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사서 회전식 경전 윤장대 돌리며 소원 성취해요"
"용문사서 회전식 경전 윤장대 돌리며 소원 성취해요"
  • 양승복·이상만기자
  • 승인 2013년 07월 30일 21시 05분
  • 지면게재일 2013년 07월 31일 수요일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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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예천 용문사 대장전·윤장대
용문사 전경

우리나라 문화재의 20%, 고택의 40%, 세계문화유산 10건 중 3건 등 문화콘텐츠의 보고로서 전국에서 가장 많은 문화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경북도.

경북일보는 이러한 경북지역의 각종 문화재, 문화자산을 새로운 시각으로 상세히 소개하는 '경북의 문화재 재발견'이란 기획기사를 14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이를 통해 지역민의 역사, 문화, 예술적 자긍심을 갖게 하고 또한 지역발전의 원동력으로 승화시킨다는 방침이다.

용문사 윤장대

△ 고려의 공예기술과 건축기술이 함축된 용문사 대장전과 윤장대

예천군 용문면에는 신라의 고승 두운선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유명한 고찰 용문사(龍門寺)가 있다.

이곳은 풍수지리상 명당으로 인식돼 고려시대~조선시대까지 왕실의 태가 봉안됐고, 특히 국가의 난이 일어났을 때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법회가 열렸던 호국사찰이다. 또 용문사는 국내 유일한 윤장대(보물 제684호)를 비롯해 목조아미타여래좌상(보물 제1637호), 교지(보물 제729호), 대장전(보물 제145호) 등 국가지정 문화재만 10점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곳으로 예천의 역사·문화적 가치가 뛰어난 곳이다.

용문사 대장전

용문사 전시관에 소장된 '용문사기'에는 신라의 고승 두운스님이 이 산에 들어와 용을 몰아내고 못을 메운 뒤 초암을 짓고 살았다고 전한다.

고려를 창건하기 전 왕건은 삼국통일을 이루기 위해 이곳에 은둔하고 있던 두운스님을 찾아 헤메다 지금의 용문사 자리에 이르렀고 이때 한 마리 용이 나타나 바위 위에서 마중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윽고 왕건은 두운스님을 만나 머리 숙여 두운스님께 예를 표하고 비밀스런 약속을 한 가지 했다고 한다. 비밀스런 약속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용문사중수비(1185)'에는 왕건이 삼국을 통일한 후 두운스님을 위해 재물을 모으고 기와를 구워 30간의 건물을 지어주고 매년 150석을 주어 공양비용으로 삼게 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또 이 시기 윤장대를 설치했다고 기록돼 있어 적어도 대장전과 윤장대는 약 930년 전에 만들어진 보물 중 보물이다. 이렇듯 왕건과 두운스님과의 약속이 누처했던 암자를 국가를 수호할 수 있는 사찰로 만들어주지 않았나 짐작해 볼 수 있다. 이처럼 고려의 삼국통일은 예천의 용의 도움으로 이뤄졌고, 이에 사찰이름도 용문사가 됐다.

용문사는 통일신라 말 두운선사가 창건한 이래 천년의 세월 동안 법음을 이어온 유서 깊은 고찰이다. 조선시대의 대문호인 서거정 선생은 이곳을 '산이 깊어 세속의 소란함이 끊어진 곳'으로 표현했을 만큼 청정도량이기도 하다. 이에 용문사에는 국내 유일한 윤장대를 비롯한 9점의 보물 외에도 300여점의 소중한 유물을 간직한 문화유산의 보고라 할 수 있다.

특히 용문사에서는 일년에 두 번 특별한 법회가 열린다. 음력 3월 3일 삼짇날과 9월 9일 중양절에 열리는 이 법회에는 전국 각지의 수많은 신도들이 모여든다. 이날에는 평소에 일반인들이 돌릴 수 없었던 윤장대를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윤장대를 돌리면 경전을 한번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이 싸인다고 하는 유래에 따라 경력에 의지하고자 하는 많은 신도들이 윤장대 돌리기를 기원한다.

