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독도의 날…경북일보 취재팀 독도 등대터 탐사

1954년 8월 10일 첫 불을 밝히며 독도가 한국땅이라는 사실을 전세계에 알렸던 독도 첫 등대. 현재는 암반위 콘크리트 구조물만 남아있는 이곳을 경북일보 취재팀이 독도의 날을 앞두고 찾았다. 사진은 등대터에서 바라본 서도의 모습.

'10월 25일 독도의 날'을 맞아 경북일보 취재팀이 국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독도의 첫 등대터를 방문, 역사적으로 지닌 의미 등을 재조명해 봤다.

현재 독도의 등대는 독도 동도 정상에 주둔중인 독도경비대 옆에 높이 15m급 등탑과 발전실, 사무실, 숙소 등을 갖춘 유인등대다.

대다수 국민들은 현재 자리에 등대가 세워졌거나 이 등대가 처음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만 독도의 첫 등대는 1954년 8월 10일 동도 북편 한반도 문양 바위 밑 평평한 암반에 콘크리트 구조물 위 철탑형태로 설치돼 첫 불을 밝혔다.

1954년 8월 10일 독도에 처음으로 세워졌던 등대 위치(붉은 점).

올해 이명박 대통령이 건국 이래 대통령의 신분으로 처음으로 8월 10일 독도를 방문해 국외에 독도가 우리땅임을 알리는 날이었지만 묘하게 독도등대 불 밝힌지 54년째 되는 날이었다.

우리 정부는 1952년 이승만 전 대통령이 '평화선'을 선포하며 일본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독도 문제에 대해 대체적으로 '조용한 외교'를 벌이고 있다는 평이다.

이런 이유로 역대 대통령 중 독도의 가치와 영토수호 의지를 외교적, 정치적으로 표현한 대통령으로 단연 이승만 전 대통령을 꼽는다.

등대터에 남아있는 콘크리트 구조물.

이 전 대통령은 1954년 8월 방미 기간 중 서방국가를 대상으로 대마도를 반환하라고 압박하며 당시 독도에 관심이 없었던 미국 등 서방국가에 대해 독도에 첫 등대를 짓고 점등식 준비해 깜짝 외교쇼를 벌이며 당당히 독도가 우리 땅임을 천명했었다.

또, 외무부를 통해 독도등대 설치 후 각국 외교사절단에게 정식적으로 통보해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세계에 알렸다.

첫 등대터는 독도 동서도 사이에 있는 닭바위 옆 동도에 자리잡고 있으며 높이는 10여m 평평한 암반에 기초부분을 콘크리트로, 상부는 철탑 구조에 세워졌다.

등대터 옆에 설치된 영해기준점.

본보 취재진이 찾은 이곳에는 가로·세로 1.5m 남짓한 콘트리트 구조물이 54년전 첫 등대터란 자리를 증명해주듯이 남아 있었다.

콘크리트 구조물 사이 나무판 중간에 둥근 구멍 2개가 아직까지 원형그대로 남아 있었으며 이곳에서는 독도를 중심으로 서·북·동쪽 및 서도의 모습을 그대로 조망할 수 있는 곳이었다.

등대터 옆쪽에는 국토해양부 국립해양조사원에서 설치한 '대한민국 영해기준점'이 설치돼 있어 독도가 우리땅임을 서방국가에 알렸던 첫 등대터와 함께 의미를 더했다.

독도 첫 등대터에 대한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취재를 한 결과 오랜 세월속에 자료 거의 없어 옛 언론 기사 등과 종합해 그때 당시를 짐작할 수 있었다.

자료를 종합해보면 1954년 해무청(현 국토해양부)에서 동도 북쪽 해발 5m 되는 암반에 콘크리트 기초 위 10m 높이의 사각형 철탑으로 세워 1954년 7월 29일자로 준공, 8월 10일 첫 점등식을 가졌다.

역사속에서 1954년의 독도는 일본과 많은 마찰이 표면화 된 시기였다.

그해 7월 4일 새벽 독도해상에 일본 해상보안청 1천t급 경비함 한 척이 해안쪽으로 접근, 독도의용수비대가 일본 경비함과 교전을 벌이며 독도를 지켜냈다.

또 11월 4일 일본 해상보안선 3척이 독도로 접근하자 이중 1척을 독도의용수비대가 박격포로 명중시키는 등 힘겨운 교전을 치르며 독도를 방어했었다.

비단 독도 현지 뿐만 아니라 정부는 1954년 우정국(현 정보통신부)을 통해 단기 4287년 9월 15일자로 독도 풍경을 담은 우표 3점을 선보이며 국민들에게 독도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킨 해이다.

이처럼 1954년은 남북간 6·25 전쟁으로 전 국토가 파괴된 것을 재건·안보에 전력을 다하는 혼란한 시기였지만 이 틈을 노린 일본의 노골적인 영토야욕이 드러냈던 시기였다.

울릉도 주민으로 결성된 독도의용수비대가 목숨을 건 방어와 정부는 독도에 대한 등대 등을 건설하며 실효적 지배의 방침을 고수하며 외교적으로 알린 해였다.

이번 독도역사 속 의미있는 독도 첫 등대터를 방문 당시 취재팀은 고무보트에 승선해 접안을 시도했으나 높은 파도로 인해 접안에 실패, 보트에서 내려 수영으로 높은 파도를 헤쳐가며 힘겹게 상륙했다.

첫 등대터를 찾아 취재 중 동해의 최동단 독도에 등대를 건설했을 당시를 떠올려봤다.

오랜 역사속 일본의 침략으로 얼룩진 독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선구자의 모습을 회상하며 반세기를 넘는 일본의 지속적인 영토분쟁 압력 속에 독도를 위해 이름없이 노력한 이들을 생각하며 앞으로 독도수호와 보존을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될 것을 다짐하며 독도를 떠나 울릉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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