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저케이블 육지 연결지점 찾아 역사 탐방지로 활용해야"

일본이 울릉도에 설치한 해저케이블 육양지 예측지점▲ 울릉도 육양지 예측지점 ◀ 1980년대말 '일본에서 설치한 해저케이블'이란 푯말이 있던 곳

일본은 1890년도부터 1900년초반에 군용통신선으로 추측되는 케이블을 일본과 대륙(한반도)를 연결하는 대공사를 진행했다.

이때 일본은 해저케이블을 마쓰에~독도~울릉~죽변으로 연결했으며 중간 육상인양지(육양지)가 본보에서 취재결과 울릉도 사동리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이 한반도와 대륙침략의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연락수단인 통신케이블을 1900년대 한반도를 중심으로 두곳에 해저케이블을 설치했다.

이 케이블은 1904년 일본 시세보~거문도~중국 대련으로 연결하는 1천700㎞ 해저 케이블과 그리고 동해쪽으로는 1904~1906년에 일본 마쓰에~독도~울릉도~죽변~원산으로 이어지는 해저케이블이 설치했다.

1989년 8월 15일자 동아일보 기사에 한반도를 중심으로 전개 된 열강의 침략사 및 한국통신사 연구에 중요한 사료되는 해저케이블이 거문도에서 발견됐다고 전했다.

한국전기통신공사 사료발굴팀이 일제시대 자료 및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조사를 벌린 결과 케이블과 육상연결지점(거문도)을 발견했다.

이 케이블은 두 개의 굵은 선으로 돼있었으며 0.9㎜짜리 통신선이 7가닥으로 되어 있으며 부식을 막기 위한 콜타르보호막이 칠해져 있었으며 2중 철선을 감아 바다 밑으로 가라앉도록 만들어져있었다.

올해 초 울릉도·독도 역사에 관심이 많은 한 지인으로부터 "거문도는 지난 1989년 해저케이블을 찾아 일제 피탈의 현장으로 보전, 전시되어 있어 역사 탐방지로 활용되고 있다"며 "울릉도에도 설치 했는 기록은 있는데 육양지점에 관해 자료도 없어 어느 곳인지 확인을 위해 울릉도를 수차례 방문했으나 찾을 수 없으니 좀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취재차, 독도박물관과 울릉문화원 등에 확인 한 결과 육양지점에 대한 자료는 없어 울릉군이 야심차게 진행하고 있는 '독도아카데미' 관련 자료를 찾아봤지만 마쓰에~울릉도~원산으로 이어진 발표자료 밖에 없었다.

독도박물관에 한 관계자는 "일본이 울릉도, 독도에 설치한 망루 주변에 부대도 주문했던 기록이 있으니 독도방향인 북면 석포쪽이 유력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북면 석포리 주민들을 대상으로 탐문 취재를 나섰다.

그러나 망루터에 대한 증언은 있었지만 해저케이블에 대한 증언이 없던 차 1993년 12월 2일자 연합뉴스는 한국통신에서 일본이 1906년 울릉도 도동리에 전신취급소를 개설, 이 근처 육양지점이 노출되었다는 풍문을 따라 탐사작업을 벌인 결과 해안가에 서 파도에 떠밀려 온 일본이 설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녹슨 해저케이블 두가닥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이를 토대로 탐문 취재 도중 해저케이블이 육양지가 도동이 아니라 울릉도 사동리 아랫구적이였다는 주민들의 증언을 다수 확보했다.

울릉주민 윤영철(41)씨는 "어릴 적 친구들과 수영하러 사동리 아랫구적에 가면 땅위에 전선뭉치가 있었는데 주위 어르신들이 일본이 설치한 해저케이블이었다고 이야길 들었다"며 말했다.

또 그는 "그 케이블이 있는 장소 입구쪽에 1980대 말(추정) KT(옛 한국통신)에서 일본이 설치한 해저케이블이라는 입간판을 사동리 아랫구적 입구에 만들어 났다"고 말했다.

윤씨랑 동행해 그 지점은 확인 한 결과 수년전 산사태로 무너져 노출되어 있었다는 케이블은 보이지 않았다.

또 김정극(울릉읍) 전 사동리장은 "아랫구적 앞에 육상과 수중에 케이블이 있었다"며 "그곳에 어선이들 정박하기 위해 바다에 닷(앵커)를 내리면 닷에 케이블이 걸려 올라오곤 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육상에 케이블 뭉치가 있었던 장소도 동일하게 증언했다.

