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여행, 패러다임을 바꾸자(2) 이정옥 위덕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초여름 햇살이 유난스레 따가운 날이었다.
약속장소인 오릉에서 만난 여성학 대학원 교수, 학생들과 급하게 인사를 나누고, 대강의 코스와 일정을 이른 뒤 바로 여행길에 올랐다.
이날 일정은 내가 만든 ‘선덕여왕 코스’에다 하루 일정에 맞는 경주시내의 여성사적 역사적 인물들의 현장을 답사하는 것이었다.
오릉을 지나 흥륜사를 지나면서 멀리 선도산을 바라보며 선도성모를, 태종무열왕릉을 가리키며 문희와 보희 자매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릉 뒤 남천 냇가에 이르러 도화녀와 비형랑 설화의 장소인 ‘귀교’가 있었을 법한 곳에서 아름다운 천관녀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남천길을 따라 박물관쪽으로 올라오면서, 왼쪽 남천 건너에 김유신의 생가터로 알려진 재매정을 보며 김유신의 어머니인 재매부인을, 오른쪽 밭 둔덕에 김유신이 어릴 적 사랑한 천관녀가 지었다는, 얼마전 발굴조사를 끝낸 천관사터를 번갈아 보면서 천관녀의 덧없는 사랑을 얘기하였다.
박물관 뒤쪽 효불효교터를 찾았다.
신라의 이름없는 과부가 일곱 아들을 두고도 밤마다 남정네를 찾아 남천 차가운 물을 건너는 것을 안타까이 여긴 그녀의 아들들이 어머니를 위하여 지었다는 다리, 어머니를 위해서는 효성 지극한 행실이나, 죽은 아버지에게는 심한 불효라 그 후세들이 다리 이름을 ‘효불효교’라 지었다는 전설의 다리였다. 박물관을 거쳐 지척에 있는 낭산의 선덕여왕릉을 올랐다. 사천왕사지에서 제의 만행에 의해 철길로 두 동강이 난 사연을 들은 학생들의 표정이 분노와 회한으로 예사롭지 않았다. 모두 한 입으로 일제의 야만적 문화침략과 그 후의 우리 역사 바로잡기가 얼마나 허술하였는가를 규탄하였다.
낭산 선덕여왕릉은 선덕여왕 코스의 마지막 장소였다.
교수와 학생들의 한결같은 제의로 선덕여왕께 4배의 절을 하고 여왕의 정치적 치적과 당대여성들의 사회적 지위와 제도에 대한 여성학 대학원생다운 격렬하고도 진지한 토론을 들으며 한마디씩 거드는 기쁨도 누릴 수 있었다.
현대의 지혜로운 여성들과 함께 신라시대의 여성을 만나며 꿈결처럼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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