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벨소리 수업시간 찬물

대학 수업시간에 핸드폰 벨 소리로 시끄럽지 않은 학교는 아마 없을 것이다.
여기 저기서 각양각색의 전자음이 울려 퍼지면 모처럼 열심을 내어 하던 수업에 찬물 끼얹기로는 딱 알맞다. 그래서 학기 시작할 때는 반드시 핸드폰에 대해 한마디 주의를 주고, 만약 수업 중에 핸드폰이 울리는 경우에는 노래를 한 곡씩 하기로 정해 놓았다. 그랬더니 그 수가 현격하게 줄어, 이제 내 수업시간에는 거의 핸드폰 착신음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수업 전에 휴대폰을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반드시 끄는 내가, 며칠 전에는 좀 바빠 나도 모르게 깜빡했다.
한참 수업을 하고 있는데 바로 내 휴대폰 벨이 울려대는 것이 아닌가? 학생들은 박수를 치며 노래부르라고 야단들이다. 할 수 없는 일.
오랜만에 너무도 오랜만에 학생들 앞에서 한 곡을 해야겠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잠시 머뭇거리다, 나는 ‘저 새벽 이슬 내려 빛나는 언덕은……’으로 시작되는 ‘애니로리’를 서투르게 끝까지 불렀다. 그러자 또 박수가 터져 나오면서 ‘앙코르’를 연호했다. 나는 핸드폰이 한 번 울렸으니 한 곡만 부를 의무가 있다고 우기고는 ‘애니로리’를 일본어 가사로 한번 더 불렀다. 일본어 가사도 우리 가사만큼이나 아름답다.
수업을 마치고 교실을 나오면서도 무언가 신선함이 나를 휘감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그날 하루는 적어도 유쾌했다. 내가 부른 서투른 ‘애니로리’를 듣고 손뼉 칠 수 있고, ‘앙코르’를 신청할 수 있다면, 이 젊은이들은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년 가을 축제였지 싶다. 학교 행사가 있으면 도대체 연구실에 있기가 힘드는 데, 그 이유는 내 연구실 쪽으로 스피커를 설치해 놓아 시끄럽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래가 하루 종일 유행가뿐이다. 유행가도 그 나름대로 예술성이 있고, 또 사회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대중문화의 한 부분이다. 이를 나무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명색이 대학 축제에서 학생들이 듣고 부르는 노래가 하나같이 소위 오빠부대들이 열광하는 대충 그렇고 그런 노래들이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하루 종일 부르고 또 부른다. 이 도도한 천박함의 행진. 이 흐름은 도저히 막을 길이 없다.
또 학생들이 부르는 노래가 틴에이저의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 노래의 가사가 불량하기 짝이 없는 것이 많다. 꼭 동네 불량배들 술판에서나 불러 제킬 노래를 대학생들이, 그것도 공공연한 축제에서, 부르고 있으니 이 학생들의 고등학교 생활은 어떠했겠는지 참 궁금하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음악시간은 있었는지. 음악시간에 수업은 제대로 받았는지. 수업을 받았다면 어떤 수업을 받았기에 부르는 노래가 이모양인지 참 의문스럽다.
그래서 내가 ‘애니로리’를 부를 때 잠시 망설였던 것은, 이 노래를 불러 학생들에게 야유나 받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한구석에 없지 않았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정말 사족을 그리는 마음으로 가사에 설명을 덧붙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는 시간은 밤보다는 동틀 무렵이 더 좋다고. 그리고 사랑하는 애니로리가 내 맘속에 산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을, 참된 것을, 선한 것을 추구하는 마음이 우리 속에서 살아 있음을 뜻한다고. 그리고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있을 때, 우리는 무너진 상아탑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 아래서 머뭇거리고 있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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