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읽은 책에서 기억나는 내용이다. ‘한국인은 국가적,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을 실행할 때 그냥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글로 쓰기를 좋아한다. 큰 글자로 써서 거리에 달아 두거나 작은 글자로 써서 가슴에 달고 다닌다. 그 내용의 실행 여부보다는 써 붙이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우리나라 사람의 특성을 설명한 말이다.
우리들 어릴 때에는 가슴에 많이도 써서 붙이고 다녔다. 그것을 흉패라고 하였다.
언뜻 생각나는 것만 보기를 들어도 ‘교통안전 강조 기간,’ ‘불조심 강조 기간,’ ‘인권 옹호 주간,’ ‘교육 주간,’ ‘동포애 발양 기간’, ‘간첩 자수 기간’ 등을 들 수 있다.
이외에도 ‘반공 방첩’, ‘국산품 애용’, ‘나무를 심자’ 등등 매우 많았으며 두 가지의 기간이 겹쳐질 때도 있어 때로는 두 개를 달아야 할 때도 있었다. 불조심이나 반공 방첩은 붉은 글씨를 썼다. 비를 맞으면 잉크로 쓴 글씨가 번져서 흉해 보이기도 하였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군정 시대의 일이었다. ‘매월 1일은 조기 청소의 날’로 지정이 되어 온 국민이 아침 일찍 일어나 청소를 하였다. 이 때 라디오를 통하여 새마을 노래를 비롯한 국민가요가 전국으로 울려 퍼졌다. 학생들은 비를 들고 학교나 마을회관으로 뛰어갔으며 누구라도 그 소리를 듣고 늦잠을 자기가 민망스러웠었다.
뤼프게 서독 대통령의 방한 기간에 일어난 일화를 후일에 들은 적이 있다. 시끄러운 앰프 소리가 대통령의 새벽잠을 깨웠다. 사람을 시켜 무슨 소리냐고 물어 보았다. 한국에서는 매월 1일에 전국적으로 아침 청소를 한다고 하였다. 그 소리를 들은 뤼프게 대통령이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청소하는 날이 정해져 있다면 한국에서는 식사하는 날도 별도로 정해져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 하였다한다.
요즈음도 각종 캠페인이 성행한다. 현수막을 내건다, 입간판을 세운다, 피켓을 들고 행진을 한다, 어깨띠를 두르고 구호를 외친다, 무슨 운동이니 무엇 찾기니 하여 그저 하자, 하자, 또 하자는 캠페인이 줄을 잇는다. 이상한 것은 캠페인을 끝으로 사업(?)은 완료되는 것 같다. 열심히 구호를 외치던 사람들조차 그 내용을 잊어버리는 것 같다.
학생들의 청소 활동을 유심히 볼 때가 있다. 유난히 법석 떨며 하자를 외치는 학생이 있다. 그런 사람일수록 조금만 하는가 하면 입다물고 있는 학생이 청소를 더 많이 하는 것을 보았다. 많은 것을 깨닫게 하는 순간이었다.
무슨 운동이니, 무슨 운동이니 하여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보다도 하자고 떠드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실천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하자는 사람은 누구인가. 자연 보호를 외치던 현장에 떨어진 휴지는 누가 버린 것일까. 그냥 조용히 실천만 하면 안 되는 것일까.
백년 전, 지역의 선각자들이 일으킨 국채보상운동은 일제 침략의 암운기에 민족의 나아갈 길을 밝혀 주었다. 그룬트비와 달가스가 일으킨 식목 운동은 덴마크를 황무지에서 옥토로 바꾸어 놓았다.
선각자들이 주창한 위대한 웅변이나 구국운동은 입술을 통하여 가벼이 흘러나온 ‘하자’는 아니었다. 뼈를 깎는 신념과 희생과 봉사와 고통이 뒤따른 피땀의 결실이요, 시위였음을 알아야 한다.
무엇이든지 입으로 외치는 사람의 격은 침묵하는 지성인에 미치지 못한다.
이제는 행동하는 시민이 애국인이다. 외치지 말고 그냥 하자. 저마다의 양심과 결의에 따라 조용히 그저 하기만 하자. 힘들여 운동을 전개하는 낭비를 막고 진실로 실천하는 시민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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