 이것을 본 그 나라 사람들은 "이는 범상한 사람이 아니다"하고 왕으로 삼았다.

세오녀는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바닷가에 나가서 찾아보니 남편이 벗어놓은 신이 있었다. 바위 위에 올라갔더니 그 바위는 또한 세오녀를 싣고 일본으로 갔다. 그 나라 사람들은 놀라고 이상히 여겨 왕에게 사실을 아뢰었다. 이리하여 부부가 서로 만나게 되니 그녀로 귀비(貴妃)를 삼았다.

세오녀를 모신 사당. 비단짜는 신으로 받들어져 극진히 모시고 있다.

이때 신라에서는 해와 달에 광채가 없었다.

일관이 왕에게 아뢰기를 "해와 달의 정기가 우리나라에 내려 있었는데, 이제 일본으로 가버렸기 때문에 이러한 괴변이 생기는 것입니다" 했다.

왕이 사자(使者)를 일본에 보내 두 사람을 찾으니 연오랑은 말한다. "내가 이 나라에 온 것은 하늘이 시킨 일인데 어찌 돌아갈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나의 비(妃)가 짠 고운 비단이 있으니 이것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 될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비단을 주니 사자(使者)가 돌아와서 사실을 보고하고, 그의 말대로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 그런 뒤로 해와 달의 정기가 전과 같았다.

고대 제철.

이에 그 비단을 임금의 창고에 간수하고 국보로 삼으니 그 창고를 귀비고(貴妃庫)라 한다. 또 하늘에 제시 지낸 곳을 영일현, 또는 도기야(都祈野)라 한다.

(우리나라와 일본사이 최초의 민간교류에 얽힌 사화(史話)의 역문)

세오녀(細烏女), 신라 아달라이사금 때의 '연오랑세오녀전설'의 여자 주인공. 연오랑의 부인으로 일본에 신라의 선진 기술을 전해주면서 일본의 신으로 추앙받는 여인이다.

포항 호미곶 해맞이 공원에 있는 세오녀 동상.

도기야에서 야철장을 운영할만큼 제철기술을 지닌 세오녀는 "신라의 동해 바닷가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제철기술 집단의 여성지도자가 된 사람으로 봐도 무리가 없다"고 이영희교수(포스코 미래인재아카데미)는 말한다.

포항의 고대지명은 근오기(斤烏伎)다. 북위 36도인 영일 근오기에서 똑바로 동쪽으로 가면 일본 오키섬에 가 닫는다. 또 곧바로 남하하면 일본고대 부족국가 가운데 하나였던 이즈모국에 가 닿는다.

이즈모는 이름난 철 산지였다.

'삼국유사'의 연오랑·세오녀 대목의 은유를 찾아 그 수사의 사연을 살펴본 이영희교수는 바위가 연오랑 세오녀를 태우고 일본으로 갔다는 것은 그들이 바위처럼 크고 튼실한 배를 타고 갔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들이 조선술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또 연오랑 세오녀가 일본에 가자 신라에 빛이 사라졌다는 것은 그들이 관장하고 있던 야철장의 불빛을 달빛으로 은유한 것이라고 했다.

통틀어 사흘 밤낮, 즉 72시간을 가마에 불을 지피는 고대 제철 불빛은 멀리서 보면 신령스런 달빛과 같았으리라.

그럼 세오녀는 일본에 간 후 어떻게 되었을까?

일본에는 '귀한 여인의 섬'을 뜻하는 '히메지마'라는 보물섬이 있다. 큐슈 동쪽 쿠니사키(國東)반도 끝자락에 6㎞ 더 간 한바다. 총면적 6.85㎢, 둘레 17㎞의 아주 작고 아름다운 섬이다.

도미·문어·문치가자미가 풍성하게 잡히는 바다의 노루목이었지만, 이 고장이 '보물섬'이라 불리는 것은 흑요석(黑曜石)이 산출되기 때문이다.

검고 단단한 유리를 닮은 돌 흑요석은 화살촉·칼날·도끼날 등으로 사용된 고대의 중요한 석재다. 무쇠가 생산되기 전에는 무쇠칼·무쇠촉·무쇠도끼 대신 긴요하게 쓰인 생활도구와 무기의 원자재였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나지 않았다.

한반도에는 없는 흑요석을 찾아 2세기의 그 옛날, 일본의 히메지마까지 간 우리나라 여인, 그가 히메고소라는 이름의 여성이다.

시마네현 이즈모(出雲), 마츠에(松江)시 등지에는 '새로운 해가 한반도 신라로부터 땅을 끌어 당겨 나라를 일으켰다'는 신화가 전해진다. 그 내용은 한반도 영일만에서 바위(땅의 이미지)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연오랑세오녀 신화와 일치한다.

또 이들 고장에서는 히메고소진자(比賣語曾神社)라는 사당을 지어 지금껏 극진히 모시고 있다. 특히 큐슈의 무나카타에서는 비단을 짜는 신으로 받들어져 있다. 이 설화가 한일의 공동관심사가 된 연유는 양국의 현실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세오녀는 "흑요석을 얻기 위해서만 히메지마를 찾은 것은 아니었다"고 이영희교수는 말한다. 이 섬에서 캐지는 남철광석을 얻고자 했던 것이다. 남철광은 땅 속이나 호수 바닥에 묻혀 있을때는 흰색, 또는 무색의 기둥모양 결정체이지만 공기와 접촉하면 아름다운 쪽빛으로 변한다. 희귀하고 신비로운 철광석이다. 무르고 부숴지기 쉬운 철광이기 때문에 비교적 얕은 온도의 불로도 무쇠만들기가 가능했다.

그래서 세오녀는 무기를 만들어 신라에 보낸 것으로 이해된다는 것이다.

최근 포항시와 일본의 교류가 빈번해지면서, '연오랑 세오녀' 설화가 중요한 연구과제로 부상되고 있다. KBS '역사스페셜'에서는 포항시와 이즈모시의 연오랑 세오녀 설화 현장을 찾는 역사탐방이 방영되었고, 그 설화를 주제로 일본 이즈모시의 교육계 인사들이 참여한 '한일공동연구수업'이 열렸다.

또 독도 문제로 중단된 경북도와 시마네현 사이의 교류를 재개하기 위해 포항에서 일본 시마네(島根)현까지 통나무배를 타고 건널 계획을 세우고 있던 일본 전직교사 6명이 직접 만든 통나무배를 타고 시마네현 앞바다 22㎞ 구간의 항해에 성공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통나무배를 타고 포항을 출발, 시마네현까지 항해하며 중단된 경북도와 시마네현간의 교류를 다시 이어 보겠다는 이들의 꿈이 한걸음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게 됐다.

환동해지역의 학계와 문화계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설화와 설화현장 지역의 신화, 역사, 지명(地名), 교류사 등을 연구대상으로 삼아 상당한 성과를 올리고 있다. 포항시가 기획한 '불꽃축제'와 '연오랑·세오녀공원' 조성도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연오랑·세오녀' 이야기는 포항문화의 위상을 높여주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배용일 교수는 그 동안 연오랑 세오녀가 살던 지역과 일월제 제의 지역의 지속적인 현지답사와 '영일읍지'의 자료를 통해 연오랑 세오녀를 실존인물이라는 근거를 제시해 주었다.

이제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한국과 일본열도를 오가며 운명을 개척한 세오녀처럼, 꿈을 지닌 미래의 '세오녀', 미래의 '아메노히보코'가 돼 동북아 미래의 주역이 되라고 말하고 싶다. <끝>

*이 기사는 경북도와 경북여성정책개발원의 협조하에 기획·취재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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