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 가장 아름다운 소리

집안에서 나는 소리가 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이웃 간의 도리이지만 세 가지 소리는 괜찮다고 한다. 아기의 울음소리, 설거지하는 소리, 다듬이질하는 소리가 그것이다.
아기의 울음소리는 미래를 향한 도약의 신호음이다. 사람들은 그 소리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날개를 펴는 한 인간의 장래를 축복하게 된다.
덜거덕거리며 그릇 씻는 소리는 약동하는 삶의 리듬이다. 그 속에는 끊임없는 노역과 생산, 가족의 건강, 청결, 다짐 등 내일을 기약하는 힘찬 멜로디가 있다.
고부간에 마주하고 앉아서 밤이 깊도록 두드리는 다듬이질 소리는 화합과 질서의 하모니요, 아름다운 예술의 한 장면이다.
이 세 가지 소리에 글 읽는 소리가 섞여 담 밖으로 흘러나온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깊어 가는 밤, 낭랑히 들려오는 글 읽는 소리는 세상의 그 어떤 소리보다도 아름다우리라.
80년대, 우리 집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학교에서 가훈 전시회를 함으로 우리 집도 가훈을 설정하게 되었다.
‘근면’ ‘성실’ ‘정직’ ‘인내’ ‘독서’ 등이 후보로 떠올랐으나 말이 단조롭고 딱딱하며 다른 집 가훈과 중복 될 것 같아서 좀 더 새롭고 시적인 말이 없을까 궁리를 하였다. 한참을 생각 끝에 지어낸 말이 ‘글 읽는 소리 냇물같이’였다. 아이들의 학구열에 불을 당기고 끊임없이 교양을 쌓으며 어릴 때부터 독서하는 습관이 몸에 베도록 하자는 가족의 다짐을 시적으로 표현해 본 것이었다.
가을이 왔다.
계절도 가을이 오듯이 우리의 인생에도 어느덧 가을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지난 삶을 되돌아 볼 때 다행스런 일도 많지만 후회가 더 많다. 후회 중에서 가장 큰 것이 독서의 부족이다.
‘젊은 시절에 좀 더 많은 책을 읽어 뒀더라면....’ 하는 회한을 하루에도 몇 번씩 가져본다. 나이 들어 읽은 책은 모래땅에 물 새듯 하여 머리에 남지를 않는다.
우리의 2세들이 후회 없는 삶을 보낼 수 있도록 독서교육을 강화해야겠다. 독해력은 살아가는데 막강한 힘이 된다.
몇 년전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한 J씨를 통하여 절감한 사실이다. 그는 많은 공문을 순식간에 읽고 처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독해력이 뛰어나니 저절로 사무 능력이 뛰어나고 따라서 업무의 능률이 보통 사람의 두 배는 넉넉히 되었다. 훌륭한 작가들의 글을 보면서 그들의 독서력을 간파할 수 있으며 나의 부족한 독서력에 안타까울 때가 많다.
영화나 책을 통하여 보면 미국에서는 먼길을 떠날 때 총을 가지고 나선다. 일본이나 중국인들은 검(칼)을 가지고 길을 떠난다. 우리 조상들은 괴나리봇짐에 서책을 준비하여 먼 길에 나서는 것을 보았다. 주막의 골방에서도 서책을 들치던 나그네의 모습에서 학문을 숭상한 선조 들의 면모를 엿 볼 수가 있다.
옛사람들의 독서는 요즈음에 소설 읽듯 한 두 번 훑어보는 독서가 아니었다. 읽은 책을 읽고 또 읽어 외울 때까지 보았다. 책을 읽는다 기보다는 암송한다는 편이 적절할 것이다. 세종대왕께서도 한 권의 책을 백 번씩 읽었다고 한다.
근래에 와서 우리의 독서력은 선진국에 비해 많이 저조하다. 일본인의 독서열과 메모하는 습성은 대단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책과 가까이 지내던 선조 들의 기백을 우리들 후손에 물려주어야 할 것이다. 어른들이 먼저 책을 읽어야 한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어른들이 책을 놓지 않을 때 아이들은 절로 독서를 하게 되리라.
예전에는 책이 귀해서 독서를 못하였지만 요즈음에야 얼마나 좋은가. 지천으로 널려있는 책. 깊어 가는 가을. 등화가친의 계절에 귀뚜라미 소리 벗하여 냇물 흐르듯 들려오는 글 읽는 소리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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