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여자 쇼트트랙의 자존심을 세운 에이스는 떠오르는 스타 심석희(17·세화여고)가 아닌 '관록의 언니' 박승희(22·화성시청)였다.

박승희는 19일(이하 한국시간) 러시아 소치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금메달에 힘을 보탠 데 이어 22일 같은 장소에서 벌어진 여자 1,000m에서도 우승, 한국 선수단의 유일한 2관왕으로 등극했다.

앞서 14일에는 16년 만에 여자 500m에서 동메달을 따내는 등 박승희의 활약은 눈부셨다.

특히 가장 먼저 치른 500m에서 두 차례나 넘어지고도 다시 일어서 결승선을 향해 달리는 모습은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여자 1,000m 결승에서 오른쪽 무릎 부상을 이겨내고 우승한 박승희는 이번 대회에서 두 차례 금메달을 따내는 투혼을 보여주며 한국 쇼트트랙의 최고 스타로 떠올랐다.

대회 기간 도중 쇼트트랙 대표팀의 윤재명 코치는 "박승희가 500m에서 금메달을 땄다면 4관왕도 가능했을 정도로 컨디션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승희는 마지막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낸 뒤에야 "부상 후에 리듬이 깨져 힘들었지만, 팀원들이 있어 티를 내지 못했다"고 부상과의 힘들었던 싸움을 털어놓았다.

절정의 컨디션으로 대회에 나섰지만 뜻밖에 찾아온 불운에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후배들을 다독이는 의젓함을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실제로 박승희는 올림픽을 앞두고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뒤숭숭할 때면 선수단 분위기를 대변하는 역할을 맡는 든든한 '언니'다.

또 동생 박세영(21·단국대)이 국가대표로 뽑히자 "나보다는 동생이 선수 생활을 할 날이 많으니 더 잘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믿음직한 누나이기도 하다.

실제로 박승희의 나이는 이제 고작 22살이다. 4년 뒤 평창올림픽에서도 충분히 팀의 주축으로 활약할 수 있는 유망한 선수다.

하지만 4년 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이은별(고려대)과 함께 대표팀 '막내 여고생 듀오'로 뽑힌 이후 수많은 난관을 이겨내고 주축으로 활약해 왔기에 나이 이상의 관록을 느끼게 한다.

밴쿠버 올림픽에서 1,000m 동메달을 따고 "1등을 하지 못해 언니들에게 미안하다"며 펑펑 눈물을 쏟은 여고생 박승희는 이듬해 고등학생 후배들이 대거 대표팀에 합류하면서 그때부터 '언니 노릇'을 했다.

나쁜 일은 빨리 잊어버리고 욕심을 버리는 '쿨'한 성격에 다년간의 국제무대 경험이 더해지면서 박승희는 대표팀의 주축이 됐다.

대표팀 초기에는 1,000m나 1,500m에서 더 강점을 보였으나 이제는 가장 스타트가 좋은 선수로 꼽힐 만큼 기량도 계속 발전해 왔다.

박승희는 1,000m에서 심석희를 제치고 선두로 나선 것에 대해서도 "앞지르려는 생각보다는 뒤에서 다른 선수가 앞으로 나올 것 같아서 이를 막으려 본능적으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석희도 같이 1, 2위로 들어왔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이날 경기를 마치고 대표팀 최광복 코치가 강조한 관록과 든든한 언니로서의 풍모가 동시에 느껴지는 말이다.

4년 전 밴쿠버에서 아쉬운 눈물을 삼키던 막내는 이렇게 소치에서 기쁨의 눈물을 후배들과 나누는 대표팀의 기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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