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채팅 언어파괴 심각

이 땅에 어린이를 사랑으로 키우자는 운동이 일어난 지도 어언 80년이란 세월을 헤아리고 있다. 1923년 첫 어린이날에 소파 방정환 선생이 주축이 된 색동회에서 뿌린 전단에 있는 몇 가지 구호를 소개해 본다. ‘어린이를 내려다 보지 마시고 치어다 보시오/ 어린이를 가까이 하시어 자주 이야기 하여 주시오/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부드럽게 하여 주시오/ 어린이를 책망하실 땐 성만 내지 마시고 타일러 주시고/ 어린이들이 서로 모여 즐겁게 놀만한 놀이터와 기관 같은 것을 지어 주시오’
80여년 전 어린이 운동을 하는 젊은이들이 이 얼마나 미래를 내다보고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에 그 선각자들이 애써온 어린이 사랑의 마음을 되새기면서 오늘의 어린이 문화를 다시 되새겨 본다.
오늘의 어린이들은 문명의 이기 컴퓨터에 정신을 잃고 있다. 그 컴퓨터는 어린이들의 언어를 병들게 하고 있다. 인터넷 어린이 채팅 사이트에서 맞춤법에 맞는 대화를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언어파괴 현상이 심각하다. 어떤 조사에 의하면 어린이들의 컴퓨터 게임 중독이 56.5%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그런가 하면 그 게임에 있어서 상대방을 죽이는 일은 예사이고 접속자들끼리 집단을 만들면서 즐기는 온라인 게임이 중독성과 폭력성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들이 만화를 좋아하는 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진데 오늘의 어린이들은 외국 만화, 특히 일본 만화에 푹 빠져 있다. 만화판매 순위가 1위에서 6위까지 일본만화 라고 한다. 20여년 전에 ‘마징가 Z’‘캔디’등 일본만화에 빼앗겼던 동심이 01‘ 포켓몬스터’‘디지털 몬스터(디지몽)’로 이어져 만연된 것이 오늘의 어린이 문화 현실이다.
1970년대까지 동심을 사로잡던 학예회 중 아동극이 사라진 지도 이미 오래 되었다. 또한 오늘의 어린이들은 동요도 부르지 않는다. 대중가요, 팝송을 부른다. 어린이들이 TV앞에 앉아 어른들이 보는 연속극, 쇼 프로를 보면서 자라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시설은 어떠한가? 각 도(道)마다 하나 정도 있어야 할 어린이회관이 있는 도(道)가 얼마나 되는지? 우리 경북에는 아직 없는 실정이다. 광역시 이하 군 지역에 어린이 도서관도 전무한 편이다. 어린이 회관이나 어린이도서관은 그 지역 어린이 문화에 기준이 되는 척도다. 기초 지방자치 단위로 시립, 군립도서관이 있다. 그 도서관 안에 어린이 열람실을 보면 열악하기 짝이 없다. 시골 초등학교 도서실 수준이라면 어폐가 있을까? 맞춤법이 바뀐지 오래 되었는데도 폐기처분할 어린이 도서, 그대로 권수 채우기에 급급한 생각마저 들 정도다. 도서관 시설 및 운영에 얼마의 예산이 드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어린이 도서 운영비는 거의 전무한 상태가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든다. 얼마전 어린이 여름 독서교실에 참가하고 열악한 독서환경에 깜짝 놀랐다.
오늘의 어린이들은 공책이나 작문용지에 글쓰기를 싫어한다. 그러니 글씨가 점점 엉망이 될 수 밖에 없다. 모국어가 병들고 거칠어진 지는 이미 오래 되었다. 이것을 나무라고 고쳐줄 생각을 않는다. 일찍부터 외국어 배우는데는 열을 올리고 자랑으로 여기고 있으니 말이다. 자식을 기르는 부모의 마음 못지 않게 어른들은 입으로만 어린이를 사랑하자고 외치고 있다.
지엽적일지는 모르지만 어른들이 어린이를 사랑하고, 어린이와 호흡을 같이 할 수 있는 동시애송(童詩愛誦)운동과 동요애창(童謠愛唱)운동을 벌여 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또한 어린이의 생일, 졸업, 학년 수료, 전학, 이사 같은 기념일에 동시집을 선물하도록 권장하는 풍토도 조성됐으면 한다. 5천원 정도의 동시집 한 권이 어찌 일만원 이상가는 케익의 가치에 비길것인가. 책을 선물하는 건전한 생활풍토가 우리 사회에 뿌리 내리고 어른과 어린이가 함께 동시를 읽고 동요를 부를 때 혼탁한 우리 사회는 더욱 밝고 아름다와질 것이라 믿는다. 어린이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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