또, 이곳에서 스킨스쿠버를 많이 한 주민이 긴 전선가닥을 봤다던 증언을 토대로 본보에서 세번 수중 수색을 펼쳤지만 아쉽게도 깊은 수심과 넓은 면적으로 해저 케이블은 찾는데는 실패했다.

한편, 일본 해군에서 편찬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도를 보면 해저케이블은 일본 마쓰에~독도~울릉도~죽변~원산까지 해저로 설치된 것을 확인 할 수 있으며 울릉도는 마쓰에에서 독도를 거쳐 울릉도로 이어진 케이블 1개와 울릉도에서 죽변쪽으로 이어진 2개의 케이블이 존재 했는 것으로 추정된다.

즉 사동리 아랫구적을 중심으로 도동방향과 통구미 방향으로 두쪽으로 나눠서 설치했거나 일본에서~죽변을 이어지는 케이블에 T자 형태로 울릉도 육양지로 해저케이블을 설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죽변에서 원산까지 해저케이블로 연결시킨 후 원산에서 대륙쪽으로 육상으로 연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설치한 해저케이블의 육양지는 일본의 열강 침략사 중 군사적 중계통신기지로 이용됐을 것으로 근대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울릉도 사동리 육양지점 윗 산능성이에는 일본에서 설치한 기상대(현재 울릉도 기상대) 및 망루터가 있었으며 바로 옆 해안인 도동리에는 울릉도 일본인 집단부락이 있어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편 일본은 동해의 오지인 섬인 울릉도와 독도에 대해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해가며 해저케이블을 개설시켰을까?

당시 일본은 한반도를 놓고 러시아와 각축전을 벌이면서 동해를 군사적으로 장악하기 위한 통신시설로 러일전쟁이 일어났던 1904년에 일본 마쓰에(송강(松江))와 원산(元山)간을 잇는 해저케이블을 포설했다.

그 이후 울릉도 및 독도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1906년 울릉도 도동에 전신취급소까지 개설, 송강~원산간 해저전선을 끌어올려 울릉도와 육지간에 한시(限時) 통신을 실시했던 것이다.

그 당시 일본은 울릉도와 독도 정상부근에는 동해를 지나는 선박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망루 등을 설치한 것이나 해저케이블을 설치했는 것 등을 보면 군사적으로 울릉도 및 독도가 중요한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거문도에 해저케이블 발굴당시 사료발굴팀은 일본은 1883년 한일간 불평등하게 맺어진 '해저전선조약'을 멋대로 해석, 1900년대까지 우리나라에 무수히 많은 군용통신선을 설치했다고 밝혔다.

한편 거문도는 해저케이블을 발굴 작업을 거쳐 열강의 침략사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해저케이블을 보전시켜놔 관광객들의 역사탐방코스로 이용되고 있다.

취재동안 1900년대 한반도를 중심으로 수천㎞의 해저케이블을 설치, 활용한 일본을 보면 한반도 및 대륙 침략의지와 함께 치밀한 영토야욕을 또한번 느낄 수 있었다.

한편 일본은 또다시 해저케이블을 이용한 영토야욕을 드러냈다.

2000년 전·후로 일본전기통신공사가 독도중심으로 16마일까지 일본본토에서 해저광케이블을 설치했다. 전문가들은 독도 소유권 주장 때문에 설치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처럼 1900도부터 대륙침략을 위해 상상도 못할 해저케이블을 한반도 중심으로 설치, 활용했으며 또한,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영토야욕을 위해 천문학적 자금을 투입해 독도인근 해저에 케이블을 설치하는 등 일본의 영토야욕과 미래를 위한 치밀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한편 경북도는 올해 울릉도에서 독도를 잇는 다목적 해저케이블이 구축을 위해 지난 6월 연구용역 착수 보고회를 가졌다.

다목적해저케이블은 독도에 전력과 유선통신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소형해저전력, 광통신 케이블 등이 포함돼 있으며 오는 2020년 독도방파제와 입도지원센터 완공 시점에 맞춰 구축될 전망이다.

한 근대사학자는 "독도와 동해의 소유권 분쟁으로 한일간 대립 중에 이런 일본의 영토야욕을 상기시키며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울릉도가 요충지였음을 알리고 일본 식민지에 겪은 뼈아픈 추억을 기억 할 수 있도록 울릉도에 설치한 해저케이블 육양지를 찾아, 보전해 후세에 본보기로 남겨야 할 것"이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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