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재 훈 <포항강변교회 목사>

서재에 난방용 기름을 한 통 주입했다. 그런데 지난 해 보다 기름 값이 얼마나 더 올랐는지 수첩을 꺼내놓고 확인해 보니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한 달도 채우지 못해 또 주유해야 할 상황인데 이러다가 큰일이라 싶어 연탄난로 가격과 하루 소비되는 연탄 량으로 계산을 해 보았다.

하지만 연탄난로를 사용한다는 것도 쉽지는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설치도 문제지만 서재에서 연탄을 갈아 넣고 하는 것도 화재의 위험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아무런 대책도 없이 올 겨울을 지내기에는 경제적인 지출이 너무 클 것 같아 한껏 고민했다. 아직도 뾰족한 묘수를 찾지 못하고 있지만....

아마도 올 겨울 채비를 하는 사람치고 기름 값 때문에 고민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분명 예전하고는 또 다른 체감 경기를 기름 값으로 인하여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올 겨울 지낼 난방비 걱정과 난방 방식의 선택에 고민을 하면서 문득 이런 선택의 여지도 없을 가난한 이웃들을 생각하게 된다. 기름이냐? 연탄이냐? 의 문제가 아니다. 올 겨울을 어떻게 지낼까? 로 걱정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웃들에게는 약간 미안한 감이 든다.

성직자로 살아가면서 남보란 듯이 사랑의 손길 제대로 내밀어 보지 못한 주제에 어떻게 하면 값싸게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을까? 로 배부른 고민을 하고 앉아 있었으니 말이다. 약한 자, 가난한 자, 불쌍한 자를 많이 도와주라고 가르치기는 참으로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내 자신의 지갑에는 손해를 입히지 않으려는 얄팍한 계산을 하며, 기름 값과 연탄 값을 비교 분석하며 올 겨울을 지내는데 연료비가 얼마면 될까? 라는 속셈을 가지고 앉아 있었으니...

분명 지금도 어디에선가 기름이냐 연탄이냐의 문제가 아닌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로 밤잠을 못 이루는 가장들이 분명 있을 것이며, 창문으로 스며들어오는 바람조차 막을 형편이 되지 못해 가족들의 건강을 염려해야 할 슬픈 우리의 이웃들이 있을 것이다. 긴 긴 겨울밤을 지새우면서도 못내 따뜻한 아랫목 한 군데를 누릴 수 없는 이웃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이웃들이 어제 오늘만 존재했던 것도 아니건만 왜 이리도 내 자신을 부끄럽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언젠가 읽었던 류시화 님의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중 작자 미상의 글이 떠오른다.

“내가 배가 고플 때 당신은 인도주의 단체를 만들어 내 배고픔에 대해 토론해 주었소. 정말 고맙소. 내가 감옥에 갇혔을 때 당신은 조용히 교회 안으로 들어가 내 석방을 위해 기도해 주었소. 정말 잘한 일이오. 내가 몸에 걸칠 옷 하나 없을 때 당신은 마음속으로 내 외모에 대해 도덕적인 논쟁을 벌였소. 그래서 내 옷차림이 달라진 게 뭐요? 내가 병들었을 때 당신은 무릎 꿇고 앉아 신에게 당신과 당신 가족의 건강을 기원했소. 하지만 난 당신이 필요했소. 내가 집이 없을 때 당신은 사랑으로 가득한 신의 집에 머물라고 내게 충고를 했소. 난 당신이 날 당신의 집에서 하룻밤 재워 주길 원했소. 내가 외로웠을 때 당신은 날 위해 기도하려고 내 곁을 떠났소. 왜 내 곁에 있어 주지 않았소? 당신은 매우 경건하고 신과도 가까운 사이인 것 같소. 하지만 난 아직도 배가 고프고, 외롭고, 춥고, 아직도 고통 받고 있소. 당신은 그런 걸 알고 있소?”

기름 값, 연탄 값 비교하기 전에 무엇인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을 것만 같아 못내 마음이 숙연해 진다. 겨울은 어김없이 왔다. 찬바람이 부는 추운 겨울은 여지없이 찾아 들었다. 찾아 온 겨울은 저 가난한 사람들의 가슴에는 더 추운 겨울이 될 터인데...

사람과 사람 사이가 인간의 의미라고 한다면 그 사이를 메워줄 수 있는 관계가 필요할 때이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가르침이나 주장이 아니라 실제로 작은 것 하나를 나눌 수 있는 그런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인간관계여야 한다. 그것이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의 참된 모습이리라.

제자들에게 옷 두벌 가지지 말라고 말씀하시던 예수님의 말씀이 선뜻 찾아와 버린 겨울 앞에서 새삼 떠오르는 것은 분명 사치스런 고민을 하면서 잠시 이웃의 어려움을 망각해 버렸던 내 모습을 돌아보라는 이유에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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