다만 문화재로 지정된 윤장대의 보호차원에서 일년에 2번만 돌릴 수 있다. 예천지역에서는 윤장대를 3번 돌리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기도 하다. 이에 일년에 두 번 열리는 윤전법회는 우리나라에서도 특별한 행사가 되고 있다. 그만큼 윤장대를 돌릴 수 있다는 것은 신도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으며, 이날에는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신도들이 윤전법회에 참여하고 있다.

더구나 신자들은 "3번 돌리는 데에는 보통 이상의 근력이 있어야 하고, 아무나 돌릴 수 없는 만큼 신통력이 강해 일반인들이 쉽게 돌리지 못한다"는 속설이 전한다.

이처럼 윤장대는 영력을 지닌 신앙물로서 인식되고 있으며, 신자들은 이 윤장대를 돌리기 위해 전국각지에서 이곳 용문사를 찾는다.

여기서 말하는 윤장대란 우리나라에 유일한 것으로서, 경전을 넣어 경장을 회전할 수 있게 만든 불교공예품이다. 이것은 대장전이나 장경각처럼 경전의 보관처임과 동시에 그 스스로가 경전신앙의 대상으로서 큰 의미를 갖는다. 용문사 대장전에 안치된 2좌(坐)의 윤장대는 용문사의 보물일일 뿐만 아니라 용문사를 대표하는 문화재이다.

'중수용문사기'나 '예천용문산창기사대장전중수상량문'기록에 의하면 고려 명종 3년(1173) 자엄대사에 의해 초창됐고, 그 후 1621년에 대대적으로 중수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즉 윤장대는 천년고찰과 함께한 산증인 것이다. 윤장대를 자세히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팔각의 전각형(殿閣形)으로 중앙의 경갑(徑匣)에는 경전(經典)을 납치하게 돼 있고, 하단 몸체에 붙어 있는 손잡이를 밀어 회전시킬 수 있는 구조이다. 기본적인 구조와 형태는 2좌가 동일하게 만들어져 대칭을 이루고 있어 음양의 조화를 말하고 있다. 불단을 향해 좌측의 윤장대는 8면에 각기 다른 종류의 꽃을 형상화한 꽃살창호, 우측 윤장대에는 격자살창호로 돼 있다. 특히 꽃살창호는 통판 투조기법으로 살구꽃, 모란, 연화, 국화를 비롯해 미늘형태의 꽃살까지 다양하며 매우 정교하게 표현돼 있다. 전면에 용문양이 그려져 있고, 그 한쪽 모서리에는 붙잡고 돌릴 수 있도록 긴 횡목 손잡이가 설치되어 있다.

중심 기둥은 마룻바닥 아래의 건물 지반에 설치된 초석과 천장의 가구에 끼워져 회전축을 이루고 있어 시계바늘처럼 돌릴 수 있다.

소규모 불교 목공예품임에도 불구하고 목조건축양식을 그대로 축소해 옮겨 놓은 신앙물로서 그 표현이 매우 정교하고 세련되었을 뿐만 아니라 은은하면서도 화려한 단청으로 인해 그 품격을 높이고 있는 국내 최고의 목공예품이다. 동시에 아담하면서도 나무의 목리를 그대로 드러내어 소박한 향내를 풍기고 있는 점은 우리 민족의 조형의식이 잘 발현돼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예배 대상으로서, 불교목공예품의 정수로 조성돼던 윤장대가 용문사에만 현존하는 것은 고려시대나 조선초기에 조성된 유물들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의 병란을 겪으면서 모두 파실되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용문사는 전란으로부터 살아남아 우리나라의 유일한 윤장대를 보유한 사찰로서 유명세를 얻고 있는 것이다.

근래에는 전국의 많은 사찰에서 용문사 윤장대를 그대로 번안해 경내에 설치하고 있으며, 이는 용문사의 윤장대의 의미를 다시금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용문사 윤장대는 독특한 신앙물로서 의미보다 우리나라 전통문화의 일면을 파악할 수 있는 대표 문화재로서 가치를 지닌다. 더구나 정교하게 조각된 윤장대는 보물 제145호인 대장전과 함께 건립된 것으로 우리나라 최고의 건축물이자 공예품으로서 국보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예천지역 최초의 국보가 돼 예천관광을 풍요롭게 해주는 불변의 자원으로 활용돼 관광수입을 극대화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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