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하에는 고대부터 꽃과 나무 어우러진 화원 있었다”

청산별곡이라는 고려(高麗)가요가 있다. 자연에 돌아가고자 한 이의 간절하고 아름다운 노래다.

“살리라 살으리랏다. 청산에 살으리랏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으리랏다.…”

포항시 북구 청하면(淸河面) 덕성리 기청산식물원 이삼우(李森友)원장은 이 '청산(靑山)'은 '이상향(理想鄕)을 가리킨다고 보고 있다. 자신이 경영하는 식물원은 바로 이 '청산' 즉 유토피아를 꿈꾸는 고장이라 소개도 한다.

1964년 서울대학교 농과대 임학과(林學科)를 졸업, 인연이 있어 기청산식물원을 열게 되었다. 1990년의 일이다.

기청산식물원에는 드넓은 대나무 숲이 이어져 있다.

현재 700종의 나무가 자라고 있으며 1천500종의 풀꽃이 겨루어 피고 있다. 모두 '우리의 나무, 우리의 꽃'들이다. 따라서 '토종나무 생산 원조(元祖)' 소리를 듣고 있다. 전체 면적 9㏊, 산림청 등록면적 5㏊. 보유 종수 2천450여종(2012년 말 기준), 2004년 3월 22일 기준 국내 8번째로 손꼽히는 식물원이다. 매주 월요일은 쉬는 날이다. 개장 시간은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요즘은 부쩍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많이 찾아온다. 생태 학습, 심기와 가꾸기 학습, 화초와 나무 그리기, 사생학습 차 찾아오기도 한다. 모두들 진지한 모습, 재미있어 하는 모습이다.

어린이들이 가장 흥미를 보이는 곳은 낙우송 코너다. 이 거목 둘레에는 나무 자락 가득히 뿌리가 송이처럼 솟아나 진풍경(珍風景)을 보여주고 있다. 솟아난 뿌리로 숨을 쉬는 것이다. 이 희한한 모습에 아이들은 일제히 탄성을 지르며 흥미로워 한다.

청하면 덕성리에 '이상향'을 실현해 가고 있는 기청산식물원 이삼우 원장.

저녁노을이 질 무렵이면 모두 고개 숙여 연못 속에 얼굴을 파묻고 잠드는 수련(睡蓮) 꽃의 모습에도 아이들은 놀라워한다. 식물원의 꽃나무들이 보여주는 섬세한 생태가 어린이들 가슴에 싱그러운 감동을 일게 하는 것이다.

숲 속에서 우짖는 새들의 아름다운 울음소리도 신선한 감동을 일깨워 주고, 발길 가까이 달려가는 다람쥐 모습도 발랄하게 눈에 띈다. 1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이런 환경 속에 몸을 담게 하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정서교육이 될듯하다. 식물원은 참 좋은 학원이다.

뿌리로 숨쉰다는 낙우송의 뿌리가 솟아 있는 모습.

무엇보다도 싱그러운 공기 속에서 걷는 즐거움이 있다.

한국 정신의학의 원조 이시형박사는 식물원에서 걷기를 권장한다. "식물원은 우리의 귀중한 재산입니다. 제가 늘 권장하는 '걷기'에 더없이 좋은 곳입니다. 식물원에서 걷기만 해도 우리의 건강은 놀라울 정도로 회복됩니다. 평탄한 산책로에, 정성들여 가꾸어 놓은 나무들, 풀꽃들, 거기에 곁들여지는 새나 다람쥐, 청설모 같은 동물과 함께 걷는 길은 그 자체가 치유의 세계입니다. 근래 들어 전국 곳곳에 괜찮은 식물원, 수목원에 자주 다니면 차분해지고, 세로토닌이 적극적으로 솟아나는 시간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우리나라의 식물원과 수목원은 모두 몇 군데나 될까.

