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건강하게 살 권리를 갖고 이 세상에 태어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그 건강권을 누리지 못하는게 현실이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생활환경이 개선되고 전염병이 예방되어 삶의 질은 물론 평균수명도 점차 늘어가고 있는 것은 현대과학 문명의 혜택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아직도 해결해야 할 질병은 수없이 많다. 그 중에서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분야가 소위 21세기 ‘생명공학’ 분야로 천문학적인 연구비를 들이면서 과학자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금까지 불치의 병으로만 알고 있던 에이즈, 암, 치매, 백혈병 등이 멀지 않은 장래에 치료가능 하리라는 희망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의 발달에도 문제는 있게 마련인 것이다. 이처럼 엄청난 비용으로 개발된 값비싼 의료혜택을 골고루 받을 수 있는 계층간의 불균형이 환자들 간에 생기기 때문이다. 얼마전 백혈병 환자들이 모 제약회사에 찾아가 약값을 내려달라는 항의 데모를 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하루 약값을 10만여원씩 내고 누구나 치료를 받을 수 없다는게 오늘의 현실이다. 이는 백혈병 환자들만의 절규가 아니다.
필자가 평생을 진료하고 있는 정신병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10년 20년 전만해도 약값이 하루에 몇백원 정도 였던 것이 근래들어 좋은 약은 만원정도 되어 참으로 걱정스럽다.
많은 정신병환자들은 가족으로부터, 인정을 못받고, 친구들로부터 따돌림 당하고,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로 비교적 만성적 경과를 밟으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계층의 환자들이 많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사회보호대상자들이다.
현재 의료보호 치료비가 하루 1,500원 정도 밖에 지불되지 않는게 오늘의 우리나라 현실이다. 하루에 만원이란 환자나 가족 그들에게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액수인 것이다. 보건당국에서는 의료보험료 외래환자의 평균진료비가 1,500원 정도이기 때문에 그렇게 책정된 것이라고 한다.
어찌되었건 진료를 담당하는 필자로써는 돈이있는 환자에게는 좋은 약을 쓰고 돈이 없는 환자에게는 새로운 약을 쓸 수 없다는데 고민이 있다. 모든 사람은 누구나 동등한 대우를 받고 동일한 건강권을 누릴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필자는 종종 21세기의 과학문명은 과연 인류의 평안만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갖는다.
정보산업도 좋다. 그러나 강대국의 생존이나 보호를 위해 개발하고 있는 군사무기MD(미사일 방어망) 에는 과연 얼마나 많은 연구비와 노력이 투자될까? 생명공학과는 정반대의 치열한 경쟁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하는 부질없는 걱정을 해보며 이것이 현대과학의 아이러니가 아닌가 생각한다.
삶의 질이 높아지고 생명이 연장되었지만 핵폭탄이나 MD같은 새로운 과학의 공포를 느끼게 되었으며 값비싼 의료비에 소외 당하는 새로운 계층이 생기는게 문제인 것이다.
떠들썩한 의료보험 재정도 펑크가 난다니 또한 문제인 것이다. 노인인구 증가, 새로운 의료기술의 발달은 의료비 상승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1910년대는 신경매독에 말라리아균을 주입해서 좋은 효과를 보았다고 노벨상을 받았는가 하면 1930년대는 뇌수술(전두염 절제술)로 정신병을 고친다고 노벨상을 받기도 했다. 1950년대 향정신병 약물이 개발된 이래 오늘날 처럼 새로운 약물의 범람과 치솟는 약값은 참으로 많은 정신병 환자들의 고민을 덜어 줄 수 있을까 걱정스럽다. 과연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현대과학은 인류의 모든 고민을 해결해 주고 안녕을 약속해 주며 평균수명을 120세로 연장해 줄 수 있을까? 아울러 계층간에 불평등없이 그 혜택을 골고루 누렸으면 하는게 소망이다.
매일같이 만성병을 앓고있는 가난한 환자들에게도 좋은 약을 써보았으면 하는 필자의 생각은 지나친 욕심일까? 그들도 우리와 꼭 같이 건강하게 살 권리를 갖고 있다는데 치료자의 고민이 있다.
경쟁적인 군사무기 개발을 중단하고 그 연구비를 생명공학 분야에만 투자한다면 약값은 물론 의료비의 상승은 진정되지 않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