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외성행 가정경제 휘청

요즈음 우리 사회는 교육이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 나는 이 위기를 대학 현장에 있으면서 늘 느끼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요즈음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나의 자식들을 바라보면서 이 위기를 더욱 더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고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서둘러 가르치려고 하는 부모들의 열성과 학원들의 손짓은 아이로 하여금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든다. 그래서 요즈음 우리 동네에는 자신의 아이들이 뒤질까 불안에 떨고 있는 부모들로 인해 개인 과외나 그룹 과외가 난무하며, 그로 인해 가정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더욱 더 마음 아픈 일은 돈 없는 아이는 처음부터 이런 경쟁에서 배제된다는 점이다. 서울의 강남과 대구의 수성구는 자본과 교육이 결합된 이 시대 기득권자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더 이상 공교육이 자신의 위치를 유지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면 우리의 교육이 왜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가? 그것은 배움을 안내하는 교육이 방향성을 상실한 데 있다. 원래 교육은 사람을 사람으로 살 수 있게 해주는 데 있다. 그런데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으려면 마음의 수양과 사물에 대한 관리 능력을 겸비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마음이 수양되어도 사물을 관리할 능력이 없으면 무력하게 되며, 아무리 사물을 관리할 능력이 뛰어나도 마음이 수양되지 않으면 포악하게 된다.
일찍이 베이컨은 고·중세의 삶 속에 자리하고 있었던 정신계급 중심의 지식관을 타파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그는 정신적 사색을 하는 철학자보다는 사물을 지배하고 소유하는 기술자를 더 존경한다고 선언하였다. 그의 이와 같은 주장은 기존의 봉건적 신분 사회, 정신계급 중심의 사회를 변혁시키는 혁명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이런 작업은 이미 부정적 결과를 잉태시키고 있었다. 즉 기술적 지식에 대한 강조는 당시의 부르주아 계급의 지배를 정당화하고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근대 이전에는 정신과 계급이 결탁하는 현상이 존재하였다면, 근대 이후에는 자본과 계급이 결탁하는 일이 가속화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교육 위기는 바로 이런 구조와 연관되어 있다. 자본을 획득하지 못하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본적 조건조차도 박멸시켜버리는 정글의 법칙이 우리의 삶을 총체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지식이 힘과 결탁되지 않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지식의 자본화, 권력화 현상은 당연히 교육 현장을 경제적·정치적 힘을 획득하는 곳으로 변질시킬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제 학교는 사람의 훈기를 담아내는 곳이 아니라 자본과 권력을 생산하는 전투장이 되도록 강요받고 있다.
그러므로 학교는 잘 싸워서 힘을 획득하는 전투사를 길러내는 곳이지 전투의 비극을 반성하고 고민하는 인간을 길러내는 곳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고등학교는 일류대학에 몇 명을 입학시키느냐에 관심이 집중되어있고, 대학은 현실적 힘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학과를 변방으로 밀쳐내고 있다.
학교가 안고 있는 이와 같은 위기는 단순히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주체들만의 문제일 수 없다. 이것은 국가적 차원의 문제이고, 인류적 차원의 문제이다.
우리의 교육이 안고 있는 이와 같은 비참한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학벌과 자본과 신분이 결탁하는 부당한 고리를 끊어내는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특정 교육자나 학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국가 차원에서 범국민운동을 통하여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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