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국악 알리기, 나부터 나서야죠"

벽계국악연구원 유계순 원장.

요즘 한류가 떠들썩하다. 바람직한 일이고, 외국에 나가면 우리나라의 위상이 많이 높아졌다는 것도 실감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가지, 국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국악, 이름 그대로 우리 나라의 음악, 한국의 음악인데 그동안 우리는 너무 국악을 홀대해오지 않았나 싶다. 유계순 벽계국악연구원장은 국악을 아끼며, 우리 문화 알리기와 국악의 보급을 위해서 유아원에서 양로원까지 봉사를 다닌다. 그는 젊을 때부터 국악을 체계적으로 배우지는 않았지만 타고난 목소리로 자연스럽게 입문하게 되었다.

농촌에서 태어나 정월에 하는 지신밟기 풍물놀이 등에 관심이 많아 부지런히 따라다니며 리듬감을 익혔고, 구성진 목소리를 타고나 어릴 때부터 민요를 부르며 재능을 나타냈다. 결혼을 하면서 국악으로는 생계를 꾸려갈 수가 없어 한동안 멀어졌지만, 다른 직업을 전전하다가 50대에 수구초심으로 국악인의 삶으로 돌아왔다. 그는 89년도에 시조창으로 입문, 92년도에 벌써 대상을 받았고, 배운 만큼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에 국악학원을 설립했다. 그는 드물게 시조창과 민요를 비롯, 모든 국악기를 다 다룰 줄 아는 국악인이 돼 국악의 불모지인 포항에 처음 풍물단을 만들기도 했다.

-국악을 하시게 된 동기라면요?

"어릴 때부터 국악을 가까이 하기는 했지만, 50대 중반에 전국노래자랑대회에 나가 민요를 불러 입상하면서 시작했지요. 거기서 소리 좋아하는 동호인을 만나 함께 공부해 보자 해서 찾아간 곳이 앵초 선생이었어요. 시조창을 배우는데, 우선 생계가 급하니까 벌이 하느라 열심히 못 하다가 3년 쯤 뒤에 본격적으로 달라붙었지요. 그때는 안식구가 이해를 해주고 장사를 해서 생계를 맡아 줘서 가능했습니다. 오늘날 내가 국악인으로 살 수 있는 것은 모두 아내 덕입니다. 그 공을 죽는 날까지 잊지 못할 것입니다"

- 꽹가리, 북같은 사물도 잘 다루고 대금까지 잘 부신다는데 언제 배우셨습니까?

"시조창과 민요를 하면서 거의 혼자서 익혔지요. TV에 나오는 명인들의 연주도 유심히 보고, 이따금 그분들 만나서 물어보기도 했지요"

-봉사활동과 재능기부도 하신다지요?

"학산종합복지관과 연계해서 포항시 24개 동 종합회관을 다니며 5년간 가르쳤고, 성모병원에는 학생들과 함께 12년간 봉사했고, 원래 연오랑 세오녀 민요합창단으로 시작한 '해맞이 예술단'을 10년간 운영하고, 포항문화원에서 국악강사를 하고 있을 때 포항 전체 초. 중. 고등학교를 돌면서 '찾아가는 국악교실'을 7년간 했습니다. 이 외에도 흥해의 장애인 교육기관인 모자이크단체, 도움터 유아원, 아이누리 유치원생들에게도 우리 문화와 국악을 알리는 교육 봉사를 하고, 요즘은 주로 요양원에 학원생들과 함께 많이 가고, 전국적으로 다른 지역에도 다닙니다"

-봉사활동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지요?

"청송교도소에 위문공연 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 수감자들이 신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고개를 바로 들지 못하고 풀이 죽어 있던 모습들이 지금도 마음에 짠합니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랬다고…"

-국악을 하면 어떤 점이 좋습니까?

"음악이란 항상 즐거운 것이니까, 생활 자체가 즐겁게 되지요. 즐겁게 사니까 남보다 덜 늙게 되고, 나이 먹어서 안 심심하고, 건강하려면 시조창을 배우면 좋지요. 단전호흡이 되고, 먹은 음식 소화도 잘 되고요. 민요, 시조창 같은 소리를 하고 취주악기를 불면 건강에 좋다는 것은 상식이지요."

대체로 학원에서 한 5년 배우면 다들 졸업하고 나가는데, 자신의 학원에 들어온 사람들은 십년 넘게 눌러앉아 공부하고 있으니, 그것이 자랑이라는 유원장의 말에, 그 이유를 묻자, 옆에 있던 제자가 대변한다. "우리 원장님은 실력이 좋으시고, 무던하고 점잖으시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도해주시기 때문에 한번 온 사람은 정이 붙어서 거의 안 나가고 계속 공부한다"는 것이다.

유원장은 작년까지 맡고 있던, 대한시조협회의 경상북도 지부장, 경상북도 명인회 회장, 포항시 지회장, 국악협회 포항시 지부장, 시조경창대회 심사위원장 등 모든 감투를 내려놓고 학원일에만 전념, 후학을 기르고 봉사하며, 마음을 비우고 사니까, 잡다한 걱정까지 다 사라졌다며 편안하게 웃는다. 어릴 때부터 천부적 재능을 보였고, 좋아하는 일을 중년에 다시 찾아, 노년에 일가를 이룬 유계순 원장, 욕심 없이 살아가는 그의 모습이 남들의 마음까지 훈훈하게 해준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