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현 부사장

요즘 사람들은 신문이나 밤 9시 뉴스 보기가 겁난다고 한다.

또 어디서 무슨 대형참사가 터졌는지, 또 무슨 엄청난 비리가 불거졌는지 가슴죄며 지켜봐야 하는 시간이 매우 고통스럽다는 푸념들이다.

여기에다 대선을 앞둔 정치판은 이전투구, 이합집산, 권모술수, 경거망동으로 고통을 넘어 짜증과 분노까지 촉발시키고 있어 이래저래 민초들은 멍든 가슴을 쓸어내리기에 지칠대로 지쳤다. 우리 삶의 공간 어느 구석을 탐색해 보아도 희망의 등불을 찾기 힘든 세상이다.

언제 어디서 벼락이 떨어질지, 집중호우가 쏟아질지, 해일이 밀어닥칠지 도무지 감을 잡기가 어렵다. 그게 뭔가. 바로 불신이라는 것이다.

믿음이 가지 않는 게 아니라 믿을 수 없다는 절망감이 팽배해 있다. 이런 와중에 터진 구미 화학공장 불산 가스 누출사고가 인재로 밝혀지면서 전국이 떠들석하다. 작업자가 죽어가고 주민 수천여명이 치료를 받았고 결실기 농작물이 말라죽고 가축 수천마리도 이상 증세를 보인 대형사고임에 틀림없다.

비상이 걸린 전국 6천여 곳의 업체는 당황할 수 밖에 없다. 지자체 대부분이 사고수습을 해야 할 소방본부가 사업장 정보가 없고 유독물질 취급사업장에 대한 관리가 도와 일선 시·군, 환경청으로 나눠져 있어 불의의 사고시 대처능력이 부족하다.

독성이 강한 불산은 무색무취 물질로 증세가 바로 나타나지 않아 2차 피해가 생길 수 밖에 없다. 구미 사태는 해당업체와 당국의 안이한 자세가 사태를 키웠다. 주로 반도체 세정작업에 사용되는 불산은 환경부가 '사고대비물질'로 지정해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사전 설명은 커녕 유독물질 제조업체가 있는지조차 몰랐다고 한다. 환경부는 불산을 1년에 10t 이상 취급하는 30명 이상 고용 사업장에만 조사를 하고 있어 사고업체는 직원이 7명에 불과해 관리대상에서 제외됐다. 사고 업체는 40여 t의 불산을 취급하고 있지만 사고 대응 매뉴얼도 제대로 없었다. 중화제를 비치하지 않아 사고 발생 20시간이 넘어서야 수습작업을 시작했다.

불산을 물로 씻어내 피해를 키웠다. 구미산업단지는 지난 1991년 페놀이 낙동강에 유출돼 영남지역 수돗물 오염 사태를 불러온 곳이기도 하다. 도내에는 화학물질을 제조하거나 처리하는 업체에 대한 구체적인 현황 파악이 없다. 특수차량뿐만 아니라 중화제와 제독제 등 유해화학구조 장비가 없어 화학물질 유출사고 시 초기 대응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개인보호 장비도 턱없이 모자라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들까지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잦은 재앙은 오늘의 사회가 정직과 믿음이 없기 때문이란 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천재보다 더 무서운 게 무책, 불신의 인재(人災)가 아니겠는가.

어쨌든 매년 반복되는 인재를 막아 인재공화국이란 오명을 씻어야 한다. 추위가 오기 전에 피해주민들에 대한 대책을 끝내야 한다. 화학물질에 대한 사고 처리 지침을 갖추지 못한 지역은 제2 구미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대비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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