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해설사, 남산칠불암 지킴이 민선길 선생
문화재해설사, 남산칠불암 지킴이 민선길 선생
  • 이정희 명예기자
  • 승인 2012년 11월 11일 21시 55분
  • 지면게재일 2012년 11월 12일 월요일
  • 1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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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잊고 자랑스런 문화유산 알려요"
문화재해설사, 남산 칠불암 지킴이 민선길(71) 선생

요즘은 별로 안 쓰이는 말이지만, 얼마 전만 해도 양반이라는 말은 아이 달래는 데도 써먹을 정도로 좋은 뜻이었다. 사람의 됨됨이가 점잔하고, 예의바르고, 남을 잘 배려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흔히 '그 사람 참 양반이다' 한다. 그런 의미로 민 선길 선생은 누가 봐도 양반이다. 그는 항상 "고맙습니다"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와 함께 십년간 문화재공부를 하며 친분을 쌓아온 정 기열 선생은 이에 덧붙여 그는 모든 일에 세심하고 남을 불편하게 하면 자기가 더 불편한 사람, 남을 배려하는 데는 일등이라고 칭송한다.

민 선생은 포스코맨이다. 그는 포스코가 처음 건설될 때부터 참여한 창업공신으로, 27년간 공무부 중앙공장에 근무하면서 포스코의 성장에 많은 기여를 했으며, 지금도 그 당시의 동료들과의 모임인 '동작동우회'를 수석동호회로 발전시켜 30회의 전시회를 열었으니 수석(水石)에 대한 안목도 대단하다.

그는 지역 문화발전과 문화재에 관심을 가지고 신라문화원 문화재해설사반 1기에서 공부했고, 최근에는 1기 모임의 회장을 맡아 동료들에게 봉사하고 있고, 현재까지 남산 칠불암에서 문화재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10년 넘게 서예 공부도 해서 상당한 경지에 도달했지만 지금도 계속 서실(書室)에 다니며 수련중이다.

-포스코에 재직할 당시 가장 보람되고 기억에 남는 일을 말씀해 주세요.

"저는 공무부 중앙공장에 근무했는데 제철소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제강공장 전로(轉爐)를 일본에서 수입해서 사용했어요, 전로는 고로에서 나오는 선철(쇳물)을 강철로 만드는 중요한 설비인데 이것을 늘 일본에서 사다 쓸 수는 없겠다 싶어서 우리 부처에서 설계 제작하여 국산화에 성공했어요. 그 일이 너무 감격적이라 우리는 만세를 부르며 기뻐했지요. 그때 참여했던 요원들 40여명은 지금까지 '동작동우회'를 결성하여 모이고 있습니다.

-문화유산해설사로 활동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네가 원래 문화재에 관심이 많아서 퇴직하면 공부를 해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경주 신라문화원에서 문화유산해설사 양성을 위한 교육을 한다고 해서 얼른 갔지요. 처음 문화재 공부를 시작할 때는 경주의 이 방대한 문화유산을 우리 가족이나 친지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내가 설명해 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싶었지요.

-경주에는 많은 문화유적이 있는데, 동남산의 그 멀고 높은 곳 칠불암을 선택한 이유는요?

"처음에는 높은 곳이라 별로 희망하는 사람이 없어서 시작했는데 다닐수록 남산에 매료되고 남산의 다른 유적도 많이 접할 수 있고 칠불암 부처님들도 자주 만나 뵙고..."

-칠불암이 국보로 지정되었는데 어떤 절입니까?

"칠불암 마애불은 수많은 남산 불적 중에 가장 으뜸입니다. 2009년도 9월1일 국보 312호로 지정되었지요. 앞쪽 바위기둥에 사방불이 새겨졌고 뒤쪽 암벽에 세 부처님이 새겨져, 일곱 부처님이라 그냥 칠불암이라 누가 이름한 것이고, 원래 절 이름이 따로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예술성이 뛰어난 것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8세기 경) 불상일 것이라고 추정할 뿐 정확한 기록은 없습니다."

-해설사로 어떤 보람이 있으신지요?

"어디서든 보람이야 찾기 나름이겠지만, 칠불암을 다니면 내 나이도 잊어버립니다. 항상 쓰레기봉투를 가져가서 오며 가며 쓰레기도 줍고, 탐방객을 만나면 우리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해설할 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내가 모르는 것을 얻어듣기도 하지요. 사람들은 이 나이에 어떻게 그렇게 높은 산을 올라 다니느냐고 하지만 칠불암을 즐거운 마음으로 다니면 특별히 다른 운동을 할 필요도 없어요. 요즘 내 생활에서 가장 큰 활력소가 칠불암에서 해설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네 분의 다른 해설사와 함께 하는데 저는 매주 화요일에 근무합니다."

-붓글씨도 오래 쓰셨다면서요?

"서예는 노후의 취미생활과 정신수양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시작했는데 벌써 십 여년 글씨를 쓰고 있습니다. 좋은 작품 하나 남기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평소에 법정스님의 '무소유'에 공감하는 터라 이런 생각도 욕심이겠지요"

이런 소박한 꿈조차 욕심이 아닌가 걱정하는 민선길 선생. 그는 항상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서예학원을 운영했던 아내는 자신의 일까지 접고 남편과 두 아들을 위하여 가정에 헌신하기 때문이다. 항상 이웃을 배려하며 베푸는 삶, 범사에 감사하며 부처님 마음으로 사는 민 선길 선생. 그가 늘 건강해서 남산과 함께 오래 칠불암 지킴이로 건재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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