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한줌 무명위를 누빌레라

‘어린시절 꽃을 꺾으며 놀다 언덕위 코스모스 사이로 들어가 누워서 보는 청명한 하늘, 코스모스를 좋아했고 강아지풀을 꺾어 물들였다. 산과 들, 자연이 나의 스승님이다.’

광채나는 백자나 청자가 아닌, 질그릇처럼 투박하고 소박한 소호 김해숙의 우리 한복은 소호의 인생을 먹고 자란다.

익숙하지만 지루하지 않는 미감, 그가 만든 옷에는 들꽃이 담겨있다. 자신을 닮은 들꽃의 모양과 색들, 소박해서 더 아름다운 소호한복은 옛사람들이 떠오른다.

어렸을 때 부터 지금까지 접했던 것들이 스며든 자연스러움은 굳이 디자인이라 이름하지 않아도 좋을 옛 것의 표현이다. 오래된 무명이나 삼베는 옛 선조들의 노고와 일상생활의 멋이기 때문이다.

지난 날의 삶과 생활, 역사가 담겨 있어 더 정감이 간다며 우리 옷 예찬론을 펴는 김해숙씨는 우리 옷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

소호는 현재 포항문화예술회관 1층 전시실에서 ‘패랭이 꽃을 그리며’를 주제로 한복 전시회를 하고 있다. 무명과 삼베, 광목에 한땀 한땀 바느질로 수를 놓고 그 옷을 세계최고로 여기며 세상에 내놓는 첫 번째 전시회다. 손 바느질의 세련됨과 옷감의 질박함, 세상에서 단 한 벌뿐인 귀함에 관람객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김해숙씨는 조각보의 감침질 바느질 기법을 옷 바깥쪽으로 내는, 손바느질의 질박한 분위기를 개발했다. 검은 천에 흰 실로 밤하늘의 은하수를 본딴 은하수 바느질은 기존에 없는 소호만의 기법이다.

우리것의 매력에 조금씩 눈을 뜬 그는 “한국적이어서가 아니라 흐름이 그렇게 만든 것”이라 한다. 가볍고 따뜻하고 빨래하기 쉬운 옷감들에 밀려 장농 속으로, 혹은 불쏘시개로 사라진 무명이나 삼베의 진가를 일찍부터 소호는 알아봤다,

그는 지금도 삼베나 무명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 한 달 생활비를 몽땅 투자해 마련한 옷감을 손에 넣으면 밤새도록 꽃구름 무늬 누비를 만든다.

김씨가 자수에 몰두하게 된 것은 중학교때부터다. 이불 호청 떠놓은 것을 잘라 옷을 만들다 어머니께 혼났던 기억, “뜨게질 하는 시간에 공부하라”고 호통치며 실타래를 아궁이에 태우던 아버지, 그래도 소호는 들판에 나가 꽃과 강아지풀을 말려 염색하고 놀던 기억이 지금의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무명은 김해숙씨에게 귀중한 보물이다. 옷을 재단할 때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다루며 한 조각도 버리지 않는다.

2년전 ‘임란 화산불 위령재’때 김해숙씨는 춤을 췄다. 당시 입었던 춤복 역시 자신이 디자인하고 바느질한 옷으로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각인돼 있다. 어디서나 어울리는 우리 옷의 우수성과 아름다움, 옷에 깃든 서글픔, 한을 보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이번 전시회에 자신의 창작품 은하수 무늬를 수놓은 상의, 패랭이 꽃을 수놓은 옥양목 한복, 70여년된 무명에다 염색을 하고 디자인을 해 장미를 수놓은 상의, 60여년 전의 남자 두루마기를 쑥물로 염색한 후 리모델링해 여자두루마기로 변신시킨 옷, 감물 혼합 양면 반코트, 할미꽃을 수놓은 광복 랩치마, 은하수무늬 수놓은 삼베누비 등 감침질이 특징인 옷 40여점을 내놓는다.

장농 속에 들어있는 골동 무명을 꺼내 만지다보면 한 올 한 올 짜나갔던 옛 사람들 정성에 절로 탄복이 나온다는 김씨는 까다로운 자신의 특색을 고집하다보니 옷 1벌 제작에 수 개월이 소요된다. 때문에 대중성이 희박한 단점은 있지만 “경험이 쌓일수록 정말 매력있는 일임을 느껴간다”고 한다. 다양한 범위와 창조적 가능성, 그런 것들 때문에 가슴이 벅차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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