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김천 직지사

김천 직지사 대웅전과 삼층석탑.

신라 아도화상이 세운 절

다양한 사명 전설 내려와

고려~조선시대 거쳐 중창

당시 불교양식 고스란히

대표 경전 묘법연화경 등

예술·학문적 가치 뛰어나

■ 불교문화가 살아 숨쉬는 직지사

▲ 묘법연화경

김천시 대항면 직지사길 25에 위치한 직지사(直指寺)는 신라 눌지왕 2년(418) 아도화상에 의해 선산의 도리사(桃李寺)와 함께 개창 됐다. 사명을 '직지'라 한 것은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는 선종의 가르침에서 유래됐다 하며, 또 일설에는 창건주 아도화상이 일선군 냉산에 도리사를 건립하고 멀리 김천의 황악산을 가리키면서 저 산아래도 절을 지을 길상지지가 있다고 해 직지사라 이름했다는 전설도 있다. 또 고려의 능여 화상이 직지사를 중창할 때 자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자기 손으로 측지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란 설도 있다. 이는 모두 창건 설화와 연관된 직지의 미화된 전설에서 유래되고 있지만 실은 불교본연의 직지인심을 상징하는 선가의 직지가 둘이 아님을 볼 때 이는 불교의 본질을 나타내는 이름이라 본다.

▲ 백지금니금강 보문발원

직지사의 중요 유물로는 석조약사여래좌상(보물 제319호), 대웅전삼존불탱화(보물 제670호), 대웅전앞 동서삼층석탑(보물 제606), 비로전앞 삼층석탑(보물 607호), 청풍료앞 삼층석탑(보물 제1186호)을 비롯해 사적비와 괘불 영탱 등 상당수에 달하고 있다.

△직지사 대웅전

▲ 직지사 범종각

직지사 대웅전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5호(1985년12월30일)로 지정됐다가 2008년 9월 3일 직지사 대웅전 보물 제1576호로 지정됐다.

대웅전은 일주문, 금강문, 사천왕문까지는 좌측의 계곡을 끼고 지형에 맞춰 휘어져 올라온 북쪽에 위치하며, 만세루에서 대웅전에 이르기까지는 일직선상에 놓여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신당이 위치해 있으며, 대웅전 앞 뜰에는 2개의 3층탑이 놓여 있는 2탑식 중정형 가람배치를 가진다.

대웅전 가구의 구성 및 부재의 표현기법은 조선후기의 건축적 특징이 잘 표현됐음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 직후 재건된 불전들의 경향을 보이며, 아름답고 뛰어난 기법을 보여주는 내외부 많은 벽화와 불단이 남아 있는 등 보물로 지정해 보존할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충분하다.

△직지사 묘법연화경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은 2001년 1월 2일 보물 제1306호로 지정됐으며,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경전으로서 양촌 권근의 발문에 의하면, 조계종의 대선, 신희 등이 기로들을 위해 보기에 편리하도록 중자로 간행하기를 원했는데 성달·성개 형제가 상중에 이를 듣고 선군의 추복을 위해 필사한 것을 도인 신문이 전라도 운제현 도솔산 안심사에 갖고 가서 조선 태종 5년(1405)에 간행한 것이다.

권수(卷首) 앞에는 정씨라는 사람의 시주로 고려 우왕의 극락왕생을 위해 변상을 그리고 목판에 새겨 유통시킨다는 글이 담긴 변상도가 있다. 이어 송의 급남 화상이 쓴 '묘법연화경 요해서(要解書)'가 나오며 본문에는 묵서로 쓴 구결과 두주가 있다.

권말에는 권근의 발문에 이어 토산군 부인 김씨, 전사헌시사 송결의 처 영인 원씨 등의 시주자 명단이 있다. 후쇄본으로 상태가 비교적 양호하고 서발·변상도 '지기(識記)'가 완전해 묘법연화경 간행 사실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백지금니금강 및 보문발원

보물 제1303호로 2000년 12월 22일 지정된 백지금니금강(白紙金泥金剛) 및 보문발원(普門發願)은 고려 공민왕 20년(1371년)에 비구니 묘지, 묘수의 시주에 의해서 사성된 것이다권수에는 일반적인 경변상과는 구도가 다른 협시보살을 거느린 불상과 관음보살상이 각각 금니로 묘사돼 있고, 이어 금강반야바라밀경 묘법연화경 관세음보살 보문품제25, 영가대사 발원문이 필사돼 있다.

