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희 교수의 역사칼럼 연오랑 세오녀의 진실

이철진作

연오랑은, 일본 갈 때 여러가지 보물과 장비를 가지고 갔다.

일본의 고대 역사서 '일본서기'(서기 720년 편찬)에 의하면, 연오랑이 일본에 가지고 간 물건은 일곱가지다. 한편 '고사기'(서기 712년 편찬)는, 여덟가지라 기록하고 있다.

모두 '보물'이라 치부되고 있는 이들 물건은, '일본서기'와 '고사기'의 경우 그 내용이 사뭇 달라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고사기'는, 바다를 항해하는 중 기도 드릴 때 쓰이는 물건인 '비례(比禮)' 4종, 옥구슬 2관(貫·두줄의 뜻인듯) 외에 거울 2장 등 모두 여덟가지인데 비겨, '일본서기'는 다양한 품종의 귀중품 품목을 두루 소개하고 있다.

즉, 옥구슬 3종류, 작은 칼 한자루, 박기 즉 창(槍) 한자루, 거울 한장, 곰의 제사용 장비 한구(具) 등 모두 일곱가지 물품들이다.

이와 같이 두 역사 책의 기록에 차이가 있는 것은, 어느 한쪽의 기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연오랑은 이들 두 책에 실린 모든 물건을 가져갔으나, 각기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물품을 고르다보니, 각각 다른 리스트가 만들어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즉, '고사기'의 경우 항해 중의 안전을 빌기 위한 도구를 중요시했고, '일본서기'는 일본에 도착한 후 필요한 물건들을 중심으로 리스트를 짰다고 보아지는 것이다.

◇…곰의 제사도구 '히모로기'란 무엇일까.

연오랑 즉 아메노히보코(天日槍·연오랑의 일본 이름)를 지금껏 제사 지내고 있는 효고켄(兵庫縣) 이즈시진쟈(出石神社)가, 신물(神物)로 삼고 있다는 이들 입곱가지 보물 중, 우리의 눈을 끄는 것은, 곰의 제사장비 '히모로기'이다.

연오랑은, 곰을 제사 대상으로 삼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연오랑은 왜 곰을 제사 지냈으며, '히모로기'라는 그 제사 장비는 어떻게 생긴 물건이었을까.

고대의 일본인들은, 소나무 등 상록수 목재로 기둥과 지붕 뼈대를 엮은 작은 가옥을 히모로기라 불렀다.

이 뼈대만의 작은 가옥을, 정갈한 땅에 설치한다. 그리고 그 둘레에 상록수를 두루 심고 제사터로 삼았던 것이다.

'히모로기'란, '빛 몰려오기'('빛이 몰려오는 신성한 곳')를 뜻하는 일본 옛말이다.

이 히모로기가, 현재 일본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진쟈(神社)'의 원형이다.

연오랑이 일본 갈 때 히모로기를 가지고 갔다는 사실은, 이 히모로기 안에서 제사 지내는 풍습이 고대 한국인에게도 있었음을 일러 준다.

연오랑은 일본에 갈 때, 제사용 가건물까지 지어서 가져간 셈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의문에 부딪치게 된다.

연오랑은 예(濊) 부족의 자손으로 치부되어 있다.

신라 제4대왕 석탈해(昔脫解)는, 연오랑의 조부가 된다. 석탈해도 예씨 계통의 인물이다.(석탈해의 성 '석(昔)'자는 '예'라 읽히는 한자로, 예계통의 부족을 상징했다)

예족에 속하는 예씨 집안 사람들은 태고 때부터 호랑이를 숭상했다. 그들은 대대로 호랑이 제사를 지내온 것이다.

이 같은 호랑이 숭배족인 예사람 연오랑이, 어째서 곰 제사를 지내고자 했던 것일까.

원래 곰을 숭상한 것은, 고구려계 족속인 맥족(貊族)이었다.

예족이 한반도 중북부와 동해안 일대 지역, 요즘의 중국 동북부의 송화강 일대와 길림성 지역에 살았는데, 맥족은 산동, 요동, 발해만 연안 등에 살다가 차츰 남하, 예족과 합쳐 '예맥족'이 형성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기원전 2세기께의 일로 보아지고 있다.

따라서, 한반도 동부 해안 일대에서 번성하던 예족 고위층에도 맥족의 문화와 생활양식이 영향을 미쳤다고 보아야 하는가.

어떻든 맥족의 힘이 한반도 중동부에서 강화됨에 따라, 한반도 동부 해안 일대와 남부 지역 일대에는 정치적으로 대변혁이 일어나게 된다.

동해안 강릉에 탄생한 동예국과, 남부해안 김해에 탄생한 가락국 즉 금관가야국과, 고령에 자리잡은 대가야국 및 그 주변의 가야 소국(小國)들의 탄생이 그것이다.

이들 신생국은 한결같이 강력한 제철(製鐵) 기술과 직조(織造) 기술을 지니고 있었다.

연오랑의 조부 석탈해도, 이 같은 기술을 지닌 조직체의 리더였고, 연오랑 또한 그랬다.

한반도는 서기 원년경부터 활발한 신기술 시대를 맞게 되는 것이다.

'곰의 시대'를 맞게 된 셈이다. <계속>

※ 본사 사정으로 하루 늦게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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