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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정변에서 광복까지…예천 박씨 가족사로 보는 근현대사
갑신정변에서 광복까지…예천 박씨 가족사로 보는 근현대사
  • 양승복·이상만기자
  • 승인 2013년 11월 05일 21시 30분
  • 지면게재일 2013년 11월 06일 수요일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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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예천 '맛질 박씨가 일기'
보물 1008호로 지정된 예천 '맛질 박씨가 일기' 원본 모습.

1834년부터 115년간 4대에 걸쳐 쓰인 가족 일기

혼란의 시대 이겨낸 생생한 민초의 삶 고스란히

현존하는 민간 최고의 기록물…보물 1008호 지정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담긴 문화유산, 맛질 박씨가 일기

'예천 맛질 박씨가 일기'는 1834년부터 1949년까지 4대에 걸쳐 115년 동안 매일 쓰여진 한 집안의 일기이다.

예천군 용문면 대제리에 위치한 '미산고택'(문화재자료 제137호)에서 쓰여졌으며, 이곳은 1913년 일제가 지방행정체제를 정비할 때 상리는 대제리로 이름이 바뀌고 하리와 백학리는 하락리(下鶴里)로 통합됐다.

따라서 이 일기가 쓰여진 곳의 범위는 지금의 대제리를 언급하는 것이며, 넓게는 하학리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이 일기는 현재 보물 제1008호 함양박씨 정랑공파 문중전적으로 지정돼 있으며, 이 중 일기자료는 '渚上日月(저상일월)' 20책과 '渚上日用(저상일용)' 16책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여러 가문의 일기 가운데 예천 맛질 박씨가 일기처럼 장기간의 것은 유례가 없다.

짝을 이룰만한 것이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동 류씨가의 1851~1936년간의 일기(구례 류씨가의 생활일기)인데 그것도 1901년까지는 일기라 하기에는 빠진 날이 너무 많다.

따라서 예천 맛질 박씨가 일기는 국내에서 알려진 민간 최고의 기록물로 평가받고 있다.

일기에 나타난 몇 가지 사건을 살펴보면, 미국상선 제너럴 쉐르망호 사건, 병인양요, 남연군묘 도굴사건, 서원철폐, 영남의 병호시비, 최익현의 시폐상소, 대원군의 하야 등이 있다.

일본의 운양호가 강화도에 정박하고 그에 수반해 교섭이 이뤄진 사건, 그리고 제1차 수신사의 출발과 귀환 등도 기록됐다.

이중 1884년 갑신정변의 내용과 예천의 비 피해가 발생한 예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소문에 따르면 이날 일본인 장교들이 갑자기 궐내 들어갔다"(1884.10.17).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나서는 "소문이 매우 놀라워 상세히 알아보니 감히 적어두지 않을 수 없다. 별입시(別入侍) 재상 중에 해를 당한 자가 10여인인데, 일인 우두머리가 죽여 수레로 실어냈다고 하니, 이것이 궐내 사변이다" (1884.10.25)고 기록했다.

다시 며칠 후에 "서울의 기괴한 소문에 따르면 일인이 대궐 내에서 방자히 행하여 민태호, 윤태준, 민영목, 한규직을 죽였으며, 민영익은 칼을 맞아 사흘 후에 죽었다" (1884년 10월 29일)고 피살당한 재상이 누군지를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1851년 7월 17일 두 차례의 폭우로 갑자기 천이 넘쳐 예천장을 보던 사람들이 익사하거나 표류하였으며, 8월 7일에도 예천장을 보던 사람이 익사하였고, 윤8월 7일에는 큰 비가 폭포를 메달은 것처럼 내려 예천의 장옥(시장)이 물나라로 변하였다".

이처럼 예천 맛질 미산일기는 지역의 사건뿐만 아니라, 국가의 사건까지 수록하고 있다. 이는 서문에 ① 日氣, ② 세시의 풍흉, ③ 자가의 출입, ④농사의 경누와 수확, ⑤ 예절의 길흉과 이변, ⑥ 인리와 향토의 사건, ⑦ 조정.시중 및 포구·항구에서 일어난 사건의 일곱 가지를 꼭 기록할 사항이라고 하여, 이 일기는 단순한 사가일기(私家日記)가 아니라 나라 일을 적은 역사 역사서라는 특징이 있다.

양화가 거듭되던 대원군 시대에서 일체침략의 서막인 개항·개화기를 거쳐 일제 36년과 광복 이후 까지 100여 년의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희소성을 갖춘 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유래없는 민간 기록유산

이 일기는 4대에 걸쳐 쓰였으며, 4대의 생몰연대를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1대 미산(味山) 박득영(朴得寧 1808~1886년), 2대 나암(羅巖) 박주대(朴周大 1836~1912년), 3대 문파(文坡) 박면진(朴冕鎭 1862~1929년), 4대 동리(同里) 박희수(朴熙洙 1895~1951년)다.

2대 주대는 1896년 일기의 서문에 "사대부로 벼슬을 하는 자는 시정을 적은 일기가 있고 산림에 처한 사대부로는 경제가 있으니 이 또한 적을 만한 정사"라고 하였다. 이렇게 일기는 관료들의 시정기에 버금가는 가정의 기록을 적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됐다.

