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희 교수의 역사칼럼 연오랑 세오녀의 진실

이철진作

놀라운 일이 있다.

연오랑은, '빛깔'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화학(化學)적 방법에 의해 납(鉛)에서 물감을 추출해내어, 토기(土器)나 건물에 빛깔을 칠했던 것이다.

2세기의 옛날에, 그것은 생각할 수 없는 획기적인 예술 행위였다.

고구려의 화가승(畵家僧) 담징(曇徵·579~631)은 유화(油畵)에 능했다.

그가 만든 안료(顔料·그림물감)는 유명하다. 납을 빨갛게 달군 다음 천천히 식히면 고운 물감이 생겨난다. 갑자기 식힌 것은 연노랑 빛깔의 물감으로 은밀타(銀密陀), 천천히 식힌 것은 붉은 노랑색 물감으로 금밀타(金密陀)라 불렸다. 들기름에 이 물감들을 섞어 그리는 유화(油畵) 기법은, 담징이 7세기의 일본에 전한 그림 기법이다. 담징이 그린 일본 호오류우지(法隆寺) 그림 '금당벽화'는, 경주 석굴암과 함께 동양의 3대 미술품의 하나로 꼽혔으나, 1948년 불타버리고 말았다.

이에 앞서, 연오랑도 납으로 갖가지 안료를 만들어 2세기의 일본에 전한 것이다.

일본 시가켄(滋賀縣) 나가하마시(長浜市) 요고쵸(餘吳町)에 있는 에레히코진쟈(鉛練比古神社)는, 연오랑을 지금껏 제사 지내고 있는 규모 큰 선황당이다.

'에레히코'란, '납을 으깨는 사나이'를 뜻하는 일본말이다. 연오랑은 '납에서 빛깔을 빚어내는 존귀한 사나이'로 숭앙 받고 있었던 것이다.

납은, 가열하는 방법에 따라 갖가지 빛깔의 안료로 변하는 신기한 광물이다.

때로는 빨강으로, 때로는 노랑으로, 또 때로는 흑색과 백색으로… 다양하게 변모되는 그 모습에, 옛백성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연오랑은 천재적인 지도자였고, 동시에 성실한 기술자였음을 깨닫게 된다.

2세기의 그 옛날에, 화학적 방법으로 빛깔을 생산할 줄 알았던 멋진 발명가.

호수를 메꾸어 논을 만들고, 고리버들 가지로 고리짝을 만들어 서민에게 나누어 준 담대하고도 자상한 사람. 우리는 요즘 이런 인물에 목 말라 하고 있다.

◇…요고(餘吳) 호수 가에는 '선녀의 날개옷' 전설도

연오랑이 대토목공사를 벌여, 호수의 절반을 논으로 바꾼 요고호(餘吳湖) 북쪽 기슭에는 '선녀(仙女)의 옷걸이 버들'이 있다.

하늘에서 온 여덟 선녀가, 백조로 탈바꿈하여 이 호수가에 날아 내렸는데, 고리버들나무에 날개옷을 걸어놓고 물놀이 하는 중, 이카토미(伊香刀美)라는 자가 흰 개를 시켜 막내 선녀의 옷을 숨긴다.

옷이 없어 하늘로 돌아가지 못한 그 선녀는 할 수 없이 이카토미의 아내가 되어 2남 2녀의 아들 딸을 낳아 요고 호숫가에 살았다. 그 자손이 요고 호반 북쪽 땅을 개발한 무리였다고 전해진다.

백조(白鳥)라거나 흰 개(白犬) 등, 일본 전설이나 사화(史話)에 등장하는 하얀 동물은, 흔히 신라와 관련 있는 인물을 상징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흰색을 가리키는 일본말 '시로(しろ·白)'는, '신라'와 그 발음이 흡사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여덟 처녀'란 '예(濊)의 처녀'를 나타내는 말이다. '하늘의 여덟 처녀가 백조가 되어 내려왔다'는 것은, 지체 높은 예(濊)계의 신라인 처녀들이, 일본 여고 호반에 나타났음을 의미한다. 예계 신라 여성들의 일본 진출을 묘사한 것으로 여겨지는 대목이다.

연오랑과 그 집안 일족을 제사 지내는 서낭당이 가장 많이 밀집되어 있는 고장은, 효고켄(兵庫兵) 토요오카시(豊岡市)로, 이곳에는 오랜 역사를 지니는 신사(神社)들이 즐비하다.

그 중에서도 '제 1궁(宮)'으로 숭상받고 있는 이즈시(出石)신사는, 연간 일곱 차례의 연오랑 제례(祭禮)를 올리는 대규모 서낭당이다.

정초의 정월제를 비롯하여 1월 초사흘날에 올리는 삼일제, 제염제(製鹽祭·소금제사)를 겸한 입춘제(立春祭), 봄철 대제(大祭), 단오잔치를 겸한 절구제(節句祭), 가을의 신곡제(新穀祭)와, 10월 20일의 대례제(大例祭)를 꼽을 수 있다. 이 대례제를 올리는 10월 20일이, 연오랑 기일(忌日)이 아닌가 점쳐지고 있다. 드넓고 정갈한 경내에서 알뜰하고 꾸준히 제사 지내고 있는, 연오랑을 향한 일본인들의 숭배심이 돋보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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