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린 시절에는 아무리 무더운 여름이 와도 행복했었다. 십리 거리에 맑고 푸른 아름다운 바다가 있었기 때문이다. 성게랑 골뱅이를 따고 조개를 밟아내어서 허기진 배를 채우며 파도와 물고기들과 어우러지면서 뛰노는 해맑은 동심을 향해 자연의 오묘한 섭리를 이야기 해주듯 하던 그런 바다였다.
요즘의 바다는 푸념만 한다. 여름이 제발 오지 말았으면 한다. 행락철이 되면
더 더욱 울고싶다며, 사람이 미워 죽겠다며 울먹인다.
나는 이따금씩 사색하며 거닐던 그 해안 백사장을 이제는 가지 않는다. 사방에 나뒹구는 쓰레기더미들, 그리고 뭔가 달라진 물빛이며 냄새가 가슴을 욱죄여 오기 때문이다. 해수욕 시즌이 끝나고 바다를 찾아가 봤을 때 늘 그랬다.
전화(戰禍)의 흔적같은 처참하고 허탈한 정경들이다. 한국인들이 던져버린 양심이요 실종된 예의가 해변을 따라 원귀라도 된 듯 나뒹굴고 있는 정경들이다.
바다는 넓고 깊으며 맑고 푸르기에 바다다. 하염없이 움직이는 생명체다. 동식물과 미생물만이 생명체이고 물이나 흙이나 공기는 무생물이라며 마치 죽은 물질로 표현하는 서구식 현대과학은 잘못된 것이다. 소금물 그 자체부터도 원적외선이며 특수 이온 같은 기운을 내뿜기도 한다. 그리고 에너지를 방출하기도 하고 흡수하기도 한다. 부셔두면 뭉치려하고 뭉쳐두면 부서지려는 몸짓을 하기도 한다. 그냥 겉보기에 죽은 것 같을 뿐 영겁에 비견하여 본다면 하염없이 그 자태를 바꾸면서 생성하고 이동하며 존재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거대한 집합체이다. 살아 있기에 그 속에 오만가지 생명이 존재하는 것이고 그러기에 인간이 바다를 의지하기도 하고 좋아라 찾아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 거대한 생명체가 20세기에 들면서 골병이 들고 있다. 하염없이 쌓이는 폐기물들로 인하여 해안선은 온통 부스럼병이요 바다 속은 위암이며 간암 같은 고질병에 걸렸다. 플랑크톤을 일으켜주던 맑디맑은 강들도 하나같이 생명체를 말살시키는 오물들로 검푸른 빛으로 흘러내리고 있는 것이다. 워낙 넓은 바다니까, 겉보기에는 아직도 퍼렇고 하니까, 설마설마 하면서 다이옥신이며 기름찌꺼기며 독한 세제로 버무린 똥오줌 물을 마구 쏟아 넣고 있는 우리들이다.
환경청에서 몇 년 전 발표한 환경백서에 실린 내용 하나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2016년이 되면 동해가 사해(死海)로 변한다는 보고서였다.
호미곶‘장기곶’ 끝자락에는 꽤 먼바다 속으로 점점이 디딤돌 같이 솟아오른 마고할멈 전설이 서려있는 바위들이 있다. 영덕 축산에 있는 영감님을 만나기 위해 밤중에 디딤돌을 저 날라 놓다가 닭이 울자 그만 포기해 버린 흔적이라는 전설이다.
그 산맥 서편으로 거대한 분지가 형성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고 그 속에 수십년간 차곡차곡 쌓이는 오염물질들로 인하여 동식물들이 죽어갈 것이라는 뜻이겠다.
이 분지 일원이 곧 유사이래 수 십만 어민들을 먹여 살려온 황금어장 텃밭이다. 이 거대한 생명체가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서열이 뒤집어지면서 마침내 죽임을 당할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과학자들은 마음고통이 대단하였을 텐데 막상 이를 대하는 정치행정지도자들이며 지역민들은 담담한 표정들인 것 같다. 하기야 뾰족한 수가 없는 탓이겠지만, 분명 15년 후에는 거대한 바다장례식이 있을 수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아니 될 일이다. 분명 함께 죽어갈 여린 백성이 수없이 많을 것이다. 바다를 죽여가면서까지 좀더 편하게, 좀더 호화롭게 살아보겠다는 철학 없는 이기주의가 쌓아가는 악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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