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봉사는 노년의 교육자가 적임"

우병철 호스피스 자원봉사자·전 초등학교 교장

-우병철(74) 선생님은 교장으로 정년퇴직하셨고, 연세도 많아 말기암 의료병동에서 봉사하시기엔 너무 노약하신데.

"사람이 하는 일에는 다 본분이 있고 때가 있습니다. 봄에는 씨를 뿌려야 하고 가을에는 거두어야 하듯이 사람의 일생에도 배우고 일할 때가 있고 가르치고 베풀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호스피스 봉사는 나이가 많아도 의지만 있으면 할 수가 있고 임종을 수발하고 영혼을 위무하는 데는 교직에 종사했던 노년이 가장 적임입니다. 그리고 만년에 할 수 있는 최상의 봉사 거리며 하느님한테도 제일 큰 상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의 마지막 길목에서 뒤를 돌아봤을 때 가장 행복한 삶이란 어떤 삶이 될까요? 아마도 그것은 일생동안 후회를 가장 적게 남기는 삶이 될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그동안 배우고, 경험하면서 얻은 깨달음과 사랑을 의지할 곳 없이 노년을 맞고 임종에서 고통받고 있는 노인들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것입니다."

-선생님은 수인사를 할 때도 실명보다는 세례명을 앞세웠고 교인임을 강조하셨는데 궁금합니다.

"호스피스 봉사를 하면서 힘이 들 때 하느님의 말씀을 떠올리고 자신을 독려하기 위해 그 방법을 쓴 것인데 이제는 습관이 되어서…. 성경에는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으뜸 가는 계명이 있고 99마리 양을 산에 둔 채로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비유의 말씀이 있습니다. 호스피스 봉사는 의욕이나 측은지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하느님의 말씀과 격려가 필요합니다. 병으로 임종에 다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상상해 볼 수 있는 고통보다는 양태가 다양하고 심각합니다. 부모나 형제 같은 절대적인 사랑 없이는 환자들을 돌봐 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조금이라도 무서워하거나 이상한 냄새에 표정이 어두워지면 당장 수발을 거부합니다. 형식적인 도움은 몰라도 고통받는 그들의 마음에 위안을 줄 순 없습니다."

-직접 임종을 한분이 10년 동안 100명이 넘었습니다. 선생님이 보시기엔 죽음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입니까.

"먼저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의 입장에서 얘기해 봅시다. 천지가 열린 이래로 어떤 권력자도 재벌도 학자도 자신의 죽음을 예상하거나 막지 못했습니다. 죽음이란 출생의 이치와 같다고 봅니다. 출생이 본인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것처럼 믿음과 사후문제를 연구한 사람들의 이야기 중에는 '죽음은 이 별에서 살다가 집(몸)이 낡아서 저 별로 이사가는 것' 이라고 했습니다. 죽음이란 진아(眞我)가 영원히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라고, 또 자연에 비유해 볼 수도 있습니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입니다. 가을에 떨어지는 1년초의 작은 꽃씨에도 그속에는 '종말과 시작'이 함께 있습니다. 이렇게 생물이 나고 죽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면 죽음을 단순하게 행·불행으로 단정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입관체험을 하셨고 유언장을 써 두셨다고 했습니다.

"미리 죽어 봤습니다. 관속에 들어가 마지막 못질하는 소리를 듣고 승천하라고 기도하는 소리를 들을 땐 내가 정말로 죽은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속에서 20여분 동안 정말로 죽는다는 생각을 해보니 한없이 눈물이 났습니다. 평생 처음으로 모든 가식에서 벗어나 진솔해 질수가 있었습니다. 잘못한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집사람과 가족들에게는 미안함이 가슴에 사무쳤습니다. 저는 관속에서 살아나와 관속에 있는 심정으로 유서를 썼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했습니다. 입관을 체험하고 유서를 쓰고 나니 후련함이야말로 제가 신천지에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유언장을 책상 위에 얹어두고 온가족이 언제나 볼 수 있게 했고 관속에서 생각하고 유언장에 밝힌 대로 남은 삶을 하느님의 뜻에 따라 봉사의 길로 나아갈 것입니다."

-사람이 운명할 때는 진실해진다고도 합니다. 먼저 떠난 사람들이 임종시에 세상에 남긴 교훈적인 말씀이 있다면.

"저는 말기암 환자 116명을 돌아가실 때까지 수발을 들었고 장례식까지 마지막 가시는 길을 인도했으며 80명의 유언을 직접 들었습니다. 가신 분들이 마지막 남긴 말 중에 공통적인 것은 통탄하는 후회의 말씀이었고 사죄의 말씀이었습니다. 첫째가 참을성도 분별력도 없이 행동해 가족들과 남한테 상처준 것을 가장 후회했고 용서받고자 했습니다. 둘째는 베풀지 못한 것을 후회했습니다. 특히 봉사할 기회를 놓친 것을 후회했습니다. 셋째는 허둥지둥 살아온 것을 후회했고 천년만년 살 것 같은 착각 속에 살아온 것을 후회했습니다. 남보다 더 많이 가지고 더 오래 살겠다고 욕심낸 것이 이렇게 남보다 빨리 가고 한을 남기게 됐다고 후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한결같이 건강할 때 베풀고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 잘하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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