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1년 서울 견지동에서 태어난 선생은 17세의 나이로 정시문과에 급제한 뒤 홍문관 정자, 동부승지, 성균관 대사성을 역임했다.
선생은 1904년 2월 한일의정서 체결, 1904년 8월 제1차 한일협약 등 일제가 자행한 침략행위에 대해 격렬히 저항했다.
1905년 11월 17일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조약에 서명한 이완용 등 5적을 처형하고 조약을 파기하라는 상소를 올렸다가 일경에 체포돼 평리원 감옥에 수감됐고, 같은달 29일 기울어진 대세를 바로 잡을 길이 없음을 개탄하고 45세의 나이로자결 순국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