특히 예천 맛질 박씨가 일기 중 '저상일용'은 국내 전례가 없는 오늘날의 가계출납부와 같은 장부라는 특징이 있다. '저상일용'은 19세기 중반 한 재촌 양반가의 경제생활의 규모, 그 가운데서 화폐경제가 차지한 비중, 농촌시장에서 거래된 재화의 종류와 빈도, 촌민 상호간의 각종 거래관계 등의 실태를 파악할 할 수 있으며, 이로써 <박씨가 일기>는 농촌 사회사 및 경제사 연구에서도 자료가 가지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위와 같은 특징으로 예천 맛질 박씨가 일기는 '일기'라는 인류 보편적 기록양식이며, '저상일기'와 '저상일용(가계출납부)'이라는 2가지 형식의 특징적인 일기 기록물이다.

또 '저상일기'는 위의 7가지의 치침에 의해 작성됐으며, '저상일용'은 '저상일기'에서 분화돼 1934년부터는 인계의 수입과 지출을 별도의 난으로 분리해 정연한 장부체제를 갖추는 등 한집안의 일기체제가 발전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매일 일기가 쓰여진 사실은 시헌력을 인쇄한 역서(달력)의 해당 달과 날짜에다 기록을 남겼던 사실에 있다. 이에 대해 2대 박주대가 1895년 서문을 쓰면서 "1883년 갑오년에 우리 집이 시헌력서일기(당시의 달력책)가 시작되었다"고 하면서, 그는 선친인 박득령이 13년간이나 병석에 누워 계시는 동안 아버지를 대신하여 간간히 일기를 쓰다가 그 뒤 5년간 전적으로 자신이 맡아 쓰게 된 안타까운 사연을 회고하고 있다. 전후 무려 18년간이나 아버지의 병석에서 떠나지 않은 그의 효심이 오늘의 우리들 세대에 큰 교훈을 주고 있다.

또 예천 박씨가 일기는 세계 보편적으로 쓰인 일기류 가운데 서술방식에 따른 뚜렷한 차별성을 보여준다.

첫째, 일기는 사건이나 일상생활 중 매일 반복되지 않는 내용을 수록했고, 특이한 사항을 기록함으로써 일기의 정연한 체제를 갖추고 있다.

둘째, 한 집안의 관혼상제 등 통과의례에 대한 일상생활이 기록돼 있어 예천 지역민의 구체적인 생활상을 파악할 수 있다.

기상정보를 통한 자연환경과 관련된 농촌생활과 기상인식체계, 질병과 죽음에 대한 인식, 가족·친족·노인·작인과의 관계 및 촌락과 고을 사회생활 등의 사회생활, 농사일과 노비와 임노동자 등의 노동력 동원, 수확물의 크기와 그 처분 등의 경제생활 등을 살필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셋째, 이 일기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사회나 국가 전체의 사건을 다루면서 미시적인 관점에서 개인, 집안, 촌락에서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예천 맛질 박씨가 일기는 미시사 연구에 결정적인 자료이다.

또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관찬자료는 국가 활동을 중심으로 기록하면서 간혹 지역 사회와 민간 개개인의 편린을 보여준다면, 이러한 일기는 개인, 집안과 친족, 마을과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기록하면서 간혹 국가 정보를 수록하므로, 양자는 상호 보완성이 강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이 자료는 정치사, 경제사, 사회사, 문화사 등 다방면의 접근이 가능하도록 쓰였다.

넷째, 시헌력을 인쇄한 역서의 해당 달과 날짜에다 기록을 남김으로써 115년 동안 매일 일기가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2대 박주대가 1895년 서문을 쓰면서 "1883년 갑오년에 우리 집이 時憲曆書日記(시헌역서일기, 당시의 달력책)가 시작되었다"고 한 사실과 '저상일월'의 서술체계에서 알 수 있듯이 '박씨가 일기'는 115년 동안 쓰인 일기이다.

이 일기는 지난 1993년 박성수 교수에 의해 '저상일월'과 2001년 안병직, 이영훈에 의해 '맛질의 농민들'이라는 책이 간행됐다.

또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는 보다 정밀한 번역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1차적으로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7권으로 탈초해 발간했고, 올해 탈초 작업을 마지막으로 내년이면 모든 일기의 탈초가 완료된다. 따라서 이 일기의 관심있는 연구자들이 원문을 찾아 볼 수 있도록 책이 발간됐다.

이처럼 예천 맛질 박씨가 일기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사회나 국가 전체를 다루고 있으며, 미시적인 관점에서 개인, 집안, 촌락을 다루고 있는 유례없는 민간의 기록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이 일기는 향후 아직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지방사를 연구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할 것이라 예상된다.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관찬사료는 국가 활동을 중심으로 기록하면서 간혹 지역 사회와 민간 개개인의 편린을 보여준다면, 이러한 일기는 개인, 집안과 친족, 마을과 지역 사회를 중심으로 기록하면서 간혹 국가 정보를 수록하므로 양자는 상호 보완성이 강하다. 따라서 역사에는 정치사, 경제사, 사회사, 문화사 등 다방면의 접근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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