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헌덕왕릉

경주시 동천동에 소재한 사적 제29호 신라 헌덕왕릉.

제39대 소성왕(昭聖王)과 제40대 애장왕(哀莊王)의 왕릉은 전해지지 않아 41대 헌덕왕릉(憲德王陵)을 가기로 하였다. 주말만 되면 우리 부부는 왕릉 답사를 위해 지도를 챙긴다. 몇 달째 계속되는 신라왕릉 답사다. 유난히 높다랗게 솟은 왕릉들을 보면서 그 시대를 산 조상들의 삶을 함께 생각해본다. 왕릉 옆에서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우리도 마치 신라인이라도 된 느낌이다.

오늘은 헌덕왕릉을 찾았다. 경주로 가는 길옆의 벼들은 서서히 이삭을 살찌우고 있다. 북천을 건너기 전 오른쪽 길로 들어서서 다리 밑으로 난 산업도로를 따라 갔다. 얼마 가지 않아 들판 가운데 아름다운 소나무 숲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저기구나! 한눈에 왕릉이 있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십이지신상.

주차장이 있어 쉽게 주차를 하고 소나무 숲에 들어섰다. 언제부터인가 남편은 사진기를 들고 나는 캠코더를 들었다. 캠코더를 켜고 남편의 모습을 따랐다. 매미소리가 먼저 우리를 반긴다. 이 소리도 캠코더에 잡힐까? 제법 넓은 숲 속에 소나무 그늘이 펼쳐져 있다. 뜨거운 한여름임에도 이곳에 들어서니 소슬바람이 불어와 시원하다. 소나무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조금 걸어 들어가니 호석과 난간이 갖추어진 왕릉이 보인다.

안내판을 읽어보는 것은 기본이라 제일 먼저 보고 있는데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하는 남편, 공부를 많이 했나보다. 안내판은 볼 생각도 않고 긴긴 설명을 이어간다.

표지석.

이곳은 제41대 헌덕왕릉으로 조카인 애장왕을 죽이고 비정하게 왕이 된 김언승의 묘입니다. 헌덕왕은 원성왕의 손자입니다.

구황교 밑을 지나서 2km정도 오면 들판 중앙에 소나무 숲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바로 앞에는 알천, 즉 북천이 흐르고 있는데 옛날에는 비가 많이 오면 범람했다고 합니다. 보시다시피 이곳은 북천과 높이가 비슷한 평지입니다. 그래서 쉽게 홍수가 났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헌덕왕의 할아버지인 김경신과 김주원이 권력다툼을 하고 있을 때 홍수가 나서 김주원 대신 김경신이 왕위에 올라 지난번에 갔던 괘릉의주인공이었던 원성왕이 된 것입니다.

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북천에 홍수가 나면 분황사 탑의 인왕상과 헌덕왕릉 돌사자가 서로 물이 자기 쪽에 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고 합니다. 이 능도 괘릉처럼 완비된 무덤양식을 갖추고 있었는데 홍수 때문에 돌사자와 석인석 같은 석물들은 휩쓸려 가버려서 보이지 않습니다. 능도 주로 북천과 가까이 있는 남쪽 부분의 훼손이 심합니다. 그래서 십이지상도 북쪽에 있는 다섯 개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지금의 호석과 난간석은 1970년에 다시 보수, 정비된 것입니다.

이 능도 헌덕왕릉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고 단지 추정할 뿐이라고 합니다.

배우의 기질이 있는지 캠코더 앞에 선 남편의 이야기는 막힘이 없다. 문화유산해설사를 해도 될 것 같다. 후후.

그래도 다시 한 번 안내판을 읽어보았다.

신라 헌덕왕릉 (新羅 憲德王陵)

사적 제29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

이 능은 신라 제41대 헌덕왕(憲德王, 재위 809~826, 김언승)을 모신 곳이다. 경주시 북쪽을 가로지르는 북천(北川)의 북안(北岸) 평지에 위치하고 있다.

크기는 밑둘레 82m, 직경 26.8m, 높이 6m이다. 무덤의 하부에 병풍처럼 다듬은 돌로 보완했고, 보호석에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을 새겼는데, 지금은 북쪽에 있는 쥐[子]상을 비롯하여 소[丑]·범[寅]·토끼[卯]·돼지[亥]상 등 5개만 남아있다.

헌덕왕은 왕위에 있는 동안 김헌창(金憲昌)의 반란을 평정했으며, 당(唐)나라와 원만한 외교관계를 유지했고, 국방에 힘써 패강장성(浿江長城)을 쌓았다.

고려·조선 시대의 기록에 북천이 범람하여 능이 훼손되었다고 전하며, 1970년 경주 고도 관광종합개발계획에 의해 지금의 모습으로 정비·보수되었다.

아하, 여기가 북안평지이구나! 순조 때 헌덕왕릉임을 알리는 표지석을 세웠던 것 같은데 표지석은 없어지고 그 흔적만 남아있다. 호석과 난간석, 상석 등은 세월의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 밝은 빛깔을 띠고 있다. 새로 정비되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다섯 개만 남아있다는 십이지상을 찾아 능을 돌았다. 남쪽부터 보았는데 보이지 않다가 가장 북쪽에 있다는 쥐를 찾았다. 그 다음 소도 있고 범, 토끼, 돼지도 차례로 있다. 그런데 모두가 쥐를 무척 닮아있다. 쥐를 가장 먼저 보아서 그런가?

헌덕왕은 조카인 애장왕을 죽이고 왕이 된 사람이다. 권력 앞에서는 혈육의 정도 보이지 않는가? 죽어서 능이 홍수로 많은 수모를 당한 것도 인과응보가 아니었나싶다.

가까이서 탈탈거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지금은 웬만큼 비가 와도 범람의 우려가 없는 들판에서 풍성한 가을을 맞이하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는 농부아저씨의 경운기 소리다.<계속> 권현구·장성희 작가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