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바라·샤이에 롱 ‘조선기행’

1900년 전후, 격동의 한반도를 다녀갔던 벽안의 이방인들이 쓴 여행기 두 권이 출판사 ‘눈빛’에서 번역, 출간됐다.
‘조선기행’(샤를 바라ㆍ샤이에 롱 지음. 성귀수 옮김)과 ‘가련하고 정다운나라, 조선’(조르주 뒤크로 지음. 최미경 옮김). 두 권 모두 한국내 출간은 처음이다. 주일 프랑스대사관 문화ㆍ어학 협력관 장-노엘 주테씨와 외국어대 최미경, 불렉스텍스 교수의 노력으로 번역, 소개가 성사됐다.
‘조선기행’에는 프랑스 정부가 파견한 민속학자이자 탐험가인 바라의 <조선종단기>와 한성 주재 미국 총영사로 조선에 왔던 롱의 <코리아 혹은 조선>이 실렸다.
바라는 제물포로 입국한 뒤 한양에서 부산까지 조선을 종단하면서 각 지방의 특색과 지역민들과의 교감을 여행기에 남겼다. 제국주의적 시각이 일부 비치긴 하지만 조선 땅을 처음 밟은 서양인으로서 비교적 따뜻한 시선으로 이국과 이방인들을 살핀 흔적이 보인다.
민화, 장승, 비석 등 민속 문화와 누에를 치거나 갓을 만드는 현장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봤으며 조선인 특유의 가족제도, 강인한 노동력 등을 인상깊게 살폈다.
이 여행기는 동판화들과 함께 1892년 5월부터 5주간 여행지 『투르 뒤 몽드』에 연재된 바 있으며 바라의 수집품들은 파리에 있는 동양학 자료의 보고 기메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현장의 소리와 모습에 주목한 바라의 여행기와 달리 미국 총영사 롱의 기록은 공무 성격을 띤 방한인지라 다분히 제국주의적 시각과 문화적 우월주의 입장에서 씌어졌다.
당시 궁중문화, 왕으로부터 받은 인상, 외교 비화 등이 생생하고 특히 제주도여행 기록은 흥미롭다.
롱은 고종으로부터 신분증명서를 받아 제주도로 떠났지만 토착민들의 적대감과 배척에 막혀 제대로 재미를 못보고 한양으로 돌아왔다.
여행에서 돌아온 롱은 고종에게 제주도 사정을 전했는데, 그의 전언은 궁궐 밖을 모르는 왕에게 한 꾸러미의 정보였다고 한다.
프랑스 여행가이자 시인, 문화인류학자였던 뒤크로의 여행기는 ‘문화적 다양성ㆍ상대성’이란 시선으로 이방의 문화와 사람들을 들여다봤다는 데 특징이 있다.
“조선인의 의복은 실용적이지 못하다. 가진 것이 별로 없어도 조선 사람들은 행복하다”며 속깊은 관찰력을 보였는가 하면 ‘외삼촌 산소에 벌초하듯’ 등 당시 대중이 즐겨 사용하던 속담도 여럿 소개하는 세심한 기록이 돋보인다.
이 책에는 또 뒤크로와 동행한 루이 마랭이 찍은 사진 41점이 수록돼 이채롭다.
사진에는 1세기 전 한양 사람들의 의복과 표정, 청계천과 상가 등 거리 풍경이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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