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 집은 노약자를 위한 작은 동사무소"

작은 동사무소에서 조준현 통장과 부인 김인순씨

"통장아제! 우리 집에 또 형광등이 나갔서요…, 우짜면 좋겠노?"

조준현(56)통장 댁에는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딱한 처지에 있는 노인들이 나름대로 사연을 가지고 찾아오신다. 하지만 통장은 한번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이 스스로 원해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통장 내외는 소문난 효자·효부다. 부모님한테 효도하는 사람은 남의 부모도 섬길 줄 안다. 그래서 통장 부부는 14년 전 부터 마을에 사시는 노약하고 의지할 곳 없는 어르신들을 돕기 위해 동네에서 통장직을 맡았고 그동안 소리 소문 없이 많은 공덕을 쌓아 여러 차레 큰상을 받았는가 하면 근년에는 장관상2번, 구청장상도 3번이나 받아 지역사회에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 작은 동사무소(주민자치센터)를 열게 된 동기부터 얘기해 주셨으면…?

"가까이 있는 통장집을 '작은 동사무소'라고 이름을 붙이면 주민들이 조금은 친밀감을 느끼고 찾아오기가 쉽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연세가 높은 어르신들 가운데는 아직도 관료주의에 대한 피해의식이 남아있어 본인한테 심각한 사정이 생겨도 동사무소나 구청, 파출소 같은 곳을 찾아가길 꺼려하십니다. 아픈 사람이 어디가 아프다고 해야 의사가 약을 처방할 수 있듯이 노인복지에 있어서도 꼭 도움을 받아야하는 어르신과 억울한 누락자는 행정기관에 연락하거나 찾아가셔야 합니다. 그리고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에겐 동사무소가 멀리 떨어져있으면 통장댁이 작은 민원실 역할을 해줘야 지금 정부가 바라는 '공평한 복지'가 실현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웃집의 김할아버지(86)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조통장 댁은 우리 마을 노인들의 '만능 민원실'입니다. 언제나 부담감없이 찾아가서 도움을 청할 수 있습니다. 가난하고 외로운 노인들은 부족한 것도 많고 모르는 것도 많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볼 때는 지극히 작은 일 같지만 모두가 힘들고 불편합니다. 조통장은 이러한 노인들의 고정을 모두 보살펴 줍니다. 형광등을 갈아끼우는 일에서부터 식량이 떨어지고, 병원에 가는 일, 일용근로·경로당에서 왕따 당하는 일, 관청에 민원을 내고, 억울할 때 탄원서를 쓰는 일까지 온갖 걱정거리를 다가지고 가도 부모님 일같이 잘 돌봐주십니다."

옆에 계시던 할머님(83)도 서둘러 말씀을 보태셨다. 자신은 통장댁에 단골로 수고를 끼치는 염치없는 할미라고 소개하면서 통장 아제 내외는 우리 동네 '모든 노인들의 아들이고 며느리'라고 칭찬하셨다. "저는 감기만 들어도 찾아가고 입맛이 떨어져도 통장댁을 찾아갑니다. 별미를 얻어먹고 돌아서 나올때는 언제나 목이 메입니다. '내 맘 짚어보고 남의 말 하라'는 옛말이 있지만 우리 통장 내외만한 사람이 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날마다 통장 내외를 위해 기도합니다. 저도 장성한 아들이 있지만 장사하다 실패하고 그만 소식이 끊어졌습니다. 요즘은 가끔 통장댁(김인숙)을 며느리로 착각할 때가 있어 내가 정말 노망이 들지 않았나 걱정을 해봅니다."

- 통장으로서는 마을노인돕기에도 힘겨울 텐데 대구신문고(봉사단체) 등 여러 단체에도 봉사를 하셨던데요?

"대구신문고에는 도움을 준게 아니라 도리어 쌀지원을 받은 것입니다. 몇해전 신문고에서 굶고 있는 노인들에게 쌀보내기운동을 할 때 그 취지가 좋아서 저도 3년여 매월 조금씩 쌀값을 보낸 적이 있는데 제가 마을로 되가져온 쌀이 휠씬 더 많았습니다. 신문고가 좋은 예가 되겠습니다만 저는 여러 봉사단체에 가입을 하거나 관계를 맺고 도움을 받아서 마을 노인들을 조금씩 도와왔을 뿐입니다. 제가 무슨 대단한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소문은 모두가 과찬입니다."

- 끝으로 더하고 싶은 말씀은?

"통장 입장에서 노인복지를 위해 말씀드리면 우리 통장님들이 조금만 더 봉사정신을 발휘해 주셨으면 좋겠고 정부에서도 통장들이 사명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봉사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직도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비수급 홀몸노인들은 혼자서 굶고 앓고 있다가 혼자서 운명하셔도 자식들도 모르고 정부나 이웃에서도 모르고 있는 경우가 있어 너무나 안타깝고, 지금은 하고많은 어르신들이 이러한 사실을 슬퍼하시고 세상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다년간의 통장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일선의 노인복지행정은 지금도, 앞으로도 당분간은 일손이 부족하여 무의탁 어른들에게는 세세하게 행정력이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저소득층의 노인복지는 기초부터 적기에 대상자 파악과 상담이 충분히 이루어져야 그나마 부족한 재정에 복지가 고르게 지원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현실여건을 감안할 때 우리 통장들의 역할과 봉사는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노인복지를 위해 애쓰시는 모든 분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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