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호기자의 울릉도·독도이야기(10)

해마다 한가위를 앞두고 경북 구룡포서 강원도 주문진까지 동해안 항포구에는 오징어 할복 및 건조하는 아낙네들의 바쁜 손놀림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올해는 오징어 어군이 형성되지 않아 어민들의 한숨소리가 깊어지고 있다.

예로부터 오징어는 울릉도 인근 해역에서 많이 잡혀 울릉도 오징어나 동해 오징어로 불렸으며, 동해안 어민들의 대표적인 소득원이다.

오징어란 명칭은 어떻게 쓰이게 됐을까?

일부 학자들은 정약전의 자산어보(1814년·순조 14년)에서 ‘까마귀를 잡아먹는 도적’이라는 뜻의 오적어(烏賊魚)가 어원이라고 해석한다.

울릉도 밤바다를 밝혀 오징어를 잡는 채낚이 어선.

오적어는 오징어가 물 위에 죽은 척 떠있다가 까마귀가 내려앉아 쪼려할 때 긴 팔로 휘감아 물속으로 끌어들인 다음 잡아먹는다는 해석.

그런데 정약전이 귀양가 있던 흑산도 연안에서 오징어가 까마귀를 잡아먹는 일이 발생할 수 있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오징어는 야행성 활동으로 밤보다 낮에 비교적 더 깊은 수심에 머무르는 종이기 때문에 흑산도 근해 얕은 수심의 수면에서 먹물을 뿜고 긴팔을 가진 생물은 아마도 한치종인 꼴뚜기를 기술한 것으로 추측된다.

울릉도에서 오징어잡이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영남대학교 송희영 교수의 논문(2012) ‘일본인 거주자의 독도 인지’와 ‘한국 수산지’에는 일본인에 의해 1903년 울릉도 근해에서 오징어 조업 가능성을 인지했다고 한다.

울릉도에서 오징어 성어기가 되면 어판장 마다 오징어가 넘쳐난다.

일제 강점기 때 울릉도에서 오징어 조업의 가능성을 인지한 일본 산음 지방의 일본인들이 대거 울릉도로 진출, 오징어 어획고가 급증하게 됐다.

문헌에 따르면 울릉도의 오징어 어획량은 1904년 1천173(단위 천관), 1905년 9천927, 1907년 3만9천824로 크게 늘어났다.

울릉도 오징어잡이 방식의 유례는 뗏목처럼 생긴 ‘테우’에서 2~3명이 탈 수 있는 ‘강꼬’를 거쳐 발동선인 채낚이어선으로 바뀌었다.

낚시로는 손물레, 찍낚시 등으로 잡다가 둥근 나무물레(산자꼬)를 거쳐 인력이 배제된 자동조상기로 바뀌었다.

울릉도의 오징어 건조방업 이렇다.

울릉도 오징어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해양심층수로 세척해 말린다.

어선에서 내린 오징어의 내장제거(활복), 대나무 꼬챙이에 20마리식 끼우기, 심층수로 세척하기, 건조장으로 운반하기, 덕장에 널기, 오징어 다리 펼치기(탱기작업), 발떼기, 귀를 제치기(귀때기), 귀세우기, 포장 전 펴기(훑기), 포장하기 등 세분화 돼 있다.

울릉도 오징어는 청정해역인 울릉도 근해를 회유할 때가 가장 알맞은 크기로 자랐을 때이고, 육질이 두껍고 식감이 뛰어나다.

또 울릉도의 맑은 해풍과 복사열 등으로 건조되기 때문에 타지역에 비해 유해물질 노출이 적다.

여기에다 해저 깊은 곳에 뽑아 올려 미네랄이 풍부한 해양심층수로 세척까지 해 말려 판매해 인기가 높다.

울릉도 오징어가 따사로운 햇살과 해풍으로 맛있게 건조되고 있다.

가을철 오징어 건조 풍경은 동해안 어민들의 삶을 담고 있는 모습이다.

오징어를 보면 동해를 지키는 소중한 어민들의 땀방울 담은 가치를 느낀다.

울릉도 서면 남양리 몽돌해변에서 햇살과 해풍으로 오징어를 건조중이다.
울릉도 북면 천부리에서 건조중인 오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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