권말에는 '홍무4년 신해 7월 일지, 시주 비구니묘지, 동원 비구니 묘수'의 지기가 있어 시주지와 사성연대를 알 수 있다.

고려본에서만 적용되고 있는 피휘결획(避諱缺劃)은 연호의 '武(무)'자가 혜종 이름이므로 내리긋는 획이 결획됐다. 서체는 고려말에 일반적으로 쓰여진 안진경체(顔眞卿體)로 쓰여졌으며, 당시의 불교신앙의 일단면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직지사 대웅전 삼존불탱화

직지사 대웅전 삼존불탱화(三尊佛幀畵)는 보물 제670호로 봉안된 후불탱화로 비단바탕에 채색됐다. 탱화란 천이나 종이에 그림을 그려 액자나 족자형태로 만들어지는 불화로, 조선 후기에는 대웅전이나 대광명전 등에 흔히 3폭의 불화를 봉안하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인데, 이 불화도 그러한 형식을 따르고 있다.

중앙에 석가여래의 영산회상도, 왼쪽에 약사회도, 오른쪽에는 아미타불의 극락회도를 배치했다.

중앙에 배치된 불화는 석가가 영취산에서 여러 불·보살에게 설법하는 모습을 그린 영산회상도이다. 화면의 중앙에 석가불이 있고 좌우에 8보살과 10대 제자, 사천왕 등이 그려져 있으며 둘레에 많은 범문을 써 놓았다.

왼쪽 어깨에만 옷을 걸친 석가불은 악귀를 누르는 항마촉지인의 손모양을 하고 있다. 비교적 균형잡힌 체구와 둥근 얼굴에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있으며,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세밀하게 그렸다.

왼편에 있는 약사회도는 화면의 중앙에 약합을 든 약사여래가 앉아 있고 그 주위에 8대보살과 사천왕, 12신장 등이 에워싸고 있는 복잡한 구도이다. 본존불의 신체는 건장하고 당당한 모습인데 비해 얼굴은 지극히 작은 눈과 입 등이 매우 단아하고 엄숙한 인상을 풍긴다. 이러한 모습과 등뒤의 물결무늬 원형광배, 옷의 문양표현 등이 18세기 불화의 시대적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오른편의 아미타회상탱화는 중앙에 아미타불을 두고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을 비롯해 신장상 등이 주위를 둘러싼 구도이다.

이 세 폭의 탱화는 영조 20년(1744년) 세관(世冠), 신각(神覺), 밀기(密機) 등 10여명의 화승들이 그린 것을 염불도인(念佛道人) 진기와 지영(智英)스님이 증명한 것으로 전체적으로 짜임새 있는 구성과 뛰어난 묘사력, 안정감 있는 색감 등으로 당시 불화를 대표하는 걸작에 속한다.

△직지사 대웅전앞 삼층석탑

원래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에 있었던 도천사 유허지에 파손, 산재해 있던 것을 1974년 직지사 주지 오녹원 스님이 이곳으로 옮겨 원형대로 복원했고,탑봉 상륜부는 1976년 전문가의 고증으로 복원됐다.

8개의 석주와 8면의 석판으로 된 초대위에 4개 석주와 4개 석판으로 정방체를 이룬 탑신이 조화를 이뤄 안정감을 주는 거탑이다. 1층과 2층은 6단, 3층은 5단성으로 정교하게 조각 돼 있으며 통일신라시대 도선국사가 조성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이 탑은1976년 11월30일 보물 제606호로 지정돼 전체높이 8.1m에 탑 높이 5.3m에 달한다.

△직지사 비로전앞 삼층석탑

대웅전 앞 삼층석탑과 마찬가지로 원래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 뒷산에 있었던 도천사 유허지에 도괴된 채 산재한 것을 1974년 직지사 주지 오녹원 스님이 이곳으로 옮겼다. 상륜부는 없어져 1980년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복원했다.

보물 제607호로 1976년 11월 30일 지정됐으며, 탑의 규모가 크고 전체적으로 조형미가 우수한 작품으로 대웅전 앞 삼층석탑과 수법이 같으며 한 사람이 조성한 것으로 보이며, 상세한 유래는 알수 없으나 도선국사가 도천사를 창건할 때 조성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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