이영희 전 포스코인재개발원 교수

서울 시립대학교 최영재교수의 석사 논문 우리나라 수목원 및 테마 식물원의 현황에 관한 연구(2005년도)에 의하면 △국공립 식물원수 24곳 △사립 식물원소 34곳 △국공립 수목원수 14곳 △사립 수목원수 9곳 △국공립 테마 식물원수 5곳 △사립테마 식물원수 18곳 등 104곳으로 되어 있다.

그럼, 일본의 식물원 수는 얼마나 될까.

일본식물원협회에 참가하고 있는 식물원은 185곳, 협회에 참가하지 않고 있는 식물원은 61곳, 합계 246곳이나 된다. 이 중 약학부(藥學部)가 있는 대학에는 거의 약용(藥用)식물원이 있어 모두 51곳이 된다고 한다.

이들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대학식물원은 토쿄(東京)대학 대학원 이학계(理學系) 연구과 부속 식물원, 통칭 '코이시가와(小石川)식물원'은 1877년에 창설되었다. 에도시대(江戶時代), 당시의 정부 당국인 막부(幕府)에 의해 개원(開園) 된 '코이시가와 어약원(御藥園)'으로, 1684년에 개원되었다 한다.

어린이들에 대한 식물(植物) 교육도 철저하다. 전국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은 1학년서부터 화초 키우기 교육을 받고 있다.

생활과에 해당되는 교육이다. 1학년생에게 맡겨지는 공부는 나팔꽃 키우기다. 학생 각자에게 각각 한 개의 나팔꽃 화분 갖기가 맡겨지고, 여름방학 때는 집으로 가져가 키우게 한다.

초등학교 3학년생에게는 해바라기 가꾸기가 맡겨진다. 4학년 학생은 수세미 가꾸기를 하게 된다. 수확한 수세미로 솔도 만들게 한다. 식물 가꾸기를 생활교육화 시키고 있는 셈이다.

청하는 일찍이 고구려(高句麗)의 최남단(最南端)지역이었다. 고구려는 항상 신라의 동부지방을 따라 남침(南侵)해왔는데, 그 남단(南端) 지역이 청하였던 것이다. 고구려가 겨냥한 것은 신광(神光)이었다. 신광의 대제철단지(大製鐵團地)를 향해, 고구려는 끈질기게 신라 공격을 되풀이했다. 우선 청하를 공략, 아혜현(阿兮縣)이라 이름 지어 신광 공격의 기지로 삼고 있었다. 청하에서 신광까지의 거리는 약13리(里)였다. 3㎞남짓한 가까운 거리다. 신광과 청하 사이의 자그마한 산 하나는 때로는 신라 영토로, 또 때로는 고구려 영토로 뺏고 빼앗기곤 했다.

그러다 고려(高麗)조에 이르러 아혜현은 청하(淸河)로 이름이 바뀐 것이다. 이 무렵에서 조선조에 걸쳐 청하에는 화원(花圓)과 소나무 수백 그루가 있는 송림(松林)도 있었고, 매죽루(梅竹樓)라 불린 매화나무 대나무로 에워싸인 누각도 있었다. 벌지(伐地)라는 둘레 1만300척(尺)이나 되는 연못도 갖추고 있었다.

요즘의 청하 기청산식물원에도 연못이 있다. 원래는 훨씬 큰 연못이었는데 수년 전에 상당 부분을 흙으로 매웠다하니, 지난날의 벌지(伐地)가 이 연못 자리에 해당되는지도 모르겠다.

꽃과 연못의, 기청산식물원의 옛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를 듯하다.

얼마 전, 상사화(想思花)가 만발했다는 소식에 기청산을 찾았다. 진홍색 꽃잎이 불꽃처럼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꽃과 잎새가 함께 만나지 못한다 하여 '상사화'라 이름 지어진 그 꽃 행열(行列)은 애틋하게 아름답고 눈부셨다.

이런 꽃행열 속에서 원유회(圓遊會)나, 시(詩) 낭송회를 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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