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입을 열기가 부끄럽다. 열대야로 엎치락뒤치락 잠을 설치며 아무리 곰곰이 생각을 해보아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차라리 과거 권위주의 시대였더라면 시대 탓으로 돌리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말았을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넘어갈 수 없다는 생각에 더욱 잠을 설칠 수 밖에 없었다.
물에 빠진 중학생을 구하다 살싱성인한 어느 대학생의 의사 행위에 대하여 의사자 지정이 없었기에 천신만고 끝에 소송을 통하여 이를 밝혀내고 여러 독지가의 도움으로 의사한 현지에 추모비를 건립하는 행사를 며칠 전에 가졌었는데, 이 행사에 앞서 이를 주최한 시민단체인 문경시발전연구소의 정기총회가 열려 이 단체의 조직 개편안에 대하여 추인 절차가 있었다.
이러한 행사들이 끝나고 이 내용들이 인터넷을 통하여 공개가 되자 느닷없이 문경시청의 과장급 공무원 두 분이 공개된 이 단체의 조직에 포함된 일부 인사를 찾아가 이 단체의 구성원이 된 것과 직책을 맡은 것, 나아가 추모비 건립 행사 참석 여부 등에 대하여 불만을 토로하며 비아냥거렸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서 그만 말문이 막혀버림과 동시에 옛 민주화 시절에 겪었던 기분 나쁜 기억들이 하나하나 또렷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민주화 결집을 위해 동지들과 각종 집회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지역 일부 내무 공무원들이 귀가길을 서성이거나 전화상으로 누구와, 어디에, 무엇하러, 왜? 갔다왔느냐는 등 동지들을 귀찮게 굴었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고, 특히 이들의 친구나 아는 공직자들이 더욱 더 성가시게 굴었던 그 때의 기억이 새롭다.
그 때의 그 공직자들이 아직도 국가의 녹을 먹고 자리를 턱 버티고 있으니, 정보공작정치시대 때의 그러한 과잉 충성들의 작태가 오늘날 없어지리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 오히려 잘못된 판단인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흘러간 역사의 물줄기를 되돌리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아니 되돌릴 수는 없는 것이다. 몸이 커지면 옷을 갈아입듯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우리들의 의식도 변화되어야 하고 또 행동도 변해야 한다. 특히 개혁의 선도자인 공직자들은 더욱 선구자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구시대적 작태는 기필코 청산되어야 한다. 이것은 수구냐 개혁이냐의 차원을 떠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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