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서비스

최규열 KBS 포항 방우회 회장
최규열 KBS 포항 방우회 회장
  • 이정희 명예기자
  • 승인 2012년 10월 28일 21시 41분
  • 지면게재일 2012년 10월 29일 월요일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60년대 포항방송 초창기 이끈 산증인호미예술제 수석부위원장 역임 등지역관광 홍보·향토문화운동 적극 참여

우리나라 방송은 이제 아나로그 시대를 종료하고 디지털 방송시대로 돌입할 만큼 발전했다. 최 규열 회장은 포항방송의 초창기부터 13년 2개월간 KBS 포항방송국에 재직했고, 지금도 KBS 포항방우회 회장직을 맡아 있으면서 당시 방송인들과 친목을 도모하며 방송국의 큰 행사 때는 도움을 주기도 한다.

최 회장은 1963년 2월 KBS 라디오에서 첫 방송을 시작한 이래, 65년 파월 청룡부대 결단식, 67년 포철 부지 조성할 인, 68년 기공식, 70년 착공식 때 모두 그가 중계방송을 했고 73년 준공식 때는 서울에서 온 아나운서와 함께 특집방송을 진행했다. 75년 울릉 중계소 개소식에 사회와 중계를 했고 포항국 근무 시 10년간 '우리의 해병'을 방송해서 포항과 관련된 큰 행사는 대부분 그가 방송한, 포항 방송 역사의 산 증인이다.

최 회장은 향토문화운동에도 적극 참여해서 서상은 회장을 도와 호미예술제 수석부위원장과 흑구문학상 운영부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수필춘추'로 등단한 수필가이기도 하다.

요즘 최회장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부인(김문자)에 대한 것인데, 그는 6년간 병석에 있는 부인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면서, 매일 부인의 발을 씻겨주는, 지인들 간에는 열부(烈夫)라고 소문난, 모범적이고 가슴이 따뜻한 남편이다.

-KBS 포항방우회는 어떤 단체입니까?

"KBS포항방송국에 근무했던 사람들로 포항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순수 친목단체입니다. 다들 출세하면 고향을 떠나는 것을 능사로 삼지만, 그래도 도시에 나갔다가도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모인 것이지요. 정치활동을 하거나 사회적 이슈에 민감하지 않고 그냥 순수한 모임입니다. KBS에서 벌이는 행사에는 가끔 협조하기도 하지요.

-방송을 오래 하셨는데, 제일 기억에 남거나 자랑스러운 방송은?

"참 많은 역사적인 방송을 했는데요, 1983년도에 이산가족 6.25특집방송을 했는데 그것이 연장되어 6월 28일부터 138일간 계속했거든요. 그때 5,055건을 접수해서 425건을 만나게 해주고 그 가족들을 통영에 여행도 시켜주었던 일이지요.

그리고 이것은 내가 재직했을 당시의 KBS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프로 야구와 축구를 만든 일입니다. 이것은 전두환 정권이 국민을 하나로 뭉치기 위한 시도로 만든 것인데 KBS. 이원홍 사장이 협조를 잘 해서 오늘날 이렇게 발전한 것입니다. 국민화합의 차원에서 '이웃끼리 청백전'같은 프로도 만들고 그때 KBS.가 공익방송, 국민방송으로 공이 컸지요.

-향토문화운동에는 어떻게 참여하시게 되었습니까?

"서상은 호미수회 회장님과의 인연으로 그분의 뜻을 높이 사 도우게 되었습니다. 서회장님과는 제가 대구방송국 방송과장으로 있을 때 그분이 경북도 새마을 과장을 하셨는데 힘을 합쳐 새마을 운동 홍보를 많이 했지요, 서회장님의 고향 사랑은 익히 알려진 바인데, '호랑이꼬리에 털을 심자'는 운동을 하셔서 지금 호미곶에서 구만리로 가는 해변 길에 그분이 심은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참으로 감동을 주는 교육의 장입니다. "내 밥 먹고 구만리 바람 맞지 마라"는 말이 있을 만큼 그쪽 바람이 대단해서 누구도 거기에 소나무가 자랄 수 없다고 한 것을 그분이 해내셨거든요. 거기 해변은 특히 영일만 낙조가 아름다운 길이라 관광명소로 개발해도 손색이 없는 '낙조의 길'이지요. 널리 홍보를 하고 싶습니다."

-입원중이신 부인 사랑이 지극하신 걸로 소문이 나셨던데요?

"누구나 당하면 다 할 수 있는 일이고, 해야 할 일이지요. 아내가 퇴직 후 산후조리원을 시작했다가 너무 무리해서 척추가 나빠졌어요. 2007년도에 첫 수술을 했는데 잘못되어 지금까지 8번 수술 받고 6년 째 병원에 있습니다. 병원 들어서면 가슴 답답하고 짜증나고, 병원 문 나오면 환자가 불쌍하고 측은하죠. 몸으로는 버티겠는데 정신적인 피로감은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병원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학력과 교양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

아이 동(童)자 대죽(竹)자, '동죽'이 그의 아호인데, 천진하고 곧은 그의 성품과 잘 어울리는 문구이다.

특별히 하실 말씀이 있으시냐는 질문에, 시정(市政)에 건의할 것이 있는데, 터미널에서 구룡포까지 오는 버스(200번)를 호미곶까지 와서 순환하는 노선으로 하면 관광지홍보도 되겠다고. 최 회장은 84년도에 새마을포장을 받았고, 포항시립예술단 운영위원, 포항문화도시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나이로는 노년이지만, 청년의 열정을 품고 사는 최규열 회장, 건강해진 부인과 함께 그의 꿈과 열정이 잘 여무는, 여생의 복을 누리시기를 바란다.

이정희 명예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