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익 포항대학 세무·부동산컨설팅과 교수

겨울이라 모두 따뜻한 곳으로 모여 들고 있다.

이쯤 되면 방안 아랫목이 생각나고 군고구마도 생각이 난다.

전원생활로 한번 가 보자.

요즘 농촌에 집을 짓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필자의 지인도 도시생활을 접고 인근지역에 출퇴근이 가능한 곳으로 집을 지어 이사했다. 마을 사람들이 반기고 가족들도 참 좋아해 만족해하고 있다.

주택을 신축할 때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어떤 곳에 어떤 자재를 사용해야 할지, 비용이 얼마나 들지 등이다.

하지만 제일 고민한 것은 해가 잘 들고 따뜻한 곳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집, 분위기 있는 집에 너무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외부 모양도 멋있어야 하고 내부 공간도 특별한 것을 원할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그런 것들이 오히려 생활하는 데는 불편을 초래할 수도 있다.

옛 이야기가 있다. 어느 제자가 산에서 열심히 도를 닦은 후 스승을 찾아와 말했다. "스승님, 저는 산속에서 밤낮없이 10여 년간 도를 닦아 방안에 앉아서도 밖을 볼 수 있는 투시력을 얻었습니다. 누구도 하지 못한 것을 제가 해냈습니다."

그런 제자에게 스승이 말했다. "참으로 대단하구나. 그런데 난 지금이라도 그 도를 행할 수 있는데 산속에 갇혀 10년 넘게 그 고생을 했느냐?" 대수롭지 않다는 듯 스승이 말하면서 창문을 가리켰다. "저 문을 열어 보거라!" 제자는 스승의 신통치 않은 반응에 힘이 빠져 시키는 대로 문을 열었다.

그러자 스승이 제자에게 말했다. "문만 열면 밖이 훤히 보이지 않느냐. 이토록 쉬운 도가 있는데 왜 방 안에 앉아서 벽을 뚫고 밖을 보겠다며 그렇게 고생을 했느냐?"

이 이야기처럼 전원주택을 지으며 방 안에서 밖을 보겠다고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다.

도시 생활을 접고 시골에 내려온 사람들은 대부분 모두 친환경적인 것에 강박 관념을 가지고 있다.

집도 친환경적인 황토집이나 통나무집을 고집하고 구조도 친환경적이라야 한다.

바깥 경치를 더 잘 보기 위해 거실의 사방을 통창으로 하고 침실에서도 하늘을 볼 수 있게 천창을 단다.

1년만 시골에서 지내보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시작은 모두 그렇게 한다. 그러다 지쳐 버린다.

거실을 통창으로 하면 언제나 바깥 경치를 감상할 수 있겠지만, 여닫이 창문이 아니어서 환기를 시키기 쉽지 않고 깨지기라도 하면 전체를 갈아야 한다.

게다가 단열성이 떨어져서 겨울에는 난방비를 걱정하게 된다. 그렇게 살아보면 '방 안에서 투시력을 키울게 아니라 문 열고 나가면 되는데….'라며 후회한다.

옛 선조들은 방안에서 밖을 보기 위해 손바닥 크기만 한 유리창을 달았을 뿐이다. 그것도 안에서는 한지를 붙여 놓아 필요할 때마다 한지를 들추고 밖을 내다보았다.

좀 더 바깥 경치를 즐기기 위해 마당에 정자를 지었다. 경관 수려한 계곡이나 산 위에 누각을 지어 놓고 경치를 찾아 나섰다.

그런데 요즘 전원주택을 짓는 사람들은 방 안에서 온 동네 경치를 감상하려고 한다. 높은 곳에 자리를 잡고 문살도 경치를 가린다며 문살 없는 넓은 창을 단다.

하지만 전원생활에서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활의 편리함과 관리의 수월함, 그리고 저렴한 연료비이다.

아름다운 주변 경치를 보고 싶으면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된다. 넓은 데크에서나 마당에 더욱 시원하게 바깥 경치를 볼 수 있다. 굳이 집 안에서 바깥을 보겠다면 그 만큼 불편이 따르고 경제성이 떨어진다. 전원생활은 꿈이 아닌 현실이다. 하루하루 살아야 하는 생활이고 삶의 일부다.

편안하게 전원생활을 누릴 수 있는 집이 가장 좋은 집이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결국 살기 편한 집, 관리하기 편한 집이 가장 좋은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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