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환포장풍 형상의 전형적 명당, 이병철회장부인 출생지로 유명

양동주 精通風水地理硏究學會

대구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는 대구 도심에서 서쪽으로 약20㎞ 떨어진 마을이며 달성군 다사읍에서 성주군 쪽으로 가다가 칠곡군 왜관읍 방향으로 약4km 들어가면 오른쪽 좁은 길로 접어들면 묘리가 있다. 묘리(妙里)는 밖에서 마을을 볼 수 없고 안에서도 마을 밖을 볼 수 없다고 하여 붙혀진 이름이다. 주민들은 '묫골'이라고 부르고 있다. 사찰의 일주문처럼 생긴 '충절문'을 지나 마을에 들어서면 길 양쪽에 50여 채의 한옥이 있으며 북쪽 끝에는 사당인 '육신사(六臣祠)'가 있다. 조선 세조 때 단종 복위운동을 하다 숨진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성원·유응부 등 사육신(死六臣)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사육신 사당은 의절사(서울 노량진동)·창절사(강원 영월군)와 육신사 등 전국에 모두 세 곳이다. 사육신의 묘소가 있는 곳에 의절사, 단종의 능이 있는 곳에 창절사가 있다.

묘리는 사육신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그러나 박팽년(1417∼56)의 후손이 이곳에 살고 있다. 그는 충남 회덕(현 대전시 동구) 출신이다. 연고가 전혀 없는 곳에 후손인 '묫골 박씨'(순천 박씨 충정공파)가 뿌리를 내린 것이다.

단종 복위에 연루된 박팽년은 아버지와 아들 셋도 모두 처형됐다. 이때 그의 둘째 며느리 성주 이씨가 친정인 묫골로 쫓겨 온다. 이씨의 임신 사실을 안 조정에서는 아들을 낳으면 죽이고 딸을 낳으면 관비로 만들라고 지시했다. 이씨는 아들을 낳았으며 때마침 딸을 낳은 여종이 있어 아이를 바꾸면서 목숨을 부지했다. 이 아들이 박팽년의 손자인 박일산(1456∼?)이다. 묫골 박씨의 입향조(入鄕祖)인 셈이다. 사육신의 제사를 지내기 시작한 사람은 일산의 손자인 계창(1523∼71)이었다. 그는 고조부인 박팽년의 제사를 지낸 뒤 잠이 들었다. 꿈속에 사육신 중 나머지 5명이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나 사당 앞에서 서성거리는 것을 보았고 이들 모두 대가 끊긴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제사를 지내기로 했다는 것이다.

묘리를 풍수지리적으로 살펴보면 낙동정맥에서 분맥한 팔공산맥에서 서쪽으로 가산산성과 백운산을 거치면서 크게 동에서 서쪽으로 다시 남으로 방향을 틀면서 맥을 이어가고 있다. 황학산과 자봉산을 거쳐 왜관산업단지의 주산에 이르며 여기서 산세는 낮고 순하게 변화하고 진행하면서 굴곡하여 낙동강과 나란히 용맥은 남으로 이어간다. 이렇게 용맥이 진행되어 나아가는 중에 중앙고속도로와 5번지방도로 그리고 경부선과 경북고속도로 인하여 맥이 끊어진 듯 이어가고 있으며 묫골 뒷산에 이르러 크게 학이 날개를 펴듯 용세는 좌우로 펼치고 다시 양팔로 안은 듯 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 안에서는 밖을,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는 풍수지리적으로 완벽한 환포장풍(環抱藏風)한 곳이라 하겠다. 이곳의 주산과 청룡과 백호는 노적봉(金體)의 형태을 하고 있으며 백호가 청룡을 감싸고 있어 전형적인 명당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묫골의 중심건물의 향은 남향이며 안산은 백호맥이 마을을 감싸고 형성된 부봉체가 안산(案山) 역할을 하고 있어서 이러한 풍수지리적 환경을 갖추는 곳에서는 분명 귀한 인물이 나고 부를 가져다주는 것으로 본다. 국회의장을 지낸 박준규씨와 삼성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의 부인 박두을(2000년 작고)여사도 이곳 출신이다.

마을에는 일산이 지었다는 정자인 '태고정'(보물 제554호)이 있다. 조선 명필인 한석봉이 쓴 '太古亭(태고정)'과 안평대군의 글씨인 '一是樓(일시루)'라는 현판이 있다. 입구에는 사육신 이야기와 마을의 내력을 알려주는 '사육신기념관'도 있다. 전화번호 (011-822-0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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