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도 자식인데 부모 봉양 당연하죠"

도란도란 정답게 살고 있는 허상봉씨 내외와 장모님.

노인 회장님의 간곡한 청이 있어 효성이 지극하다는 사위, 허상봉(49)씨 댁을 찾아갔다. 집 안에 들어서니 따님(윤종희)은 어린애 얼굴을 하고는 모친과 무슨 말인지 귀엣말로 속삭이고 있었고 사위는 방안에 누워서 고양이하고 씨름을 하고, 장모님은 한손을 들어서 손님을 반기셨다. 필자는 첫눈에도 참 재미있게 사는 가족들이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유독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장모님(87)의 모발이었다. 어르신의 머리는 백발이신데 머리 정수리 부근에서 보이는 새까만 머리칼은 보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필자는 조급한 마음에 몇가지 이상한 현상부터 질문했다. "모친의 연세 아흔이 가까우신데 귀가 그토록 밝으십니까?" "아니요- 정반대입니다.""그러면 속삭이듯 하신 말씀은?" "엄마는 남의 말은 못 들어도 저희하고는 통하는 말이 따로 있습니다. '입 말'이 아니고 '몸 말'이라고나 할까요-저와 엄마 사이엔 표정과 입모양을 보고도 대화가 됩니다.""정수리에 새까만 머리는 염색입니까? 새로 난 머리입니까?" "새머리입니다. 엄마는 절대 염색을 안합니다. 저희도 신기하게 생각합니다. 얼마 전부터 하얀 머리칼을 밀어내고 검은 머리가 새로 나고 있습니다." 필자는 더 이상 묻지 않아도 가족들의 효심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옛날에 한두번, 장수하면 새로 검은 머리가 난다는 얘기는 들어도 실제로 목격한 것은 처음이다. …정말 잠시였지만 많은 것을 생각게 하였다.

- 장모님 모시는 얘기 좀 해주세요?

"옛말이 틀리지 않아요. 장모님은 날이 갈수록 어린애가 되시는 것 같아요. 저희 내외는 퇴근할 때나 외출하고 돌아올 때는 어머님 방에 먼저 가서 손에 들고 온 곳을 다 열어 보이고, 설명해 드리고 나서 제 방으로 갑니다. 흔히 사위는 100년 손이고, 장모님은 모시기가 조심스럽다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위가 장모님을 공경한다고 자꾸 어렵게 대하면 도리어 장모님이 불편해 집니다. 저는 일부러 장모님 앞에서는 철없는 막내둥이처럼 처신합니다. 직장이나 밖에서 보고 들은 일을 미주알 고주알 다 얘기해드리고, 고양이하고 장난도 치고, 장모님 마음이 편하도록 놀아드립니다. 경계하고 조심하는 것도 장모님을 편하게 해 드리기 위한 방편으로만 합니다. 특별히 잘해드리는 것도 없고, 둥근 밥상을 차리고 손자·손녀 온가족이 들러 앉아 할머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식사를 합니다. 출·퇴근 할때 인사드리고 틈나는 대로 이야기해 드립니다."

- 장모님 모셔보니 어떤 점이 좋습니까?

"솔직히 말하면 마누라가 남편한테 잘해줍니다. 장모님 뫼신 후로는 한번도 부부싸움 한적이 없습니다. 어른이 계시니 싸울 수도 없겠지만 싸울거리가 없어집니다. 노부모님이 계시면 불편할 듯도 하지만 그런 것은 아주 작은 것들이고 가정의 평화나 교육적으로 큰 소득이 있습니다. 특히 자녀교육을 위해선 할아버지·할머님이 계셔야 합니다. 아동교육에 평생을 바친 페스탈로치는 '가정은 도덕의 학교'라 했습니다.'교육의 근본은 도덕'입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사랑을 배우고, 질서와 참을성을 배우고, 협동과 예절과 효를 배웁니다. 이렇게 우리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근본적인 것을 어릴 적에 가정에서 배우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교육적 여건이 갖추어 지려면 첫째가 노부모님이 계셔야 합니다. 특히 효교육은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입니다. 백번 회초리 들고 효를 강요하는 것보다 한번 효를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그리고 학교 공부도 공손한 자녀는 스스로 공부에 열중할 줄 압니다. 부모님이 걱정하는 것을 어린애들도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저의 경험으로는 효가 서지 않으면 절대로 교육이 바로 되지 않습니다."

- 장모님께서 사위 자랑 좀 하세요.

"쑥스럽게… 아들보다 낫지! 한번도 빈손으로 들어올 때가 없어요. 퇴근하면 같이 놀아주고…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추고… 언제나 마음을 편하게 해주지…."

- 친정에는 가족이 없습니까?

"오빠가 한분 계시는데 독신이고 좀 특별한 사람입니다. 아주아주 옛날 얘기 같지만 오빠는 총각시절 사귀던 아가씨가 딴 남자와 결혼했다고 평생을 청승맞게 혼자 살고 있어요. 얼굴도 잘생기고 부족한 것도 없는데…."

- 남편 자랑과 어머님 얘기 좀 ….

"남편이 저보다 엄마한테 더 잘합니다. 마치 막내아들 같아요. 딸들이야 누구나 자식을 낳아 키워 봤으니 부모님 은혜를 모를 리가 없겠지만… '마른자리 진자리 가려 뉘시고…' 우리 엄마는 가난한 농촌에서 저를 등에 업고 농사일을 하셨습니다. 제가 지금 엄마 모시는 일은 어머님 은혜에 비하면 만분의 일도 미치지 못하는 불효입니다. 남편이 정말 고맙고 자식들도 할머님한테 공손하니 모두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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