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할 것 너무 많아 늙을 겨를도 없어"

대한적십자 포항동부지사 문영숙 고문.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 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피천득님의 시, '오월'의 마지막 구절이다. 이 눈부신 오월 속에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가치 있고, 살아서 눈을 뜨고 이 녹색의 향연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다.

그러나 이 찬란한 오월에도 여전히 정치판에서는 비난과 독설로 서로를 끌어내리고, 파렴치범이나 흉악범들도 이런 맑고 신선한 오월에 휴업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리 실망할 필요는 없다. 뉴스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남모르게 봉사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고, 이들이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이 사회를 떠받치고 있다.

문영숙 적십자사 포항동부지사 고문도 그 중의 한 사람인데, 그녀는 거의 봉사의 달인이라 할 정도로 40년 이상 봉사인생을 살아왔다. 봉사연륜이 긴만큼 문고문은 상장과 표창장도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몇 개만 봐도, 1995년에 포항시민 대상, 시회봉사분야와 자원봉사 5000시간 달성 적십자총재 표창장을, 전국자원봉사자 축제에서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 새마을 사업의 지역사회 발전에 대한 공헌으로 국무총리 표창도 받았고, 88올림픽 때 적극적인 봉사활동으로 체육부 장관이 주는 올림픽기장 참여장을 받기도 했다.

- 오랜 동안 봉사 하셨는데, 시작하시게 된 동기는 무엇인지요?

"나도 처음에는 이렇게 오래 할 줄 몰랐습니다. 열심히 봉사하는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함께 하지 않겠느냐고 권해서 그냥 한번 따라가 봤지요. 그때는 젊었을 때라 아이도 어리고 시어머니도 모시고 있고 해서 남을 위한 봉사같은 것은 생각할 수가 없었는데 한 두 번 나가다 보니 봉사의 기쁨도 알게 되고 아이들 교육에도 도움이 되겠다 싶어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가족들의 반대는 없었습니까?

"있었지요. 시어머니가 반대하셨고 아이들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남편이 좋은 일 한다고 격려해 주고 도와주고 해서 지금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주로 어떤 봉사활동을 하셨는지요?

"주로 몸으로 하는 일인데, 이것저것 봉사라면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지요. 새마을부녀회 회장하면서 중고품·폐품 수집하고, 알뜰바자회 같은 거 열어 돈 모아 병원이나 양로원 같은데 가져다주고, 완도김이나 미역 같은 것도 직거래해서 이익이 생기면 독거노인이나 소년소녀가장들에게 반찬 해다 주고, 이런 것들은 주로 가톨릭 인성회에서 하는데 5월은 더 바쁘지요. 어버이날에는 노인정에 음식해서 갖다드리고, 일손이 부족한 곳이면 어디서 무슨 일이든 하는 것이 봉사자들입니다. 어버이날, 현충일, 시민체육대회같은 것을 할 때는 소고기 국밥 500명 분을 우리집에서 끓였지요. 우리 마당에서 이런 일들을 하면서 물을 하도 많이 부어대니까 우리 마당이 푹 파였어요. 지금 저는 고문이지만 당장 봉사자가 필요한데 나갈 사람이 없으면 제가 나갑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렇게 열정을 가지고 봉사하지 않습니다. 사교육비가 너무 부담되니까 조금이라도 돈벌이 되는 곳을 찾거든요.

-어려운 일도 많으셨겠습니다.

"그렇지요. 기증받은 물건이나 폐품같은 것을 집에 쌓아두니까 시어머님도 싫어하시고, 집이 창고같이 되니 식구들이 좋아하지 않지요. 한번은 폐지 모아 리어커에 실어 끌고 가는데 딸이 친구와 가다가 봤어요. 딸이 창피하다고 엄마가 거지냐고, 엄마가 남 도와주기 위해 그 일을 한다는 것을 친구가 어찌 알겠느냐고 원망하는데, 그때는 저도 난감했지만 어쩝니까. 내가 시작한 일인데 힘자라는 데까지 해야지요. 저 김혜정 단장하고 일 년에 몇 번씩 새마을 교육 받으러 다니면서 일 많이 했습니다. 담배꽁초 길에 떨어져 있으면 그냥 못 보고 주머니에 넣어오고, 심지어 부녀회원들과 거리에 뱉어 논 껌을 뜯어내는 일도 했습니다. 밤중에라도 폐지가 보이면 그걸 기어이 끌어다가 집에 가져다 놓아야 직성이 풀렸지요.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때가 보람 있고 좋았던 것 같아요." 하며 문고문은 옆에 있는 포항시 여성실버합창단 김혜정 단장을 보고 웃는다. 두 분은 젊은 시절부터 봉사의 단짝이었으며, 문고문은 이 합창단의 초대 회장을 지냈고, 현재까지 15년 동안 함께 합창단을 이끌어 가고 있다. 봉사를 하면서 틈틈이 합창도 하고 노래 봉사도 하는 문고문은, 새마을 정신은 오늘날 젊은이들도 꼭 본받아야한다고 강조한다. 아직도 봉사할 것이 너무나 많은 그녀는, 늙을 겨를도 없다. 남을 위하여 40년 세월을 봉사와 희생으로 살아온 그녀의 삶이, 모든 실버들에게 싱그러운 젊음과 의욕을 나누어주는 듯, 이 푸른 오월에 더욱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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