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中伏)이 지나가고 말복(末伏)을 보내면 무덥고 짜증스런 여름도 ‘가겠지’
해마다 이맘때면 고온 다습한 날씨가 우리를 괴롭히지만 이 같은 괴로움이 없다면 가을의 풍성함을 기대할 수 없기에 우리가 필연적으로 치러야 할 고통인 것이다. 자연은 춘하추동(春夏秋冬)의 규칙적인 변화로서 우리에게 앞날을 대비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 그러기에 고통도 참을 수 있고 희망도 가질 수 있다. 자연은 이처럼 정직하고 위대하다. 하지만 인간사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현상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정부발표의 상당부분, 높은 분의 즉흥적이고 여론을 의식한 선심성 발언에 잠시나마 희망을 갖고 즐거워한 적이 많다. 허나 이러한 발표나 발언이 희망사항으로만 머물렀을 때 느끼는 허탈감은 아예 기대하지 않음보다 못하지 않았던가?
최근 미국에서 여론조사를 통해 역대 41명의 대통령에 관한 성적표를 발표했다. 1위 아브라함 링컨(16대), 2위 프랭클린 루즈벨트(32대), 3위 조지 워싱톤(초대)이 선정되었고, 무능한 대통령은 39∼41위에 앤드류 존슨(17대), 제임스 부캐넌(15대), 워런 하딩(29대)으로 발표되었다. 그 외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는 대통령으로서 아이젠하워(9위), 존슨(11위), 케네디(15위), 카터(19위), 조지 부시(22위), 빌 클린턴(23위), 레이건(26위), 포드(27위), 닉슨(32위), 등이 있다. 평가 기준은 지도력, 업적 및 위기관리 능력, 정치력, 인사관리능력, 도덕성 등 다섯 항목이었다.
상위권 3명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혁혁한 업적을 쌓은 대통령이므로 당연한 결과라 보지만, 훌륭한 경제적 업적을 기록한 빌 클린턴 대통령은 도덕성에서 하위 성적인 38위, 닉슨 대통령은 위기관리능력과 정치력은 뛰어났으나 역시 도덕성에서 최하위권인 41위를 받음으로써 하위권으로 밀려났다. 그러고 보면 대통령의 직무수행 평가는 개인의 능력이나 기능적인 측면보다는 타고난 천성과 후천적 인품이 평가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미국인들은 자유분방하고 이익을 중시하며 현실 지향적이므로 동양 문명권의 우리와 비교하면 상이한 부분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역시 대통령은 개인의 천성 및 도덕성이 뛰어나야 존경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런 점에서 아브라함 링컨, 조지 워싱톤, 루즈벨트 대통령이 국민의 절대적 존경의 대상이며, 다음으로 그들이 이룩한 위대한 업적을 꼽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대통령 이렇게 8명의 대통령이 탄생하였다. 언젠가는 국민에 의하여 평가될 것이다. 다만 지금 국민 각자의 마음속에는 호(好)와 불호(不好)에 대한 느낌이 있겠지만, 현실 분위기상 터놓고 말을 못할 따름이다.
이것 역시 민주주의 후진국의 징표다. 일국의 대통령으로 뽑혔다 함은 본인은 물론이고 가문의 영광으로, 그 직책을 수행하는 동안 최선을 다하고 역사 속에서 존경받는 인물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후세에 서열이 정해지는 것은 그들의 능력보다는 타고난 천성과 인격을 바탕으로 한 도덕성에 좌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의 눈으로 조망해 본다면 가까이서 사물을 관찰하여 평가하는 것은 부분에 불과하고, 멀리서 주변을 광활하게 관찰하여 발견하는 가치에 비교할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옛 성현들이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아라’고 한 것이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은 만고의 진리다.
지금처럼 무덥고 짜증나는 일기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시원한 가을을 예고하는 것처럼, 삶의 현상 또한 예고될 수 있다면 서민들은 고달픈 생활도 희망을 갖고 기꺼이 참아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지도자도 원시적 조망(遠視的 眺望)을 통하여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소망이 무엇인가를 헤아려 시행한다면, 먼 훗날 온 국민에게 추앙 받고 역사에 길이 남는 지도자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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