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희 교수의 역사칼럼 연오랑 세오녀의 진실

제철소를 다스리던 여인으로부터 그녀의 딸을 넘겨 받은 사나이는, 그 제철소 소속의 일꾼이었고 세오녀의 친아버지였을 가능성이 높다. 세오녀의 어머니인 지체 높은 여인이 일본으로 떠나며, 아무한테나 딸을 넘기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역사책인 '고사기(古事記)'에 의하면, 세오녀 어머니는 '낮잠 중에 반란사건(겁탈당했음을 뜻하기도)'을 겪었고, '그때 태양에 무지개가 꽂혔다'고 한다. '태양에 무지개가 꽂혔다'거나, '무지개처럼 빛난 태양'이란 표현은 '왕이 반란 겪음'을 뜻하는, 고대식 역사 글발이다. 낮잠 자고 있었다는 세오녀의 어머니는 임금급의 고위층이었고, 그녀를 범한 사나이가 하위급의 인사였음을 일러주는 대목이다.

'고사기'는, 어린 세오녀의 이름을 '아카타마(赤玉)'라 밝히고 있다. '붉은 구슬'과 '아기 왕'을 동시에 뜻하는 일본식 이중(二重) 이름이다. 세오녀가 왕녀(王女)였음을 일러주는 이름이다.

사나이는 여인에게 졸라 아카타마를 얻었고, 늘 허리에 차고 다니다 어느날 연오랑과 부닥친다. 황소 등에 도시락을 싣고, 산 속 숲에서 작업하는 일꾼에게 전해 주려 가던 참이었다.

산 속에서 몰래 소를 잡아먹으려는 것이 아니냐는 연오랑의 다그침에, 사나이는 허리에 차고 있던 붉은 구슬을 풀어서 '내물'로 바쳐 그 자리를 모면한다. 연오랑과 세오녀는 이렇게 해서 결혼하게 된다.

붉은 구슬을 집으로 가지고 온 연오랑은, 우선 그것을 마루 바닥에 놓는다. '마루 바닥에 놓았다'는 것은, 세오녀를 처음 얼마 동안은 천대했음을 말한다. 그러다 그 붉은 구슬이 아름다운 소녀로 변신하자, 연오랑은 아주 좋아하며 정처(正妻), 즉 왕자비(王子妃)로 맞아들인다. 세오녀도 맛있는 산해진미(山海珍味)로 요리를 만들어 남편을 공경한다. 아달라왕 4년까지, 그들은 행복한 내외였다.

'고사기'는, 이 대목에서 연오랑이 '신라 왕자'임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세오녀의 아버지는 제철소 소물이꾼?

고대의 숲은 소중한 국가 자산이었다. 제철의 땔감으로 쓰일 숯을 마련하자면 엄청난 목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 관리자는 나무가 우거진 산을 관리하며, 서민이 함부로 들어가 벌목하는 일이 없도록 철저히 단속했다.

왕자 연오랑도, 국가 관리자로서 산에 드나드는 서민을 엄히 단속했을 것이다.

사나이는, 연오랑이 산 어귀에 있음을 미리 알고 간다. 연오랑이 길을 막으면 붉은 구슬 즉 세오녀를 '마지못해 바치는 척'하면 된다.

결국 이 방법으로 세오녀는 연오랑과 맺어진다.

천한 계층의 아비가 고안해 낸 기발한 신분상승 아이디어였다고 할까. 신라왕자였던 연오랑에게 일찌감치 넘기므로써 딸의 신변 안전을 도모했을 수도 있다. 세오녀의 아버지는, 행동력 있는 날렵한 인물이었다고 보이진다.

그는 무엇을 하던 사나이었을까.

그는, 산에서 작업하는 일꾼의 도시락을 소에 싣고 입산하려다 연오랑의 단속에 걸렸다.

'산에서 작업하는 일꾼'이란, 제철(製鐵)용의 숯감 나무를 벌목하는 나무꾼을 가리킨 것이지만, 그 나무를 다듬어 반구이 숯으로 만드는 숯구이꾼까지를 포함한 낱말이기도 하다. 숯구이 가마도 물론 산중에 있다.

연오랑의 단속에 걸렸다는 것으로 미루어, 세오녀의 아버지는 산 속 작업장의 책임자로 보기는 어렵다. 작업장 책임자의 얼굴을 연오랑 왕자가 몰랐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럼 숯구이 가마터의 책임자? 아니면 단순한 소몰이꾼?

숯구이 가마터의 책임자가, 제철소 총책이요 제철 제사장이기도 한 여성 관리자를 만날 기회는 별로 없어 보인다.

세오녀 어머니는 제철소 늪가에서 낮잠 자고 있다가 '일'을 당했다. 대낮에 늪가를 가던 소물이꾼이 세오녀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가장 높아지는 셈이다.

제철여왕과 소물이꾼 ― 언뜻 낭만을 느끼게 하는 한쌍이지만, 그들이 사랑으로 엮어진 관계인지, 우발적인 맺어짐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훗날 세오녀가 일본으로 떠나며 '부모의 나라로 간다'면서 일본으로 떠났다는 '고사기'의 기술(記述)로 보아, 세오녀의 아버지는 당시 일본에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가 일본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에 관한 기록은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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