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rong>서상은 영일호미수회장</strong>

영일만 호미곶 등대위에 한해가 저문다.

해돋이 광장에서 밤을 새운 수십만의 인파가 솟아오르는 태양을 보고 환호성 치던 그날이 다시 왔다.

꽁꽁얼어붙은 한밤의 추위까지 견디며 아침을 기다리면 눈동자들. 밤이 깊으면 제 집에서는 가게에 심부름도 안 갈 청소년들도 서울에서 광주에서까지 천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친구끼리 연인끼리 몰려 와 호미곶 천지가 과메기 떼를 대신해 바글바글 소란하다.

기다리는 아침은 왜 그리길며 새벽은 또 왜 더디 오는가.

핸드폰을 열어 일출시간을 다시 확인해 보고 남은 시간을 기다리는 아이들. 아이들은 인내가 길면 그만큼 환희도 비례한다는 걸 체험한다.

동편이 붉어지면 아이들은 마음부터 성급하다. 설익은 풋과일을 익기도 전에 따먹던 병이 도진다. 해야 빨리 솟아올라. 해야 솟아라. 꿈을 실고 희망실고 둥실둥실 솟아라. 속마음으로 빈다.

드디어 기다리던 불덩이가 영일만 저편에 얼굴을 내어 밀며 함박 웃는다.

너도나도 한마음 되어 손 흔들고 소리치며 사지을 찍고 저마다 빌었던 소망들, 금년 한해 얼마나 소원 성취들 했을까?

그날 아침의 붉은 태양은 해맞이하는 이들의 얼굴에 아무런 차별도 없이 공정하게 희망을 안겨 주었다.

보았다. 영일만의 새해 새 아침 첫 태양을

태양은 보았고 이제 집을 가야 할 시간만 남았다.

한해 운이 좋으려면 공 떡국을 먹어야 기분이지.

광장 한편 백철 가마솥 앞에 끝없는 줄을 서서 새해맞이 떡 국 한 사발씩 받아들고 선채로 후룩후룩 먹으며 서로 쳐다보고 웃던 얼굴들. 내, 늙은 할애비가 보아도 행복해 하던 모습들이 눈앞에 선연하다.

해가 저만큼 떠오르면 나가는 자동차는 도로에 꽉 차있고, 이제부터 졸음에 잠은 퍼붓는 시간이 이어지는데 언제 집에 갈까 걱정하는 탄식들도 볼만 한 정경이다. 그날이 다시 왔다.

고생도 행복해 웃고 떠들고 핸드폰에 사진 몇장 찍고 돌아가는 생고생의 즐거움.

나도 술잔에 옛 이야기 띄워놓고 밤 세우던 그날이 어제인 듯, 하건 만은 또 태양을 한 바퀴 돌고 돌아 그날의 그 자리에 서게 되니 나도 동심으로 돌아가 애들과 함께 밤을 새우며 호미곶 추억 한 장 만들고 싶어 행복한 생고생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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